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0 호
이덕무가 참고한 일본 서적
김 문 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
이덕무의 『청령국지(蜻蛉國志)』는 조선인이 작성한 일본 지리지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와 비슷하다. ‘청령국’은 일본을 의미하는데, 일본의 지형이 청령 즉 잠자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덕무는 이 책에서 천황의 계보, 관직, 유명인, 지도와 지리지, 풍속, 생산품, 교역 상황 등을 정리하여 일본의 실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유득공은 책의 서문에서 이덕무가 평소 해외 국가에 대한 정보를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해 두었으며, 정치가는 이 책으로 인근 국가와 친선을 도모할 수 있고, 외교관은 상대국의 형세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 평가했다.
주자학 일변도의 조선유학에서 벗어난 조선 기록들
『청령국지』의 「이국(異國)」은 일본과 교류한 국가를 정리한 부분이다. 조선에 관한 기록도 있으며, 몇 가지를 거론하면 다음과 같다. ‘수인 3년(B.C. 27)에 신라 왕자 천일창(天日槍, 아메노히보꼬)이 처음 내빙(來聘)하여 모두 일곱 가지 물건을 바쳤다. 천일창은 태이의 딸인 마다오를 얻어 단마제조(丹馬諸助, 다지마 모로스꾸)를 낳았다.’ ‘응신 15년(284)에 백제에서 아직기(阿直岐)를 보냈고, 이듬해에 왕인(王仁)이 왔다.’ ‘효덕 백치 2년(651)에 신라 사신 지만사찬(知萬沙湌)이 왔다. 당나라 의관(衣冠)을 착용하였기에 풍속을 바꾸게 될까 염려하여 쫓아 보냈다.’ ‘천지 5년(666)에 탐라(耽羅)에서 처음으로 왔고, 7년에 방물(方物)을 조공으로 바쳤다. 오곡의 종자를 하사했다.’
이를 보면 일본 천황의 연호로 연도를 표시하고, 신라, 백제, 탐라에서 파견된 사신이 조공을 바쳤다고 하여 일본인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유학자인 이덕무로서는 신라 사신이 당나라 의관을 착용한 것은 문화국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데 ‘쫓아 보냈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이덕무의 기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오사카 의사였던 사도양안(寺島良安, 데라시마 료안)이 작성한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서 발췌한 것이다.
중국-일본-한국을 관통한 『화한삼재도회』
사도양안은 1607년에 명나라 왕기(王圻)가 편찬한 『삼재도회』를 저본으로 하면서, 일본과 관련된 내용을 대폭 보강하여 이 책을 편찬했다. 총 105권 81책이나 되는 거질의 백과서전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713년과 1772년에 간행된 본이 발견된다. 이 책은 1748년에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조명채의 기록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덕무는 1763~1764년에 일본을 다녀온 원중거(元重擧)와 성대중(成大中)에게서 이 책을 입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은 평소 이덕무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에도 시대의 도쿄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조선인이기도 하다.
이덕무가 『화한삼재도회』에서 참고한 부분은 「이국인물(異國人物)」의 조선(朝鮮) 탐라(耽羅) 부분과 「조선국지도(朝鮮國之圖)」의 조선국(朝鮮國) 임나국(任那國) 탐라국(耽羅國) 부분이다. 사도양안은 이 부분을 『동국통감』 『해동제국기』 같은 조선의 서적까지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에서 처음으로 일본에 조공을 올린 것,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삼한(三韓)을 정벌한 것, 풍신수길(豊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조선을 정벌한 것 같은 기사를 별도의 항목으로 서술함으로써 18세기 일본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덕무는 『화한삼재도회』를 열심히 읽고 주요 부분을 발췌해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청령국지』에서 정리한 20개 국가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이 책을 참조하여 작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을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니다. 이덕무는 일본의 시문과 유학은 한반도에서 처음 되었다고 했고, ‘조공(朝貢)을 바쳤다’거나 ‘조공사(朝貢使)’란 표현을 삭제하거나 완화시키는 형태로 조정했다. 그러나 그가 『청령국지』를 작성할 때 『화한삼재도회』가 중요한 참고서였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17세기 초에 이수광은 주로 명나라에서 간행된 서적을 참조하면서 외국을 소개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이덕무는 『화한삼재도회』라는 일본 서적을 이용하여 외국을 소개했다. 일본은 국제 정세에 상당한 정보력을 가진 문화국가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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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문식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저서 : 『조선후기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 조선후기 지식인의 세계인식』, 새문사, 200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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