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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3064
이 글은 8년 전 (2017/10/01) 게시물이에요

고려대 대나무숲 카페 뒷이야기래요 | 인스티즈

고려대 대나무숲 카페 뒷이야기래요 | 인스티즈







낮은 아직 여름 여름 거리는데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것을 보면, 계절끼리 땅따먹기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괜히 웃곤 한다. 겨울이 이기고 있는지, 하늘은 겨울의 초입새를 향하고 있다. 초입새!

그날도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며 술을 마실까 말까 망설이다가, 카카오톡 목록을 습관처럼 보고 있었다. 술이라는 게 당기는 날일수록, 잘 넘어가는 날일수록, 위험하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막걸리 마실 사람?] 이라고 올라온 단체 채팅방의 알림을 애써 외면했다. 그리고 이어폰을 꺼내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흐늘흐늘 걸었다.

[나 항상 그대를]
[나만 안되는 연애]
[내가 너에게 가든 네가 나에게 오든]

얼씨구? 별생각 없이 누른 작은 재생 버튼이 별의 별 생각 다 들게 한다. 노래는 끄고 이어폰은 뽑아버렸다. 잔잔하게 숨이 턱 막힐 때, 계속 맴도는 고민들이 몸을 휘두를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즐겨읽던 대나무숲에 글을 올렸다.

혼을 내놓고 쓴 글이었다.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내 안의 울분이 똬리를 튼 탓에 너무 갑갑했었다. 애꿎은 키보드를 두들겨 쏟아낸 마음을 눈으로 확인하자 발가 벗겨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페이스북 출입을 자제하고자 다짐했다. 다들 하는 [금주 다짐] 같은 거. 결국 [다시 마시잖아?] 하면서 간만에 들어간 SNS는 역시 즐거웠고, 한참 밀린 내용들을 신나서 죽죽죽 훑었다. 흐르던 시선이 멈춘 곳은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친구의 친구가 공유한 대나무숲 글.

[저도 길게 적고 싶은데, 글 재주가 없어 그러지 못 해서 미안해요.]

계속 읽기로 글을 늘리고 무심히 읽었다. 한 번 다 읽고 쿵쿵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글을 샅샅이 살폈다. 맞지 않는 조각을 욱여넣는 일은 하기 싫어서.

[하늘색 모자는 많지]
[그래 카페모카는 널렸지]
[김칫국 보글보글이라니 세상에!!]
[13계단은 추리소설인가?]
[밥 대신 커피라니 속은 괜찮은 건가?]

모든 글자가 당신이었다가, 당신이 아니었다가, 다시 당신의 발자욱이었다가, 이내 꼭 들어맞는 조각들로 수렴했다. 정처 없이 걷다 멈추고 사람 피해 섰다가 다시 걸으며 글을 읽었다. 나는 관객이자 독자였고, 주위로 포실하게 내려앉은 가을밤의 주인공이었다.

당신의 글은 유명했다. 좋아요도 많았고, 내 글과 엮어 소설 같다는 댓글도 많았다. 내가 창피하다고 생각한 내 글을 너무 많은 사람이 읽어버렸다는 생각에 숨고 싶었다. 하지만 덕분에 답장을 받아볼 수 있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도 입술을 여러 번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약간은 후회했다. [조금 더 예쁘게 쓸 걸]

그날 나는 후회와 부끄러움 그리고 놀라움과 함께 자꾸 일탈하는 얼굴 근육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글을 몇 번이나 읽으며 거듭 확인 했다. 확인이 확신으로 흘러서 긴 글을 남긴다. 유럽에 있다는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나무숲을 통해 편지 형식을 빌린다는 사실을 불쾌해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자의 경우는 개의치 않는다. 당신이 기다릴 그 카페에 나는 몇 시간이고 전부터 기다릴 생각이니까. 그놈의 잘생기지 않은 얼굴에 대고 직접 읽어주고 말해줄 생각이니까. 후자라면 고객을 숙일 따름이다. 잠깐 객기로 팔자에 없는 상사로 몸져눕기 직전까지 갔던 이 멍청한 영혼을 어여삐 봐주십사 간절히 부탁드릴뿐이다. 인연이든 운명이든 행운이든 이걸 뭐라 부르든 간에 나의 이 감정을 여러분은 더 크게 받으시길 바라겠다!

그때 나는 한 시간을 거리에 선 채로 위에 적은 행동들을 반복했다. 그리고 막걸리 집으로 향했다. 오롯이 이 감동을 곱씹기엔 내가 너무 들떠 있었다. 먼저 마시고 있던 친구들과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리에 앉았으되 글을 곱씹고 자리에 없는 당신을 생각했다. 그리고 유난히 쓰게 느껴지는 꿀 막걸리가 어쩌면 당신의 달달한 글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먼저 마시던 친구들만큼이나 얼굴을 붉혔다.

