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형제관계에서도 친형인 문종에게는 형수인 현덕왕후의 일가가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하자 현덕왕후를 폐서인하고 무덤을 현릉(문종의 왕릉)에서 파해쳐버렸는데 문제는 당시 현덕왕후는 남편이자 세조의 형인 문종과 합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형수에게도 불경을 범한 것인거니와 애꿏은 형이자 선왕에게까지도 무례를 범한 셈.
거기에 형의 무덤의 비석을 감독하던 민신과 다섯 아들들 역시 형 무덤인 현릉에서 참살해 버렸다. 또한 현덕왕후의 무덤이장장소도 무덤터로는 최악인 범람이 잦고 습한 지역에 이장을 해버렸다 이 때문에 현덕왕후의 관을 강에 버렸고 강에 버린 이유가 세조가 단종을 죽인 뒤 현덕왕후의 혼령이 세조의 꿈에 나타나 저주했고 이 때문에 덕종이 일찍 죽었다는 야사가 나왔다.
태종의 경우 신덕왕후의 묘를 이장하기는 했으나. 신덕왕후는 태종과 아무 관련이 없었으며 당시 이성계는 살아있었고, 아버지 때문에 신덕왕후를 폐서인 시키지는 않고 후궁으로만 격하 시켰다.
거기에 태종 입장에서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유가 신덕왕후에 의한 세자첵봉문제였으므로 이방원측 입장에서는 명분수립을 위해 그녀를 격하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형인 정종과의 사이도 매우 좋았고 아버지인 태조에게도 신덕왕후와 그 자녀 일가에게 한것 외에는 큰 폐륜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동복형제관계도 태종은 동복형인 이방간을 죽이는 건 피했던 것과 달리, 세조는 동복동생인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을 죽여버렸다. 이것으로 세조가 찬탈과 더불어 우애까지도 없는 아우라고 두고두고 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조가 가장 욕을 먹는 부분은 단종관련 문제이다.
조카를 자기 손으로 죽여놓고 시체 수습도 안해서 엄흥도라는 인물이 대신 수습해 장례를 치뤄줄 정도였지만 정작 실록에는 단종이 자살해서 예를 갖추어 장사 지냈다고 적어놓는 조작까지 해놨다.
정작 단종 사후 시신의 행방은 중종 대에나 밝혀지는데. 후대에 봐도 기가 찼는지 뒤의 기록에는 단종실록의 기록들은 쥐새끼와 여우새끼들의 아첨하는 간사한 붓장난에 속지 말라고 대놓고 디스하는 글이 있을 정도다
이래놓고 왕위 찬탈 전에는 자기 측근들을 시켜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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