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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882
이 글은 8년 전 (2017/8/19) 게시물이에요

시인 박준의 첫 번째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 인상깊었던 문장들을 모아놓은 글입니다.








들어서며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인스티즈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늘>







1부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인스티즈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았다. 일부러 지어 보이지 않아도 더없이 말갛던 근새 너의 얼굴과 굳이 숨기지 않고 마음껏 발개지던 그해 나의 얼굴이 서로 닮아 있었던 것처럼, 혹은 첫인사의 안녕과 끝인사의 안녕이 그러한 것처럼.

<두 얼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인스티즈

검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유서처럼 그 수많은 유언들을 가득 담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는 밤이다.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인스티즈

나는 편 궁금해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보았다. 한참을 읽어보다 조금 엉뚱한 대목에서 눈물이 터졌다. 1998년 가을, 여고 시절 그녀가 친구와 릴레이 형식으로 주고받은 편지였는데 "오늘 점심은 급식이 빨리 떨어져서 밥을 먹지 못했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10여 년 전 느낀 어느 점심의 허기를 나는 감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것으로 편지를 훔쳐보는 일을 그만두었다.

<편지>






2부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인스티즈

_평야

나는 방으로 들어와 그들이 보냈을 스물하고도 나흘의 시간을 생각했다. 삼일장을 치르는 요즘 같아서는 사람이 여덟 번 죽을 수도 있는 긴 시간이었다. 그들의 처음 2, 3일을 생각할 때는 불안함이 머물렀닺 이어 4, 5일 정도에는 젊은 여인의 다정ㄴ산 몸짓을 생각했고, 일주일이 넘어서는 곁에 늘 머무는 것들을 대할 때 우리들이 보이는 안일한 태도를 떠올렸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인스티즈

_사랑의 진실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과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 밥 먹기 전에 물을 마시는 사람과 밥을 먹은 후에 물로 입을 헹구는 사람. B형 간염 보균자와 B형 간염 항체가 없는 사람. 대학을 나온 사람과 중학교를 마치지 않은 사람. 평전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챙겨 보는 사람. 쇼핑을 오래하는 사람과 좁은 골목을 천천히 걷는 사람. 댐이나 보로 물을 가둔 강에서 웨이크보드를 타는 사람과 안개 걷힌 강가에서 노트를 펼치는 사람. 집이 가난한 사람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 사랑을 믿는 사람과 사람을 믿는 사람.
나와 당신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의 사랑을 어렵게 만든다.

<사랑의 시대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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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인스티즈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마음 한철]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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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인스티즈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고아>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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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인스티즈

늦은 밤 떠올리는 생각들의 대부분은
나를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해 연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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