고백하건대, 이 글은 처음 당신의 글을 읽은 순간부터 들쭉날쭉 적은 글들이다. 몇 번을 되새김질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와 당신 글에 대한 칭찬 그리고 내 글을 읽어 주었단 생각에 [조금 예쁘게 써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력하니까 어색하고 오그라들었다. 그냥 막 쓰고 붙였다. 아무렴 어떠냐 싶다. 꾸미지 않은 내 글이 날 당신에게 데려다주고 있는데!

아, 하나 더 고백하자면 당신 글에 달린 댓글들에 묘하게 경쟁심이 일어서 나조차도 당황했다. 사실 나도 당신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옆에도 없으니 그런가 싶다. 그러니까 빨리 왔으면 하지만 보채지 않겠다. 이미 당신의 행운 덕분에 글이 나에게 닿았기 때문에. 그리고 아마 당신의 말마따나, 그 운이 조금 더 좋을 것 같기 때문에.



--------------------------------





-여자-

소설을 읽다보면 끝은 어떨까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은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아쉬움, 황당함, 슬픔 등 다양한 느낌을 준다. 나는 그 중에서 책장을 넘기기 아쉬운 작품이나 슬픔이 남는 결말을 좋아한다. 모든 게 쉽게 예측할 수 있다면 행복은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고생할수록 그 끝은 더 달다] 라는 말을 믿었다. 그 때까지는.,,



-남자-

20분이면 한국에 도착합니다. 시간 참 빠르네요. 이미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아요. 사실 많이 떨립니다. 그런데 기분 좋은 떨림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당신이 상상하던 사람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더 크네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손톱을 물어 뜯고 다리를 떨었어요. 과거의 습관인데. 아마도 내 마음이 조금한가 봅니다. 당신을 만나면 물어 뜯은 흉한 손은 아래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희미해질 때 쯤 한국에 도착했어요.



-여자-

어릴때부터 [해리포터] 시리즈를 좋아했다. 그러나 영문판을 슥삭 읽어낼 재주는 없었다. 매번 번역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결정적인 부분에 나의 감정을 쏟아 부었지만, 다음 이야기를 보려면 무작정 몇날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그럴때면 차가운 현실에 내동댕이 처진 느낌이 늘었다. 부모님은 [어쩔수 없으니 잊고 지내다가 나오며 읽자]라고 했다. 물론 부모님의 말은 옳았지만 내 마음은 멈출 수 없었다. 그만큼 기다림은 힘들었다.



-남자-

오랫만에 느끼는 편안함이다. 지인들이 소매치기, 인종차별 등 많은 조언을 해줘서 몸을 웅크리고 다녔어요. 그리고 비행기에선 잠을 설친 탓에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곯아떨어졌네요. 여독인지 몰라도 심한 몸살도 들었어요. 뼈 마디마디가 아려서 참기 힘들 정도로 아팠어요. 그래서 그날은 도착하자마자 누워버렸어요. 서울에서 당신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기다려야 하는데, 서럽게도 몸이 따라주질 않았어요. 차가워진 공기가 겨울의 초입새를 말하고 있는데...



꼬박 하루를 자고 이틀을 앓았어요. 그래도 무거운 머리를 들고 서울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가족들이 말리 더군요. 너무 아파 보이니까 하루 더 쉬고 가라고. 당신에게 하루를 더 기다리게 한다는 생각에 미안했지만 이 몰골로 마주하는 것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왠지 모르게 당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냥 흐르는 강처럼 흘러갔을 수도 있겠다고. 당신 같은 분이 나를 기다릴 리가 없다고. 다시 자려고 하다가, 문득 당신의 글이 떠올라 읽었어요. 나의 소심함에 용기를 주지 않을까 해서. 우연히 내 답장에 대한 당신의 또 다른 답장을 발견했어요.



-여자-

[해리포터]을 읽던 시절보다 몸과 마음이 성장했어도 기다림에 대한 힘겨움은 여전했다. 이번 만큼은 더 지독하게 느껴진다. 카페에서 제공되는 냅킨을 잘게 찢고 읽지도 않은 책들을 넘겨보며 출입구쪽을 주시했다. 문득 상황이 예전과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다음 권이 출간되지 않아 이전의 내용을 곱씹으며 기다렸듯이. 그가 남긴 말들을 주워섬기며 기다리는 이 상황이.


