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및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중국 정부와 중국 인민해방군이 전차와 장갑차를 동원하고 총포를 난사해서 유혈 진압한 사건이다.
참가자들의 절대다수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각계각층에서 참여한 시민들이었다.
개중에는 상인도, 노동자도, 언론인도, 의사도, 대학 교수도, 심지어는 공안에 법조인, 공무원도 있었으며
적게는 9살짜리 아이에서 많게는 백발의 노인까지 참여한 범대중적 평화 시위였다.
1989년 광장에서는 아이들이 웃는 얼굴로 춤을 췄다.
모택동의 초상화에는 페인트가 칠해졌다.
학생들은 광장에 '민주주의 여신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동상은 그들의 투쟁을 상징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 시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교육 실습생들도 손을 들고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자들은 총기 넘치고
낭만적이었다.
천안문에는 개혁을 부르짖는 깃발이 나부꼈다.
그러나 평화로운 승리는 점점 불확실해졌다.
천아문에는 죽음의 기운이 다가오는 듯 했다.
[혐오주의]
탱크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자전거와 시신이 어지러이 뒤엉켰다.
탱크에 깔려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살과 뼈가 넝마조각처럼 흐트러져 있다.
탱크에 다리가 잘려나간 중상자
천안문은 그야말로 대학살이었다.
잡힐까봐 숨 죽인 채 있는 시민의 모습.
민주주의 여신상은 탱크에 의해 분쇄되어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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