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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현 (25)ll조회 1557l 1
이 글은 6년 전 (2017/12/14) 게시물이에요








"야, 뭐야 너 이사했다더니 ..?"

며칠 전 이사를 한 나에게 집들이를 온다며 소주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들어오던

시후와 종욱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하긴, 무리도 아닐테지_
나도 처음 이 집에 도착했을 때의 반응이 저들보다 더했으니.

"말도 안돼, 내가 그런 악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아는 형이 살던 집인데 해외로 전근가는 바람에 집이 몇 년 비게 됐나봐,
그래서 싼 값에 들어올 수 있었어_
으휴, 이런 집이란걸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을 거야"

집은 내가 가진 돈으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꽤 넓은 단독주택인데다 작은 차고까지 있었다.
하지만 산동네쪽에 위치한데다 근처에는 단독주택과는 어울리지 않는
더러운 연립아파트가 사방을 메우고 있었다.
그 덕에 햇빛도 잘 들지 않아 어둡고 음습한 공기가 집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넓은 내부 구조 여기저기가 꽤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것처럼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파손된 곳도 많아 공포영화 세트장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지금 시후나 종욱이 보고 있는 집안도 그나마 내가 힘닫는 데까지 치워놓은 상태였다.
대충 치워놓았던 안방에서 술자리를 펴며 시후가 입을 열었다.

"역시 자취방이랑은 비교가 안되네, 치워놓으니까 정말 멋진걸!!"

"그러게 말이야. 집도 엄청 크고, .. 혼자 살기에는 좀 적적하긴 하겠다"

종욱의 말에 내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럼 너네도 여기 와서 살래? 안그래도 나도 이렇게 큰 집에 살기는 무리거든"

"우왓! 정말?"

비좁은 자취방에서 혼자 자취하던 시후는 좋아라하며 승낙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종욱은 약간 망설이는 눈치였다.

"글쎄, .. 나도 그러고 싶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실지 모르겠네_"

"아, 괜찮아. 천천히 생각해도 되는 문제잖아 하하하 야! 마시자 마셔!!"

집들이겸 청소를 도와주겠다는 원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밤새 술 마시고 떠들기에 바빴다.















"야아!! 일어나 일어나!!"

진탕 술을 마시고 방안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녀석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벌컥 열었지만 여전히 아침햇살이 비춰들어 않았다.
산그림자와 아파트의 그림자때문에 집은 마치 분지같이 되어버려
겨우 정오가 되어야만 그제야 햇빛이 집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시후와 종욱은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일어나 앉았다.

"어제 진탕 마실 때부터 알아봤어!"

"으으.. 역시 저 인간술병_ 그렇게 마시고도 끄덕없다니"

나는 녀석들에게 한번 슬쩍 웃어주고는 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아침 식사 후에도 멍하니 앉아 있는 녀석들에게 나는 면장갑과 쓰레기 봉투를 던져줬다.
엉겁결에 받아든 녀석들이 나에게 뭐야? 하고 물어오자 나는 면장갑을 끼며 친절히 대꾸했다.

"보면 몰라? 청소하라고 청소! 원래 이런 의도로 우리집에 놀러온거 아니었어?"














투덜거리는 녀석들과 함께 집 안 곳곳을 치워가기 시작한지 몇시간 째.
작은 방 몇개와 욕실, 주방까지 어느정도 정리를 한 우리는
마지막으로 거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햇빛도 들지 않는데다 습하기까지 그런지 천장과 벽지 곳곳에는
시커멓게 곰팡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엄지 손가락만하게 자란 바퀴 벌레들도 슬금거리며 기어다녔다.

"집 좀 치우고 나면 바퀴잡는 약 좀 사서 놔야겠어"

시후가 눈쌀을 찌푸리며 다섯마리째 바퀴벌레를 발로 밟아 죽였다.

"으휴, 그러게 말이야. 참 너 처음에 이사왔을 때는 이것보다 더했다며?"

"응 이것도 내가 꽤 치운거라구, 한군데 손도 못댄 곳도 있긴 하지만.."

"어디? 거실이 마지막 아니야?"

종욱이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아, 집 뒤편에 작은 차고가 하나 있더라고_ 너희들과 같이 치우려고 남겨뒀어"

나는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작은 차고를 가리켰다.

"우와! 차고도 있어?"

시후가 눈을 반짝거리며 창문에 기대섰다.

