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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 (2017/10/07) 게시물이에요



[서양고전학자의브랜드인문학] (11) 그의 패션에는 성모 마리아와 마돈나가 공존한다 | 인스티즈

금기와 위반, 관능미와 죽음은 서로 얽혀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메두사의 잘린 머리는 물론 나머지 몸뚱이까지 표현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브랜드는 금기에 대한 위반이다. 권위는 금기를 만들지만 브랜드는 위반을 꿈꾼다. 그 위반의 꿈속에서 문화 에너지가 생성된다. 베르사체의 에로티즘은 문화를 파괴하기보다 쇄신케 한다.

1994년 여배우 엘리자베스 헐리의 드레스로 일약 유명해진 베르사체. 안전핀 장식의 검정색 실크 이브닝가운은 몸매를 드러내는 타이트한 실루엣, 깊게 파인 네크라인과 슬릿 등 파격적 노출로 영화배우와 록 뮤지션 등의 사랑을 받으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베르사체의 디자인이 저속하고 천박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 경제위기 속에서 탄생한 베르사체 

잔니 베르사체는 1946년 12월2일, 패전국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에서 태어났다. 어린 잔니는 당시 유행하던 파리 패션 크리스찬 디올의 스타일로 옷을 만들던 어머니 곁에서 패션을 익혔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1960년대 말에 이탈리아의 패션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되자 파리와 런던을 오가며 가정에서 만든 의류의 바이어 역할을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는 패션 제국 프랑스의 하청을 도맡는 국가. 이때 이탈리아의 의류산업은 기성복 생산체제로 전환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와 영국에서 소득 향상에 따른 중산층의 증가로 간편하고 저렴한 기성복이 날개 돋친 듯 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대에 이탈리아의 의류산업은 세계 경기가 1차 석유파동으로 위축된 데다 아시아 신흥공업국에서 저가품이 쏟아지면서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잔니는 가정 의류 생산을 중단하고 1973~1975년 2년여 동안 밀라노에서 패션 프리랜서로 디자인을 익힌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잔니는 고품질의 고가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장인정신과 자신의 예술혼을 담은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1978년 그의 포부를 담은 베르사체는 가내수공업 형태로 시작된다.

■ 페트라르카의 메두사 

[서양고전학자의브랜드인문학] (11) 그의 패션에는 성모 마리아와 마돈나가 공존한다 | 인스티즈

베르사체 로고



브랜드 베르사체의 로고는 메두사의 머리. 베르사체의 열정과 매력의 상징이다. 메두사는 신화에 따르면 원래 굉장한 미모를 지닌 여인이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정을 통했던 장소가 하필이면 아테나 여신의 신전. 결국 아테나에게 저주를 받아 메두사의 금빛 머리카락은 뱀들로 바뀌게 되고 메두사를 보는 자들은 다 돌로 변한다. 끝내 관능적인 메두사는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베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강렬한 애호가였던 잔니는 르네상스의 메두사를 통해 긍정적인 상상력을 끌어낸다. 

르네상스의 최고 인문주의자였던 페트라르카는 ‘소네트 197’에서 자신의 연인 라우라를 메두사로 비유한다. 

에로스란 메두사와 같은 힘을 지녔으니, (…) 그녀의 그림자에 내 마음 얼어붙고 내 안색 하얗게 변하지만, 그녀의 눈빛에 돌로 바뀌는 힘이라네. 

에로스신이 쏜 화살에 맞아서일까? 페트라르카는 에로티즘의 상징인 귀여운 에로스를 메두사와 같은 힘으로 묘사한다. 그러니까 에로스의 사랑의 화살은 메두사의 눈빛과 같다는 것. 이 시에서 페트라르카는 자기 이름, 그러니까 희랍어로 파자하면 ‘페트라(Petra)’는 ‘돌’, ‘아르카’는 ‘근원’이 되니, 우리말로는 “원석이여, 원석이여”를 반복한다. 

르네상스의 메두사는, 페트라르카에 있어서 자신을 돌처럼 꼼짝 못하게 할 정도로 고혹적인 여인의 비유이자 에로스의 상징이다. 잔니 베르사체도 이런 생각을 한 듯 메두사 로고를 선택한 이유를 “메두사와 사랑에 빠지면 도망갈 수 없어서”라고 천연덕스럽게 밝힌다.

