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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768
이 글은 8년 전 (2017/11/02) 게시물이에요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은 구한말의 인물로 민씨척족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는 임오군란때 병사들 봉급에 모래를 타넣엇다 맞아죽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를 황현선생이 평하기를

『무식한 자로 원유와 집을 꾸미고 가무과 여색을 즐겨 뇌물을 청하여 받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는 매관과 옥사, 수뢰 등을 주도하며 패정을 이끌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역시 사람은 벼슬을 얻은후 친일,친러,친미등으로 노선을 갈아탔습니다..

전봉준이 잡힌후 일본검사에게 말하길

자신들이 타도하려한 수탈과 학정을 일삼는 조선 3대 탐관오리라고 지목했으며

매관매직하여 외조부를 5만냥에 광양군수로 발령내기도 했습니다..

친일파의 거두가 된 송병준을 등용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황현선생의 "매천야록"에서 역시 외세에 의지하는 간신의 거두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정답은 아래에~~~

사람은 처음뿐 아니라 마지막도 봐야한다 | 인스티즈

바로 충정공 민영환공이십니다.;

그는 그저그런 탐관오리로 끝날수도 있었지만...

니콜라이 2세 대관식, 빅토리아여왕 즉위60주년 기념식등에 참석하며

세계 정세에 눈뜨게 되고..조선의 현실을 깨닿게 됩니다..

그렇게 일본의 야욕을 깨닿게 되자

미국, 러시아를 이용하여 일본세력을 막으려 합니다만..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때였고...

1905년 그는 육군부장 시종무관장으로 근무하던 중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비분강개하여 통곡하며, 

원임 의정대신 조병세, 특진관 이근명과 함께 대궐로 나아가 5적의 처단과 조약의 폐기를 청원하였고.

11월 27일 재차 상소를 대한문에서 하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 

11월 29일 석방되자 30일 45세로 비수로 배를 갈라 자결했습니다.

민영환이 자결하자 그에 운전사가 따라 자결했고, 

전 좌의정 조병세, 전 대사헌 송병선, 전 참판 홍영식, 학부주사 이상철 외에 전국적으로 56명이 자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종황제와 외국 공사, 그리고 백성들에게 보내는 유서  3통을 작성했는데

백성들에게 보내는 유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슬프다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치욕이 이 지경에 다다랐구나. 

생존경쟁의 이 세상에 우리민족의 운명이 어찌될 것인가.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죽고 죽기를 맹세하는 사람은 살아 나갈 수 있으니 

이는 여러분이 잘 알 것이다. 

나 영환은 죽음으로 황은을 갚고 우리 2천만 동포에게 사죄하려 한다. 

영환은 이제 죽어도 혼자 죽지 아니하며 황천에서 여러분을 돕고자 한다 

바라건데 우리 동포 형제여 2천만 배나 노력을 더하여 사기를 굳게 가지고 

학문에 힘쓰며 마음을 합하고 힘을 아울려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할 지어다. 

그러면 나는 지하에서 기꺼이 웃겠다. 

아, 조금이라도 실망하지 말라.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여 마지막으로 고한다“

 

구한말의 지사 매천 황현은 그의 저서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민영환의 비장한 순국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칼이 워낙 작아서 한번 찔러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찌르는데) 피가 칼자루에 묻어 잘 쥐어지지 않았으므로 벽에 손을 닦고 또 닦고 하여 남은 흔적이 있었다.

민영환의 순국 소식은 곧 전국 각지의 국민들에게 전해졌으며, 

또한 삽시간에 온 장안의 시민들이 민영환의 집에 몰려들어 통곡하면서 

"국가의 기둥이 쓰러지고 큰 별이 떨어졌다."고 울부짖었으며.

그리고 이상설은 종로로 뛰어 나와 시민들을 모아 놓고 

"민영환이 죽은 오늘이 바로 전국민이 죽은 날이다.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민영환 한 사람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전 국민의 죽음 때문이다."

라고 연설하였습니다. 

그가 순국하기 전 남긴  유서는

그 전문이 순국 이튿날인 1905년 12월 1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려 전국민에게 읽혀졌고, 

국민의 항일민족의식을 북돋우는데 큰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대한매일신보는 12월 3일자에 논설을 실어 민영환의 순국을 찬양하고, 

온 국민이 자유 독립을 위하여 힘써 나아갈 것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가 순국한 지 8개월 뒤인 1906년 7월 

그의 집에서 가지가 4개이고 잎이 48개인 푸른 대나무, 이른바 혈죽(血竹)이 솟아올랐습니다

이 대나무는 그의 순절 당시에 입었던 피뭍은 옷를 봉안해 둔 마루 틈에서 자란 것이었고

이 소문이 신문에 보도되자 매일 수백 명의 내외 인사가 그것을 참관하러 몰려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혈죽을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가 순절한 개성 선죽교의 의죽에 얽힌 전설과 비교해서 혈죽이라고 불렀습니다.

민영환을 희대의 간신이라 평하던 매천 황현선생마저..

사람은 역시 마지막을 봐야하는구나라고 탄식하며 "오애시"를 지어 충정공을 기렸습니다.

주1)민영환이 송병준을 등용했지만..

충정공이 자결한 직후 송병준은 충정공의 전재산을 가로채고 가족들을 길로 내몰았습니다

주2)황희정승의 후손이자 매천야록의 저자이며 구한말의 지식인이던

매천 황현선생 역시 이후 경술국치소식에 그 유명한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하셧습니다..

절명시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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