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시들은 이제니 시인의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 에서 발췌했습니다.
시집의 가장 앞 페이지에 쓰여있는 '시인의 말'보다 뒷면 표지에 쓰여있는 글이 이 시집의 분위기를 더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말하지 않는 말로 말할 때,
말하지 않은 말로 말할 때,
서로에게 서로를 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그때,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만 흐릿한 암시로.
다만 흐릿한 리듬으로.
뜻 없는 걸듯. 뜻 없는 것들. 뜻 없는 것들.
무한을 보고 싶다.

너는 불투명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너는 묻어버리고 싶은 것이 있다
너는 숨기고 싶은 병이 있다
너는 위안할 것이 없어 시들어버린 꽃을 본다
< 수요일의 속도 >
모든 것이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들려줄 말이 떠올랐지만 들려줄 곳이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얼굴로 벽을 마주 보고 섰다
< 구름과 개 >
가장 순한 순간에도 가장 악한 악한이 될 수 있다.
아무도 누구도 너를 비난 할 수 없다,
오직 너 자신 외에는.
맺힌 것이 있었던 것처럼 너는 울었다.
< 사과와 감 >
살면서 죽어간다고 말하는 대신
죽어가면서 산다고 말하는 일의 아득함에 대해
< 두루미자리에서 마차부자리까지 >

언제나처럼 구겨진 채로 떠내려갔다 떠내려온다
복숭아 같은 다정함이 우리를 부른다
< 기적의 모나카 >
소망 뒤에는 불행이 온다는 것을 확신하는 동안
구원이 필요한 순간에
가장 부족한 것은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 음지와 양지의 판다 >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
잎들은 눈부시게 흔들리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희미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지금 순간의 안쪽에 있는 것인가
< 분실된 기록 >
이 수풀을 건너가면 나는 너를 말할 수 있으리라
오래전 보았던 그것이 바로 내 미래임을 알아차리듯
< 수풀로 이파리로 >

눈물 나게 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네가 말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눈물 난다
< 잔디는 유일해진다 >
눈물 많은 사람은 눈물 많은 인생을 살게 된다
문장을 읽다가도 울고
사람을 보다가도 울고
< 고양이는 고양이를 따른다 >
서로에게서 지워져가기를 바랐던 날들로부터
돌아가 쉬고 싶은 오래전 요일들 위에서
각자 자신의 상처 속으로 몸을 숨기듯
< 태양에 가까이 >
멈추면 사무칠까봐 더 더 걸었지
뒤처진 쪽을 슬쩍슬쩍 바라보면서
서로가 서로를 잘 따라오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면서
언제나 언제나 그렇게 걸었지
언제나 그렇게 걸어왔지
춥고 어두운 길에선 더더욱 더
< 먼 곳으로부터 바람 >

나는 기다릴 수 없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떠올렸다
망설여서는 안 되는 것을 망설였던
시간을 떠올렸다
< 초다면체의 시간 >
믿고 싶어서 믿기 시작하다 보면
믿지 않아도 믿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다
네가 너를 속이고 있듯이
< 얼굴은 보는 것 >
그러니까. 아직도 내게. 여전히 내게.
그리운 것이 남아 있었나.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기다림이라는 감정이.
어떤. 그래. 그 어떤 감정이.
잠에서 깨어나서도 한동안.
울었지. 웃었지.
사라졌어. 지워졌어.
그러니까 그것은. 뭐랄까. 그것은.
< 나선의 감각 - 공작의 빛 >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영영 아프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슬프게 되었다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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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실시간 고윤정 김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