■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르네상스의 메두사에서 잔니가 긍정적 상상력을 끌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 있다. 1554년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이던 피렌체에 한 점의 청동상이 세워진다. 바로 벤베누토 첼리니의 청동상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이 작품은 1530년부터 피렌체를 통치한 코지모 드 메디치가 첼리니에게 의뢰한 것. 전제군주였던 코지모는 자신을 반대하면서 공화정을 주장하는 자들을 피렌체에서 추방했다는 것의 상징으로 페르세우스상이 필요했다. 이 군주에게 예술은 전제군주의 한낱 정치 선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청동상에 첼리니는 페르세우스뿐만 아니라 이 영웅에게 희생된 상징, 잘린 메두사의 머리와 짓밟힌 그녀의 몸뚱이까지 포함시킨다. 첼리니는 이 청동상으로 전제주의자의 권위와 함께 희생된 자들의 처벌을 애써 드러낸다. 

분명 이 청동상에서 코지모를 상징하는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제압하는 모습으로 강조된다. 그렇다면 코지모가 한 역할은 금기를 정한 것. 청동상은 그것을 위반하면 메두사처럼 목이 베인다는 경고. 코지모는 이 청동상으로 피렌체 시민들에게 자신의 전제주의를 방해하지 말라는 ‘금기’를 전했다. 하지만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에는 금기하는 자와 위반하는 자가 모두 있다. 이것을 더욱 엄밀하게 나누자면 네 가지, 즉 권력이 정해 놓은 ‘금기’와 그것을 넘어서는 ‘위반’, 메두사의 ‘관능미’와 ‘죽음’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그러니까 첼리니의 청동상을 통해 우리는 금기와 위반, 관능성과 죽음이 서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메디치가의 르네상스에 주목했던 잔니는 이 청동상에서 도대체 어떤 긍정적 상상력을 끌어냈을까? 

■ 금기와 위반의 에로티즘 

청동상으로 된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두 얼굴을 자세히 살피면 동일 인물의 얼굴임을 알 수 있다. 금기하는 자나 위반하는 자의 얼굴이 같다는 점에서 금기와 위반은 동일하며, 관능적인 메두사가 목 베임 당했다는 점에서 에로티즘과 죽음도 동일한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에로티즘을 ‘금기와 위반, 그리고 죽음’의 관점에서 분석한 철학자가 있다. 조르주 바타유, 그는 에로티즘이 “동물적 성행위와는 다른 내적 체험의 ‘직접적인’ 상태”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적 체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에로티즘(…)을 알기 위해서는 금기와 위반에 대한 인간의 체험이 모순적이면서도 동일하다는 점을 요구한다. 두 가지 체험을 한꺼번에 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에로틱한 이미지(…)는 필경 어떤 사람에게는 금기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는 반대의 행위(=위반 행위)를 유발한다. 전자의 행위들은 전통적이다. (…) 위반이란 금기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금기를 한 번 고양시키는 행위이다.

- 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 

[서양고전학자의브랜드인문학] (11) 그의 패션에는 성모 마리아와 마돈나가 공존한다 | 인스티즈

패션쇼 이후 모델들에게 박수를 받는 잔니 베르사체.



에로티즘은 쉽게 말해서 모순적인 금기와 위반을 동일하게 한꺼번에 체험하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위반은 금기를 유지하면서 극복시키기 때문이다. 보이는 대상을 내적으로 투영하는 일, 그런 내적 체험으로 그 대상을 이차원으로 옮기거나 삼차원에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에로티즘이다. 에로틱한 이미지에 금기를 가하는 사람은 전통적이지만, 에로티즘으로 금기를 위반하려는 사람은 혁신적이다. 바타유의 논의를 좀 더 들어가 보면, 노동은 에로티즘을 제어하는 금기를 만들지만 모든 위반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위반이 전혀 없는 금기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기는 위반을 통해 고양된다. 에로티즘은 금기와 위반을 통해 인간의 심리적 기반에서 발생한다. 그 점에서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포르노(그래피)와도 다르다. 인간의 에로티즘은 동물적인 성행위와 다르다. 

우리의 생명은 “온통 불안정”하여 바타유의 말마따나 “소란스러운 충동이 끊임없는 폭발을 부른다”. 하지만 “우리의 내부에는 자원을 불태워, 소진 또는 소멸시키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 그래서 에로티즘으로 불타오르고 소멸하려는 충동이 도사린다. 바타유는 “에로티즘, 그것은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 “에로티즘의 최종적 의미는 죽음”이라고 재차 반복한다. 이보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인간이 성본능과 죽음 본능, 즉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두 개의 본능을 아 산다고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죽음과 대면하는 에로티즘의 본능 속에서 삶의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다.

