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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 (2017/11/17) 게시물이에요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인스티즈


윤성택,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지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었던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억을 엎지르는 동안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내 안 실뿌리처럼

추억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흙을 모아 채워 넣고

손으로 꾹꾹 눌러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꽃잎은 말없이 흔들렸습니다

앞으로는 엎지르지 않겠노라고

위태하게 볕 좋은 옥상으로

봄을 옮기지 않겠노라고

원래 있었던 자리가 그대가 있었던 자리였노라

물을 뿌리며 꽃잎을 닦아 내었습니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인스티즈


이문재, 거울

 

 

 

모든 빛을 통과시키기 때문에

유리창은 늘 차갑다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아서

거울은 모든것을 되비춘다

유리의 막힌 한쪽

거울의 뒤쪽

거울은 따뜻하지 않다

내 살아온 날들은

내 죽음이 함께 살아온 날들

이렇게 살아 있음의 뒤편이

바로 나의 죽음

거울의 배면

내가 죽어야 내 죽음도 죽는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인스티즈


정끝별, 자작나무 내 인생

 

 

 

속 싶은 기침을 오래하더니

무엇이 터졌을까

명치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 나왔다

 

길가에 벌()처럼 선 자작나무

저 속에서는 무엇이 터졌길래

저리 흰빛이 배어 나오는 걸까

잎과 꽃 세상 모든 색들 다 버리고

해 달 별 세상 모든 빛들 제 속에 묻어놓고

뼈만 솟은 저 서릿몸

신경줄까지 드러낸 저 헝큰 마음

언 땅에 비껴 깔리는 그림자 소슬히 세워가며

제 멍을 완성해 가는 겨울 자작나무

 

숯덩이가 된 폐가(肺家) 하나 품고 있다

까치 한 마리 오래오래 맴돌고 있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인스티즈


최승호, 그림자

 

 

 

개울에서 발을 씻는데

잔고기들이 몰려와

발의 때를 먹으려고 덤벼든다

떠내려가던 때를 입에 물고

서로 경쟁하는 놈들도 있다

내가 잠시

더러운 거인 같다

물 아래 너펄거리는

희미한 그림자 본다

그 너덜너덜한 그림자 속에서도

잔고기들이 천연스럽게 헤엄친다

어서 딴 데로 가라고 발을 흔들어도

손으로 물을 끼얹어도 잔고기들은

물러났다가 다시 온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인스티즈


유홍준, 주석 없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돌 때

너는 전반부 없이 이해됐다

너는 주석 없이 이해됐다

내 온몸에 글자 같은 가시가 뻗쳤다

가시나무 울타리를 나는 맨몸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가시 속에 살아도 즐거운 새처럼

경계를 무시하며

 

1초만에 너를 모두 이해해버린 나를 이해해 다오

 

가시와 가시 사이

탱자꽃 필 때

 

나는 너를 이해하는 데 1초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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