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 10일 가정 주부 변월수(여성, 당시 32세)가 귀가를 하던 도중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고 음부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하던 두 명의 남자들 중에서 한 명의 혀를 깨물었던 일이 있었죠.
그런데 변월수를 상대로 강제로 성폭행을 시도하다 혀를 잘린 남자가 변월수를 고소했고, 검찰은 변월수가 과잉방어를 했다며 징역 1년을 구형했습니다. 가해자, 즉 성폭행을 했다가 혀가 잘린 남자의 변호인은 변월수가 당시에 술을 마셨고, 동서와 불화가 있었다고 주장하여 변월수를 바람기가 있는 음탕한 여자로 몰아세웠습니다. 마치 "저 여자는 야하니까 청년을 유혹했다."는 식으로 말이죠. 여기에 변월수를 '과잉방어'로 기소한 검사는 변월수의 폭행 피해 진술이 자꾸 바뀐다며 호통을 쳤습니다. (검사는 억울함을 풀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증거가 사실인지 아닌지만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쓴 책의 내용이 이래서 나온 걸까요.)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사진들. 이 영화는 변월수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검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 다 기소합니다. 그리고 1심에서 변월수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판사로부터 선고받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반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여자는 강간을 당해도 남자에게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냐, 감옥에 가기 싫으면 차라리 그냥 강간을 당하라는 것이냐, 무슨 법이 이 따위냐, 법이 왜 억울한 약자이자 피해자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하느냐, 는 여론이었죠. 피해자 변월수는 "차라리 그냥 그 날 그들에게 당하고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울부짖었고, 그녀의 남편도 법원의 판결에 분노하여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억울함과 무죄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돌렸습니다. 변월수의 무죄판결을 위한 범시민 가두서명이 전개되었고, 항소심 1차공판시 대구 고등법원 앞에서 무죄 선고 촉구 집회도 개최되었습니다.
분노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1년 후인 1989년 1월 20일, 변월수는 마침내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변월수 사건은 개인의 정당방위를 가급적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국 법률의 고질적인 병폐(요즘도 그런 사정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만)와 아울러 한국의 여성 인권이 20세기 말까지도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20세기 말까지도 한국은 남존여비 문화가 매우 강했고, 여성들은 사회 전반에서 성차별을 당해야 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성폭행을 당했다가 자살한 어느 여인을 두고 뉴스 진행자가 "정조를 잃어가는 요즘 세상에 참으로 놀라운 소식입니다."라는 멘트를 남기는 일도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사건은 1990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여자인 동시에 약자이니까, 억울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많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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