-남자-

자고 있을 때가 아니였어요. 다행이도 늦은 시간은 아니여서 도착하면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아요. 당신에게 가는 동안 두 번째 답장을 계속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어요.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했던 망상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어요. 그 카페로 가는 동안 후회하고 미안해하면서 자책했어요.



[내가 이렇지]

[오자마자 확인했어야 하는데]

[괜히 애매하게 말했나 봐]

[날짜를 정했으면 안 기다리셨을 텐데]

[날도 추운데 괜히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셨겠네]

[뭐라고 하지]

[잤다고 해야 하나]

[아팠다고 해야 하는 건가]

[기회를 받으면 뭐 해]

[일을 그르치려니까 이렇게도 되는구나]

[바보처럼. 만약에 안 나오셨으면 어쩌지]

[아니 사실 그래도 할 말 없지]

[하 뭐가 이렇지. 서럽다. 미안해서 미치겠다. 나오셨으면 뭐라고 해야 하지. 인사를 해야 하나. 사과가 먼저겠지. 사과를 한다면...]



수 많은 생각 따위 하면서 카페에 도착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당신이 있던 자리에 낮선 이가 서있었어요. 떨리는 손을 맞잡다가 물어 뜯은 손톱이 보여 얼른 아래로 그러쥐었어요. 낮선 카운터의 종업원의 인사를 받으면서 눈으로 당신을 찾았어요. 사람은 없었지만 내 시선을 주인을 찾지 못했어요. 당신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더 군요. [왔으니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다가 영화나 한 편 보고 들어가자] 따위의 생각을 하며 지갑을 꺼내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 손에는 컵을 다른 한 손에는 휴지조각을 들고 있는 당신과 눈이 마주쳤어요.



-여자-

딱 한 시간만 더 있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오래 전 부터 했지만 나가면 서로 엇갈릴 것 같은 생각이 마음을 억눌렀다. 며칠 째인지도 사실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 오겠지. 11월 전에는. 다 마신 카페모카 컵을 치우려고 일어섰다. 냅킨 조각도 함께. 한 손에는 카페모카 잔을 다른 손에는 냅킨 조각을 들고 쓰레기통으로 향해 걸었다. 한 잔만 더 마실까?



당신은 그대로였다. 추운 날씨에 약간 두터운 옷을 입어서 인지 커다란 강아지 같다는 인상이 더욱 짙어졌다. [안녕, 리트리버] 라고 부르며 놀려주고 싶었다. 머리가 많이 자랐다. 구불구불. 분명 내 얼굴에게 침착함을 주문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 근육은 멋대로 당신을 반기기 시작했다. 많이 기다린 걸 알아달라고 시위하듯이 입꼬리, 콧등, 광대, 눈꼬리, 보조개 어디 하나 태만한 곳 없이 아주 열렬히 당신을 반기고 있었다.



-남자-

무슨 말을 할지 생각도 못했어요. 당황 스러웠어요. 그런데 당신은 태연해 보였어요. 빙글빙글 웃는 당신은 여전히 매력적이었어요. 묶은 모습만 봤던 머리가 풀려있었어요. 생각보다 작은 키 그리고 보조개가 눈에 들어오더 군요. 마주하면 꺼낼 말들을 많이 연습했는데 그 말은 못 꺼내고 입을 닫았어요.



[저기]

[네? 네?]

[커피 마실래요?]

[아...]

[카페모카 맛있는데]



내 말을 듣고 당신은 웃기 시작했다. 본 적 없는 환한 웃음. 그래서 나도 그냥 웃었다. 침착함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당신의 웃음을 보고 깨달았어요.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걱정을 했는지. 자꾸 새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계산대에 섰어요. [주문하시겠어요?] 라는 물음에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당신을 쳐다봤어요. 그러자 당신이 웃음을 잔뜩 머금고 대답했어요.



[아이스 카페모카 주세요, 두 잔이요!]



-남자/여자-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혼자 시작한 이야기는 겨울의 초입새에 이르러 이렇게 끝이 났다. 지금 돌아보면 여름에 먼저 다가갔다면 이렇게 애태우며 힘겹게 기다리지 않았을 텐데. 내가 참 바보같다. 그래도 함께 시작한 이 이야기가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오늘따라 카페모카가 유난히 달고 따뜻하다.







대표 사진
Wie es auch sei, das Leben, es ist gut.  인생은 좋은 것이다
소설 읽은것 같은 기분이네요.. 두분 다 정말 글을 잘 쓰시는듯
근데 원래 무슨 사이였나요?

8년 전
대표 사진
황나윤
제 기억이 맞다면 대숲에서 이런 사람을 만났는데 찾고 싶더~라는 글이었어요. 그런데 필력이 워낙 두분 다 엄청나셔서!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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