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Norwegian Wood - The Beatlescover,guitar fromwww.youtube.com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모아놓은 글입니다.
유유정이 번역한 문학과 사상사의 92년도 8판 버전이라 지금 책과 다른 표현 혹은 문법과 다른 표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잘 돼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제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내 안에는 무언가 뿌옇게 흐린 공기 덩어리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덩어리는 뚜렷한 단순한 현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 형상을 말로 바꿔 놓을 수가 있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해 있다.
말로 해버리면 평범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기 덩어리로서 몸 안에 느꼈던 것이다. 당구대 위에 정렬한 적(赤)과 백(白)의 네 개의 공 안에도 죽음은 존재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것을 흡사 미세한 티끌처럼 폐 속에 흡입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59쪽

반딧불이 사라져 버린 뒤에도 그 빛의 흔적은 내 안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었다. 눈을 감은 두터운 어둠 속을 그 가녀린 엷은 빛은, 마치 갈 곳을 잃은 영혼처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어둠 속에서 몇 번이고 손을 뻗쳐 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는 것이 없었다. 그 조그마한 빛은 언제나 나의 손가락 조금 앞에 있었다.
95쪽

어째서 남자들이란 머리카락이 긴 여자아이를 좋아하죠? 그런 거 꼬옥 파시스트 아니예요? 정말 시시하다구요. 어째서 남자들이란 머리카락이 긴 여자아이가 우아하고 마음이 상냥하고 여성답다, 그러는 걸까? 난 말예요, 머리카락이 긴 야비한 여자아이를 2백50명 쯤은 알고 있어요, 정말.
102쪽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는 법이야.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 뿐이지. 그런 짓을 해봤자 실망할 뿐이거든.'
그녀는 선글라스의 안경다리를 입에 물고 나직나직한 소리로,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다. 실망하는 것이 싫을 뿐이다> 가령 그쪽이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그땐 그 대사를 쓸 수 있겠네요' 하고 말했다.
104쪽

'부자의 최대의 잇점이란 게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모르겠는데?'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그거예요. 가령 내가 친구한테 뭐 좀 하자꾸나 그랬다고 해요. 그러면 상대가 이렇게 말하겠지요. 나 지금 돈이 없으니 안돼, 라고. 반대 입장이 된다면, 나라도 그런 소리는 못해요. 내가 가령 지금 돈이 없어 그런다면, 그건 정말 돈이 없다는 소리예요. 비참할 뿐예요. 미인인 여자아이가 난 오늘은 얼굴이 지저분하니까 외출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과 같거든요. 못생긴 여자아이가 그런 소릴 해봐요, 웃음거리가 될 뿐이지. 그런 것이 내 세계였던 거예요. 지난 해까지 6년간의.'
120쪽

'우린 모두 어딘가 휘어지고, 비뚤어지고, 헤어나지 못하고, 자꾸만 물 속에 빠져들어 가기만 하는 인간들이에요. 나도 기즈키도 레이코 언니도. 모두 그래요. 어째서 좀 더 정상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죠?'
'그건, 내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야.'
242쪽

나는 그가 아작아작 오이를 씹고 있던 소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사람의 죽음이란 것은 작고 기묘한 추억들을 뒤에 남기고 가는 것인 모양이다.
327쪽

'인생이란 비스켓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나는 몇번인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머리가 나쁜 탓이겠지만, 가끔 미도리의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어.'
'비스켓 통에 여러가지 비스켓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지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버리면 그 다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 두면 나중이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켓 통이다, 라고.'
'음, 하나의 철학이긴 하죠.'
'하지만 그건 정말이에요. 난 경험으로 그걸 배웠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404쪽

나는 매일, 들려줄 사람도 없이 기타를 치고 있어요. 이것도 무언가 쓸모 없는 짓이죠.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도 싫어요. 언젠가 다시 당신과 나오코가 있는 방에서 포도를 먹으며 기타를 치고 싶어요.
그럼 이만.
6월17일
이시다 레이코
431쪽

나오코는 죽음을 안은 채 거기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확실해, 와타나베. 그건 그저 죽음일 뿐이야. 마음 쓰지 말아요'하고.
435쪽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죽음이라면 죽음도 나쁘지 않은 것이구나, 하고. 그래요, 죽는다는 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예요, 게다가 나는 여기 있으면 아주 편안해요. 어두운 파도 소리 틈에서 나오코는 그렇게 말했다.
436쪽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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