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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 (2017/7/30) 게시물이에요

 백퍼센트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인지는 저는 모르고

 그냥 참고용으로 퍼왔습니다.


 예종 10년(1115)정월 아골타가 제위에 올라 국호를 대금(大金)으로 하고 도읍을 회령부로 정함.

발해인의 부흥운동과 금의 공세로 위기에 처한 요나라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원병을 청함.

예종이 원병을 보내는것에 대해 논의를 하는데 척준경,김부일,한충,김부식,민수 등이 반대함.

금 태조 아골타는 사허를 보내어 내원성과 포주성을 공격하게 함. 고려는 거란에 잃었던 포주를 되찾을 기회라고 판단함.

금이 내원,포주를 포위공격하자 예종은 쌀 1천석을 원조하려 했지만 거란의 통군 야율녕은 거부함

야율녕이 무리를 이끌고 탈출하려 하자 예종은 추밀원지주사 한교여를 보내 고려에 오도록 권유하나 야율녕은 다시 거부함.

예종은 금에 사신을 보내 포주가 본래 고려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반환을 요구함.

금 태조 아골타는 이 문제로 고려와 적대 관계가 되는걸 꺼려했기에 스스로 취하라고 답함

'만약 고려가 와서 포주를 탈취하면 후라구, 시센 등의 군사를 증강시켜 대비하고, 혹시 (고려가 거란과) 병사를 연합하려 하면 함부로 나가지 말고 오직 변방만 신중히 지켜라.'
-금 태조 아골타가 포주성을 공격하던 장수 사허에게 내린 지시-

처음엔 쌀 1천석을 거부했던 야율녕은 이듬해 고려에 쌀 5만석을 요구함.

고려 정부에선 '우리의 두 성과 인민을 반환한다면 쌀을 빌릴 필요가 없지 않느냐며' 귀순을 권유하나 야율녕은 듣지않음.

금의 장수 사허가 지휘하는 금군이 개주,내원성과 인근의 세 병영을 급습하여 전함을 불사르니 그제야 야율녕은 관민을 140척의 배에 태우고 고려의 영덕성에 두 성을 고려에 넘기겠다고 함.

이렇게 해서 고려는 힘 한번 안 쓰고 내원과 포주성을 접수함. 포주를 의주로 이름을 고친 고려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아 관문을 설치함.

예종 12년(1117년) 연호를 천보(天輔)로 고친 금 태조 아골타는 자신감을 얻어 고려에 당당히 국교를 요구함.

'형인 대여진 금국 황제는 아우인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 우리가 조상 때부터 한 모퉁이에 끼여 있으면서 거란을 대국이라 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아 공손된 마음으로 섬겼다. 그런데 거란이 무도하여 우리의 강역을 짓밟고 우리의 인민을 노예로 삼고 자주 이유없이 군사를 보내므로 나는 마지못하여 항거했더니 하늘의 도움을 얻어 거란을 멸할 수 있게 되었다. 부디 우리에게 화친을 허락하여 서로 형제로 맺어짐으로써 대대로 우호관계를 유지하게 되길 바라노라'
-금 태조 아골타가 고려에 보낸 서신-

이 무례한 내용에 고려 조정은 격분함. 김부의만이 화친할것을 주장하나 무시당함.

고려가 답례로 보낸 서신에 '하물며 귀국이 우리 땅에서 발원하여' 라는 표현이 있다고 해서 금 태조 아골타는 접수를 거부함.

예종 13년(1118년)고려는 동북면의 장성을 증축함. 국경의 금나라 관리가 와서 막으려 했으나 고려는 '옛 성을 보수한다' 고 통보하고 성을 3척 높이로 증축함.

이 보고를 들은 금 태조 아골타는 '행여 침입하여 사건을 일으키지 말고 오로지 군영을 튼튼히 하고 지켜보고만 있으라'고 지시함.

1122년, 고려 예종 사망.인종 즉위

인종 1년(1123), 금 태조 아골타 사망.금 태종 우키마이 즉위.

인종 2년(1124), 고려가 난민을 받아들이며 변방의 방비에 힘을 기울이자 금의 골실답이 이를 우려하며 금 태종에게 보고함

'우리의 반란자들을 받아들이고 돌려보내지 않는것은 저편에 잘못이 있는것이니 통문을 보내어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하라고 이르라. 혹 와서 침략하면 전열을 가다듬고 맞서 싸우라.
(그러나)감히 먼저 저편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비록 이기더라고 반드시- 벌하리라
-금 태종 우키마이가 골실답에게 답한 내용-

인종 3년(1125), 거란의 천조제가 붙잡힘으로써 요나라 멸망함

같은해, 고려는 금에 사신을 보냄. 금 태종은 이번에 받은 고려의 국서가 표(表)형식이 아니고, 칭신하지도 않았다고 해서 접수를 거부함.

인종 4년(1126) 3월에 금에 대한 정책을 논의함. 모두가 금에 사대할수 없다고 반대하나 이자겸과 척준경만이 사대하자고 함.

실권이 이자겸에게 있는 이상 인종은 그의 뜻을 따르지 않을수 없었음.
4월에 사신을 보내 칭신함.

금과 송은 번갈아가며 고려에 사신을 보내 동맹을 요청함.

인종 4년(1126) 7월, 동맹을 맺고 금을 공격하자는 송나라 사신에게는 내분을 겪어 여력이 없는 상태라며 완곡히 거부함.

인종 4년(1126) 8월, 전란을 피해 고려로 들어오는 난민들을 송환해달라고 한 금나라의 요청은 끝내 거부함

인종 5년(1127) 정지상의 탄핵으로 척준경을 제거한 인종은 서경에서 내정개혁을 지시하는 15개 조의 조서를 발표함. 이 중에 '군사를 보살피어 일정한 시기에 훈련을 실시하는 것 이외에는 복무하지 않을것' 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는 다분히 금을 겨냥한 조치였음.

인종 6년(1128) 금이 사신을 보내 포주 영유를 대가로 충성 서약을 요구함.

고려 조정은 고민했으나 금의 강성함에 기세가 눌린 탓에 일단 금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통보함.
금의 실력자 종간(아골타의 서장자)이 대단히 기뻐함. 고려의 충성서약은 그만큼 금나라에 의미가 큰것이었음.

인종 7년(1129), 송이 완전히 멸망할것 같은 상황이 되자 고려는 금나라에 충성 서약을 함. 동시에 '천하를 통일한 강국인 금으로서 이를 요구하는것은 이성적이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하기도 함.

군신관계가 뒤바뀌니 고려인들은 굴욕감을 느껴 무과 출신인 최봉심은 '나라에서 장사 천명만 주면 금나라로 쳐들어가 그 임금을 사로잡아 바치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함.

인종 9년(1131), 최봉심이 금에 파견되는 사신단의 서장관에 임명되자 간관들이 3일동안 궐문에 엎드려 반대했지만 인종은 최봉심의 임명을 취소하지 않음.


금나라가 고려에 대해선 끝내 무력시위나 침략을 안한거보면 윤관의 여진정벌때 어지간히 혼쭐이 나긴 난듯.







 

고려가 금나라에 사대정책을 정하기까지의 짧은 기록펌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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