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자 조정에서는 두 가지 해결 방안이 논의되었다. 하나는 동학농민군의 요구대로 대대적인 폐정개혁을 단행하자는 주장이었다. 다른 하나는 청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진압하자는 주장이었다. 왕비 민씨 중심의 민씨 척족정권에게 대대적인 폐정개혁은 곧 척족정권의 퇴진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씨 척족정권의 대표격인 민영준(閔泳駿)은 청나라 군사 파병 요청을 강력히 주장했다. 자국민 진압을 위해서 외국군을 끌어들인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지만 청군의 진주가 일본군의 진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하지 않았다. 갑신정변 이듬해인 1885년 청일 양국은 천진(天津)조약을 맺었다. 그3항은 "만약 조선에 변란이나 중대 사건이 있어서 양국 또는 한 나라가 파병을 요할 경우에는 당연히 먼저 서로 문서로 알리고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에 파병하게 될 경우 상대방에게 먼저 통보해야 했다. 이 조항이 청, 일 양국의 조선 주둔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 두 나라는 조선을 각각 자국의 먹이로 생각했다.
![[이덕일의천고사설] 일본군의 조선진주 시말 | 인스티즈](http://i2.media.daumcdn.net/svc/image/U03/news/201504/28/hankooki/20150428201917866.jpeg)
4월 27일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은 동학농민군은 서울로 북상하지 않고 호남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해 폐정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민영준은 이틀 후인 4월 29일 청국군 파병을 강력히 주창했고, 30일 밤 조정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은 청군의 파병이 일본군의 진주로 이어질까 우려해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일본외무대신무쓰무네미쓰(陸奧宗光)는일본의조선 주재 대리공사스기무라후카시(衫村濬)에게 청의 출병을 부추기라는 지시를 내렸다.
스기무라는 청나라 원세개(袁世凱)에게여러 경로를 통해서 '청이조선의혼란에신속하게대처하기바라며일본정부는다른뜻이없다'고 전달했다. 청군이 파병해도 일본군은 파병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일본의 본심으로 착각한 원세개는 청군의 파병을 요청했고, 음력 5월 3일 총병(總兵) 섭사성(?士成)은 전함에 청군을 싣고 조선으로 향했다.
이런 움직임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던 일본은 하루 전인 5월 2일 '전시대본영조례(戰時大本營條例)'에 따라서 참모본부에 대본영을 설치했다. 청군이 출발하기도 전에 일본군 파병을 결정한 것이었다. 고종과 민씨 척족정권이 자국 백성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사를 끌어들인 것이 일본군의 진주를 불러왔던 것이다. 이후 일본군은 청일전쟁으로 청나라를 몰아냈고, 끝내 한국을 점령했는데 그 단초는 고종과 민씨정권의 청군파병 요청이었다. 개인의 사익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매국(賣國)도 서슴지 않는 한국 일부 지배세력의 전형적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행위였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친일파였던 전 형조참의 지석영(池錫永)은 "백성을 수탈하여 소요를 초래해서는 원병(援兵ㆍ청나라 군사)을 불러들이고는 난이 일어나자 먼저 도망친 자가 간신(奸臣) 민영준"이라면서 민영준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영준은 훗날 민영휘(閔泳徽)로 개명했는데, 이후 친청파에서 친일파로 변신하는 놀라운 생존력을 보여주었다. 1907년 10월 일본 왕세자가 방한하자 신사회(紳士會) 환영위원장을 맡아 대대적으로 환영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민영휘는 나라 팔아먹는 대열에 적극 가담해 1910년 망국 후 일제로부터 자작의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챙겼다. '삼천리(三千里)' 1931년 2월 1일호에서 언론인 김을한(金乙漢)은 '조선 최대 재벌 해부 3'에서 "현하(現下) 조선에 있어서 누가 제일 갑부냐고 하면 제1이 민영휘"라고 말할 정도로 민영휘는 백성 수탈과 매국의 대가로 조선제일의 갑부가 되었다.
새로 개정된 '미일방위협력 지침'에 따라 일본군은 집단적 자위권이란 명분으로 전 세계 어디든지 주둔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으므로 미국이 결정하면 한국에도 일본군이 진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을 끌어들인 것인데, 임진왜란 때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명분이 명나라 정벌길을 빌려달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였다. 정명가도가 미일 합작으로 되살아난 듯하다면 필자의 과민한 반응일까? 개정된 '미일방위협력 지침'은 우리에게 과거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시작전권을 회수해서 진정한 독립국으로 나아가는 한편 자주국방에 매진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걸어야 할 정도(正道)라는 새롭고도 평범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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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34살 무서워하지말고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