잔니가 보았을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에는 금기와 위반이 있고 목 베임 당하는 죽음이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이 청동상을 보는 이들에게 긴 여운을 남기는 메두사의 에로티즘이 삶의 에너지가 되는 지점이다. 

■ 패션 규범에 대한 베르사체의 위반 

에로티즘(혹은 종교에 대한 명료한 내적 체험)은 금기와 위반이 시소게임의 양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불가능했었다. 

- 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 

금기와 위반이 시소게임처럼 순환 반복되는 것은 에로티즘만이 아니다. 바타유는 이런 구조를 종교문화에서도 찾는다. 그는 희생제나 인신제를 통해 이 구조를 분석하지만, 우리는 쉽게 금지 규정이 많은 종교에서 위반을 목격하게 된다. 계율을 위반하는 불교의 ‘파계(破戒)’ 전통이나 안식일법을 위반한 기독교의 ‘주일’ 전통 등이 그렇다. 특히 예수께서 음행한 여인을 향해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유대인들을 향해 말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등의 구절들은 종교가 지닌 ‘금기와 위반의 시소게임 양상’에 대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베르사체는 이런 금기와 위반의 시소게임을 패션에 접목시켰다. 잔니가 귀감으로 삼고 있는 예술가들은 ‘인상주의 창시자’ 가운데 하나인 에드가 드가, ‘색채 마술사’라 불리는 앙리 마티스와 소니아 들로네, ‘팔라스 아테나’에서 메두사를 표현한 ‘빈 분리파’의 구스타프 클림트, 팝아트의 대가인 앤디 워홀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당시 예술 규범을 위반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잔니는 패션 규범을 위반했다. 1980년대에는 메탈 소재를 통해 뱀가죽 효과를, 1990년대에는 폴리우레탄과 고무를 통해 프린팅 효과를 고안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죽과 마섬유, 그리고 금속 소재의 결합과 재킷에만 사용하는 가죽 소재를 이브닝웨어로 사용했다. 잔니는 성모 마리아와 마돈나를 동시에 아우르며 표현해 내는 유일한 창조자였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비잔틴과 고대 이집트에 심취해 그 영감을 관능적인 디자인에 적극 활용했다. 패션 규범에 대한 그의 계속된 ‘위반’을 통해 그는 문화적 충동을 자극한다. 

■ 에로티즘의 상징인 메두사는 한낱 여성 괴물인가 

훗날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메두사의 잘린 머리를 여성 성기의 이미지로 파악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메두사를 쳐다본 남자들이 돌로 변했다는 것은 남성들이 여성을 통해 자신의 거세공포를 느낀다는 것. 프로이트는 잔니에게 신비스러운 창조의 에너지였던 메두사를 거세의 ‘이빨 달린 자궁(vigina dentata)’으로 바꾸어 공포의 대상으로 한정했다. 우리는 이 위반의 괴물 메두사를 칼로 도려내야 할까? 

권력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전제주의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예술가 벤베누토 첼리니가 보여준 금기와 위반, 죽음과 에로티즘. 슬픈 얼굴의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머리보다 더 높이 메두사의 목을 들고 있다. 20세기에 그 메두사를 로고로 사용하는 베르사체는 ‘위반’의 미학 속에서 문화 ‘전제주의’를 극복하는 자유의 쾌감을 맛본다. 

바타유가 신체를 “인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으로 꼽았듯이, 잔니는 신체의 관능이 눈과 몸을 즐겁게 하여 사회를 유지케 한다고 여긴다. 기존의 체제를 극복하는 힘이 위반이다. 위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놓는다.

브랜드는 금기에 대한 위반이다. 베르사체는 르네상스의 미적 감각을 동경하지만, 그 감각을 낡은 궁전에 가두지 않고 위반을 통해 패션으로 끌어냈다. 권위는 금기를 만든다지만 위반을 꿈꾸는 베르사체는 패션으로 더 강력한 문화적 에너지를 생성한다. 에로티즘은 문화를 파괴하기보다 쇄신케 한다. 에로티즘은 타인의 외모가 당신 속으로 들어와 이미지를 만들고 다시 떠올리는 예술이 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012058005&code=960100#csidx9681c8421d57aefaad1b3354560cf6e [서양고전학자의브랜드인문학] (11) 그의 패션에는 성모 마리아와 마돈나가 공존한다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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