"차고라고는 하지만 거의 창고에 가까운 거지 뭐,"

잔뜩 기대한 것 같은 녀석들을 데리고 차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지만
녀석들은 아랑곳 않고 눈까지 반짝반짝 빛내가며 나의 뒤를 따랐다.
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종욱이 더욱 관심을 보였다.
하긴, 요즘 주차문제로 다들 고민이 많다고 하니까_
집 뒷쪽 커다란 연립아파트의 그늘속에 웅크리고 앉은 낡아빠진
차고를 보고는 녀석들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곧 시후가 겸연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오, 오래 되었으니까 그렇겠지 하하하, 치우면 좀 나아질거야"

머쓱해진 내가 열쇠를 뒤적거려 문 옆에 설치된 자물쇠에 철컥 열쇠를 꽂아넣었다.
우웅_ 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이중으로 접혀 올라가도록
설치되어진 차고 문이 작게 흔들흔들 거리다가 곧 미동도 않고 덜컥 멈춰섰다.

"우와, 자동문이야?"

"근데 왜 올라가다가 마냐?"

나는 대답대신 문쪽으로 다가가 끙끙거리며 문 아랫부분을 잡고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모르겠어, 안쓴지 오래되서 그런가봐. 서 있지들 말고 와서 좀 도와!"

그제야 녀석들은 비척비척 걸어와서는 나와 같이 문을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곧 철컹거리며 문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시후가 농담삼아 반자동이네 하고 말하며 웃어댔다.
차고 문이 완전히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쾌쾌한 냄새가 공기중으로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우웩! 무슨 냄새야!"

우리는 지독한 냄새에 코를 잡으며 뒷걸음질쳤다.

"야, 안에 시체라도 있는거 아냐?"

종욱이 여전히 코를 잡은체 코맹맹이 소리로 실없이 물어왔고
나는 녀석을 향해 비웃음을 한번 픽_ 날려주었지만 정말 이런 악취가 시취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안에 들어가서 보면 되지 뭐,"

차고 안은 여전히 햇빛이 들지않아 침침했고 나는 도저히 차고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어 밖에서 얼쩡대며 안을 살펴봤다.
우습게도 차고 안에는 문 말고는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창문조차 하나 없었다.
후각이 냄새에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공기중으로

냄새가 흩어진 것인지 곧 코에서 손을 뗄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나는 천천히 차고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는 어두침침한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으헉!!!"

차고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녀석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차고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무슨일이야! 진짜 시체라도 본거야?"

"저것 좀 봐!"

차고 안은 온통 새하얀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새하얗다는 말보다는 투명하다고 해야하나, ..
전혀 꽃답지 않은 창백한 시체같은 멀건 식물들이
차고안 어디랄 것도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바닥과 벽 심지어는 천장까지도

푸석푸석한 썩은 낙엽 조각들과 먼지들로 포장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

"무슨 식물같은데, 전혀 아름답지도 느낌이 좋지도 않아_ "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야. 마치 .."

종욱이 더듬대며 말끝을 흐렸다.

"죽은 여자 피부같애"

"저새끼는 국문과 아니랄까봐 꼭 말을 해도 .. 시를 써라 써!"

우스갯 소리를 하는 시후 덕분에 날카롭던 분위기는 다시 무마시켜졌지만

나도 어쩐지 그 꽃의 창백함에서 시체의 서늘함이 연상되어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하긴, 뭐 어차피 이것도 식물의 종류일 테니까 태우면 없어지지 않을까?"

나는 말을 마치며 가장 문 가까이 섰던 꽃같은 식물을 툭 하고 건드렸다.
그러자 벽에 붙어 흐물거리던 그것은 눅진눅진해 보이는 낙엽더미와 함께 땅으로 추욱 떨어져 내렸다.

"습기가 많아서 불이 붙지도 않겠는걸, 차라리 삽으로 떠내는게 낫겠다"

시후가 눅눅해진 벽을 살피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삽과 쓰레받기를 가지고 나와 벽에 붙어있던 식물들을 떼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별 힘 쓸 일도 없이 삽만 가져다대면 툭툭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번갈아가며 두 명은 식물을 떼어내고 한명은 바닥에 떨어진 잡동사니를 쓸어모았다.

"아얏!"

시후가 머리를 감싸쥐며 비명을 질렀고
갑작스런 상황에 우리는 놀라 시후에게 달려갔다.

"왜 그래?"

