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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털 메인에 걸려있는 한 사진을 보게 되었다. 피투성이가 된 여중생이 무릎을 꿇고 있는 끔찍한 사진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 사진을 클릭했고, 곧 사진 속 주인공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이며, 최근 한국 부산에서 촬영된 사진임을 알게 되었다. 즉시 뜨악한 감정이 치솟았다. 더불어 학교폭력의 잔인한 행태에 대해서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관련된 사진을 더 볼 수 있었다.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어도, 누군가 여과 없는 환자의 시뻘건 환부와 부어오른 눈두덩을 근접 촬영해서 인터넷상에 유포했고, 그것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두피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부종은 심했다. 흘러내린 피가 귓가와 손에 엉겨 붙어 있었다. 당연히 나는 피해자가 당한 깊은 외상에 겁이 났고, 가해자의 적절한 처분과, 현실 개선을 바랐다. 누구나 그 사진을 보면 그렇게 느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현재 논란 속에 이 이슈가 진행 중인 것과,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상, 범죄사실을 기록한 동영상, 규탄과 성토의 목소리 등이 떠돌며, 더불어 다른 사건까지도 주목받고 있는 것까지도 보았다.
이제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생각했다. 평범한 인터넷 사용자로서 이 사진은 매우 잔혹한 것이었지만, 실제 일어나는 사건들에 비추어도 이 사건은 잔혹한 것이었을까. 이 폭력은 온 나라를 뒤흔들 정도로 드물게 일어나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 이 정도의 상해를 입은 사람은 응급실에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에 상해와 폭행 등의 강력 범죄는 한 해에 37만 건이 넘는다. 신고된 폭행 피해자만 하루에 천 명이 병원에서 치료받는다. 유포된 사진과 비슷한 장면은 매일 되풀이된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미성년자였다는 특수성이 있지만, 이들을 포함한 인간들은 너무나도 사소하고 터무니없는 이유로 타인의 신체를 어이없이 심각하게 훼손하고 때로는 죽인다. 응급실은 마치 주변 모든 폭력의 결과가 모이는 공간 같다. 나는 사람을 한 번도 때려본 적이 없으나, 의사가 되어 오히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폭행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렇게 피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폭력의 불합리함과 잔혹성에 몸을 떤다. 세상에서 이런 폭력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현장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사람들에게 극도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이 이야기와 피해자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가감 없이,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라고만 알려주고, "누가 누구를 때려 상해를 입혔습니다."가 어떤 광경인지 보여주면 된다. 보통의 사람은 이런 피해자와 피칠갑한 광경을 보기 힘들고, 누군가 이렇게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므로, 이번 사건처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당장 긍정적인 효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피해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의사인 내가? 환자 윤리에 위배되는 일이다. 비슷한 이유로, 관련된 경찰, 공권력, 법조계, 상담사 등은 이 사실을 적나라하게 알릴 수 없다.
그래서 37만 건의 폭력은 대중들에게 적나라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놀랍게도 가해자의 지인 때문이었다. 하필 가해자가 사진을 찍었고, 그 가해자가 지인에게 이 사진을 보냈고, 그 지인이 이 사진을 SNS에 올렸다. 게다가 환자가 치료받는 사진은 피해자 어머니의 지인이 올렸다. 전부 피해자와 관계가 멀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 과정 중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것은 37만 건 중 하나의 폭력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일어났기에, 이번 사건은 특별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
피해자는 아직 14세지만, 폭행을 당한 이후, 자신이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진이 전국 인터넷에 도는 일을 겪었다. 주변 사람들은 당사자가 누군지 전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피해자가 이 일을 원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여부와 관계없이 이 여중생에게 절대로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의 피해 사진을 보았다. 사람들은 지극히 선정적인 피를 뒤집어쓴 사진을 소비했고, SNS에서 그녀의 벌어진 환부와 부어오른 눈두덩을 보았다. 꼭 이 사진을 봐야만 폭력이 나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을까. 이것을 누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연히 알려진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가 받은 고통은 다른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 피해자는 특정되어 분명히 2차 피해를 입었다. 누군가 '폭력은 나쁘다.' '살인은 나쁘다.'라는 명제로, 적나라하게 폭행이나 살인을 당한 사람의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면, 그것으로 큰 화제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절대로 옳은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으로 인한 대중들의 반응도 환영하고, 폭력을 이 세상에서 없애자는 취지와, 관련 법안을 개선하는 등의 모든 것을 현장에서 폭력을 체험하는 사람으로서 동의하지만, 환자와 피를 뒤집어쓴 사진과 환부가 인터넷을 함부로 떠도는 것만은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나로서는 다시 진실을 알리기 위한 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이 모르는 세계의 이면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만큼 힘이 센 것은 없으며,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정인이 지목된 시각적으로 선정적인 방법은 대중들을 피로하게 만들고, 정돈되지 않은 반응으로 2차 피해자를 양산한다. 게다가 대중은 그 사람이 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기억하겠지만, 오늘도 누군가가 비슷한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피해자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었으며, 어느 범주에서 윤리적인 면을 조율해서, 피해 받는 사람 없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공감을 사며 개선을 이루어나갈 수가 있는 것일까.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이토록 잔혹한 사진을 소비해야만 하는가. 이번 사건에서 모든 사람이 깊게 고민해볼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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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공감되는 내용이라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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