"으아, 아파라_ 저기 선반 모서리에 부딪혔어.
숙이고 있느라 몰랐는데_ 아씨 진짜 아프네"

철제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선반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힌 것인지
머리 중앙 두피가 살짝 긁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으아, 젠장! 야, 내 머리에서 피 안나냐?"

"어디 좀 봐봐"

장갑을 벗고 시후의 머리를 살피던 내가 살짝 긁히기만 한
시후의 머리를 살펴본 후 상처 주변을 입으로 후_ 하고 살짝 불어주었다.

"자식_ 엄살은! 아무렇지도 않.. 앗!"

눈에 먼지가 들어갔는지 화끈한 통증이 밀려와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에 먼지들어간것 가지고 지가 더 엄살이야! 웃기는 놈! 얼른 청소나 하셔!"

머리를 벅벅 긁고 일어선 시후가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내 모습에 우스갯 소리를 하며 차고 청소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결국, 시후는 청소가 끝나고 일주일 후에 우리집으로 이사를 왔다.
종욱이는 다음 학기나 되어야 집에서 독립하는게 가능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도 그리 깔끔한 성격이 아니라 집을 치우는 일을 매우 귀찮게 여기지만 시후는 나보다 더했다.

"야, 정시후_ 제발 방 좀 치워라, 곰팡이 다시 생기겠다!"

"잔소리 하지말고 니 방이나 잘치워!"

설겆이를 하고 거실로 나오며 거실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 시후에게 잔소리를 하다가
문득, 쉬임없이 머리를 긁고 있는 시후를 발견했다.

"정시후, 드디어 너!"

"뭐?"

녀석은 여전히 티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으로만 대꾸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손가락들은 두피 사이를 긁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안씻더니 비듬 생겼구나, 으하하하 녀석
곧 벼룩이나 이들도 아마 네 머리로 이사갈거다!"

"에?"

그제야 시후는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아! 하고
머리에 가져갔던 손을 의식하며 멋적게 웃어보였다.

"이 집에 이사오고부터 머리가 심하게 간지럽기 시작하더라고 헤헤"

"그건 집 탓이 아니고 네가 안씻어서 그래 임마!"

내가 톡 쏘아붙이자 시후가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러운 건 너도 만만치 않으면서! 너는 다래끼냐? 눈은 왜 긁고 그래?"

시후의 말을 듣고 놀란 내가 고개를 들자 정면으로 어두컴컴해진 거실의 유리창이 눈에 들어왔고
거울처럼 비춰진 내 모습은 오른쪽 눈 주변을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어라? 그러네? 네 말 듣고 보니까 눈이 간지럽기 시작한 것 같아"

"구박하지 말고 너도 좀 씻으셔"

시후는 티비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고
시후의 머리가 기대었던 쿠션에는 비듬처럼 보이는 새하얀 각질가루가 미세하게 쌓여있었다.













내가 자꾸 의식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눈은 더욱 자주 그리고 더욱 심하게 간지러워졌다.
그럴때마다 손을 씻고 안약을 넣었다.
안약을 넣거나 낮에 활동할 때는 별다른 간지러움이나
통증은 없었으므로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다래끼인가 싶어 사먹었던 약은 별 효과가 없었는지 자고 일어나면

눈 주변이 자주 아팠으므로 나는 임시방편으로 안대를 하고 다녔다.

"시후야!"

며칠전부터 방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 시후의 방문을 똑똑 소리가 나게 노크했다.

"..왜"

"너 방안에 여자라도 숨겨뒀냐? 왜 밖엘 안나오고 이야, 밥 차려놨어 먹어!"

한참을 식탁에 앉아 시후를 기다리던 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시후가 나오지 않자 화가 나서 혼자 밥을 먹어버렸다.

"야! 이자식아! 무슨 대단한 논문이라도 쓰는 거야? 밥도 안먹고 뭐하냐? 안나올래?"

며칠동안 내가 있을 때는 한번도 방밖으로 나오지 않는 시후에게
결국 내가 크게 화를 내며 소리치자 그제야 끼익_ 하고 시후의 방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방문이 열린 작은 틈 사이로 후욱_ 하고 불쾌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나는 코를 막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하고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얼굴은 하얗고 눈은 푸르죽죽하게 퀭한 모습의 시후가
야윈 얼굴로 비척거리며 방밖으로 나왔다.

"너, .. 무, 무슨 일이야?"

얼굴을 돌려 내게 힘없이 씨익 웃어보이는 시후는
어울리지 않는 겨울용 털모자를 덮어쓰고 있었다.

" .. 밥 안 먹어?"

비척대며 주방으로 걸어가던 시후는 곧 식탁에 앉아 조심스레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심상치 않은 시후의 눈치를 살피며 곁에 앉아 식사를 도와주었다.

"야, 너 어디 아프냐?"

걱정이 된 내가 묻자 한 두 숟갈 뜨던 숟가락을 툭 떨어뜨리더니 시후가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후의 손가락들은 쉴새없이 털모자 위의 두피를 긁적대고 있었다.

"현익아, 나 .. 나 어떡하면 좋아?"

"왜, 그래?"

녀석의 푸르스름한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마저도 퍼석퍼석해 보였다.
한참을 말없이 울던 녀석은 곧 목 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너 처음 이사왔을 때 차고에서 봤던 꽃 기억나?"

"으응, .. 기억이야 나지. 종욱이가 시체같다고 한 꽃, 근데 그건 왜?"

"그 꽃 내가 알아봤거든_ 그 꽃 이름이 수정초래"

"그래? 너 할일도 없냐. 그런걸 알아보게"

".. 그 꽃 곰팡이 꽃이래"

" .. 뭣?!!"

"수정초는 곰팡이 꽃이라고, 우리가 이미 그 차고에 들어섰을 때 나던 쾌쾌한 냄새는

곰팡이 냄새와 뒤섞인 수정초의 포자들이였어! 마땅한 숙주를 찾지 못한 그것들이
우리의 코속으로, 폐속으로, 피부안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거야, 봤지?
벽에 기생한 수정초는 영양분이 없으니까 금방 떨어져 나가는거_
그것들은 살아있는 숙주를 원했다고! 으아아악!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혼자 중얼거리며 발작을 일으키듯 소리를 지르는 시후를 보며 나는 잠시 겁에 질렸다.

"왜 이래! 정시후! 정신차려 이자식아!"

"모르겠어? 너한테도, 나한테도 자라고 있어! 우린 이 집을 나가야 해!"

"야! 왜 이래! 너 미쳤냐?"

겁에 질린 내가 사정없이 시후의 멱살을 붙들고 뺨을 갈겼다.
그리고, 순간 나의 거센 몸놀림에 시후의 머리에 쓰고 있던 털모자가 쑤욱 벗겨졌다.
나는 눈앞의 상황에 놀라 잠시 숨을 멈췄다.

"시, 시후야, 너.. 너.. 머,머리 ..."

시후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으로 떨어진 털모자를 주우려 몸을 구부렸다.
시후의 두피는 이미 녹아내릴만큼 찐득거리고 있었고
그 위로 생기없이 말라버린 검은색 머리카락들이 살짝 덮여있었다.
아아, 그리고 그 중앙엔 차고에서 보았던 수정초가 손가락 두개만큼의 크기로 솟아있었다.

"으아아아악!!!"

시후가 몸을 구부리자 머리 중앙에 뿌리내린 수정초가 흔들

덩달아 움직이며 먼지같이 미세한 하얀 포자 가루들을 공중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현익아?"

시후가 머리위에서 흔들거리는 수정초위로 털모자를 덮어씌우며 입을 열었다.

"그날 내 머리에 났던 상처속으로 포자가 파고들어 뿌리를 내린거야.
이 눅눅한 집은 온통 곰팡이의 천국이라고,
너와 나 모두가 곰팡이의 숙주가 되어버린거야!"

".. 마, 말도 안돼!"

시후는 경악하는 내 모습에 씁쓸한 웃음을 날리더니 내 오른쪽 눈의 안대를 잡아뜯었다.

"이것봐, 이 바보같은 자식! 이래도 부정할거야?"

안대를 떼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흐릿하게 보였다.
거실의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 속 내 모습은 이미 시후와 상태가 비슷했다.
내 오른쪽 안구와 피부조직의 틈 사이에서 수정초가 엄지 손가락 반만큼 싹이 나 있었다.
머리속의 상처로 포자가 파고든 시후와 눈 안으로 포자가 침투한 나_
나는 기절했다.











우리는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종욱이가 찾아와 이유를 물었지만 시후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깔끔한 성격의 종욱이는 방이 버석거린다며 가끔 방청소를 해주거나 음식을 해주고 갔다.
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시후의 머리위의 수정초는 이제 다섯개가 되었고
나의 오른쪽 눈동자는 완전히 수정초에게 잠식당했다.
시력은 잃은지 오래였고, 가끔 들여다보면 어느새 또 새로운 싹이 자라있곤 했다.

"우리,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난 언제 왼쪽 눈까지 잃을지도 모른다고"

"그래_ 요즘 나도 몸이 무거워지고 기운이 없어져"

시후는 예전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말라갔다.

"차라리 이 망할 곰팡이들을 잘라내자"

"뿌리까지 뽑지 않는 이상 생명이 질겨서 또 자랄거야"

".. 그럼 뿌리까지 뽑아버리자, 서로의 것을 뽑아주는 거야"

예전에도 나는 몇 차례 이것들을 잘라버리려 했지만 조금만 힘주어 건드리면

통증이 너무너무 심해 스스로는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었다.

"좋아, 그럼 서로 뽑아주기야"

시후와 나는 면장갑을 끼고 고개를 숙인 채 서로의 수정초를 단단히 잡았다.
손에서 미끄러질 것을 대비해 장갑 안쪽에는 끈끈한 풀도 붙여두었다.
시후와 나는 서로의 수정초를 잡고 카운터를 세기 시작했다.

"셋 하면 동시에 뽑는거야, 하나, 둘, .. 셋! .. 으아아악!!!"

"아아악!!!!"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고 그것은 시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손에 붙은 끈끈이 풀은 수정초에 착 달라붙었다.
시후도 나도 너무너무 아팠지만 서로 죽을 힘을 다해 수정초를 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우리의 수정초들은 떨어져나갔다.
쩌억_ 하는 두개골 갈라지는 소리가 나면서 내 손에 잡혀있던 시후의 수정초는

영양분이 되었던 시후의 뇌조직을 뿌리에 칭칭 감은 채 그대로 내 손안에 들려있었다.
보기좋게 반으로 갈라진 두개골 사이에서 피와 뇌수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수정초는 흐물거리며 시후의 둥그런 뇌를 뿌리로 우악스럽게 움켜쥔 체 놓지 않았다.
머리가 갈라지자 그 충격인지 안구까지 토로록 거리며 흘러내린 채
반대편으로 쓰러진 시후의 손에는 내 눈 속에서 기생한 수정초가 보였다.
수정초는 나의 안구를 삼키고도 모자라 나의 모든 내장 기관을 잠식할 셈이었는지

시신경에 연결된 근육 조직과 식도 및 내장들을
모조리 오른쪽 눈구멍으로 흐물거리며 끌고 나가고 있는 참이었다.
텅빈 뱃속으로는 울컥 거리며 공기가 차올랐고
피칠갑이 된 나의 오른쪽 눈구멍과 시후의 오른손에 들린
나의 수정초까지는 내장이 붉고 누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잠시동안 시후도 나도 우리는 서로의 수정초를 손에 든 채
만족한 웃음을 입가에 걸었다.














딩동_ 딩동_

"이 자식들은 집에서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종욱은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중얼거리며 다시 신경질적으로 벨을 눌렀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자 슬몃 걱정이 된 종욱은 담을 뛰어넘어 집 안으로 발을 옮겼다.

"휘유~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젠장"

집안 곳곳을 휘감고 있는 불쾌한 냄새에 종욱은 코를 막으며 현익과 시후의 이름을 불렀다.
천천히 발을 들여놓은 거실 바닥에는 예전 차고에서 보았던 창백한 꽃이

무더기를 이루며 피어있었고 바닥은 온통 곰팡이 투성이었다.

"젠장, 집 꼴을 이렇게 해놓고 어딜 간거야_ 다시 전화해볼까?"

휴대폰을 꺼내든 종욱은 현익의 핸드폰 번호를 꾹꾹 누르다가 잠시 멈칫했다.

"어? 이게 뭐야?"

이제까지는 잘 몰랐는데 얼마전 현익네 집에서 요리를 하다가
칼에 베인 손가락에 감아두었던 밴드 사이로 무언가 삐죽 솟아올라 있었다.

"이게 뭐지?"

종욱이 천천히 밴드를 풀자 손가락 끝에 생긴 작은 상처는 하얗게 곪아

눅진눅진 해져 있었고 그 사이에서 창백하고 작은 수정초의 새싹이
기다렸다는 듯이 살을 헤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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