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ogan Lerman
우리 동네엔 큰 공원이 하나 있었는데
난 그 공원에서 자주 산책을 했었다.
하지만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에는
차마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
한동안 그 공원에는 나가지 않았다.
드디어 해가 바뀌고
세상을 덮고 있던 눈은 맥 없이 녹아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던 그 공원도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생기가 돌았다.
나도 오랜만에 다시 그 공원을 찾았다.
-
마지막으로 왔던 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바닥에서 뒹굴었던 잎들은
다시 나무의 팔뚝에 돋아났고
자취를 감췄던 풀들은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면 푸르른 하늘과
높게 뻗은 나무들이 보였고
앉으면 봄이 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작은 꽃봉오리가 입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쭈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보았을 때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크고 둔탁한 카메라를 들고
렌즈를 통해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놀란 듯했다.
렌즈를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는지
다가온 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는 파란 하늘보다 빛났다.
-
그와 종종 공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와 공원에서 만나면 함께 산책하다가
그는 사진을 찍고 나는 그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서 있는 그를 보며
이 계절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그 몰래 하기도 했다.
" 열심히 사진 찍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
내 말에 그는 수줍은 듯 보였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나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 거기서 날 바라보고 있는 당신도 보기 좋아서. "
-
겨울의 기운은 이제 찾을 수 없는
완연한 봄이 되었다.
꽃들은 활짝 피었고 나뭇잎은 더욱 푸르렀다.
평소처럼 그와 공원에서 만나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는 대뜸 나에게
자신의 사진을 찍어 달라며 카메라를 건넸다.
난 사진 찍는데엔 소질이 없었기에 난처했지만
그의 눈을 바라보니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카메라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그리고 그의 고운 손과는 어울리지 않게 투박했다.
그가 저쪽으로 걸어가고
난 렌즈를 통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예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난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내가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그에겐 무슨 향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향이 났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소리 내 웃었다.

" 내가 당신을 볼 때 이런 표정이군요.
정말 바보 같네요. "
-
처음으로 그와 공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가 나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꺼낼 때 그의 귀는
막 피어난 꽃 한 송이처럼 붉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카페라며 나를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갈 때
그는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카페는 그의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은 채
내 앞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은 색달랐다.
그는 자신이 아끼는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인화한 사진을 보는 건 오랜만인 듯 했다.
" 사진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 "
그는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커피 안에 들어있는 얼음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 난 사진을 좋아하지만.
당신만은 이렇게 눈으로 담는 게 훨씬 좋아요. "
2. Sebastian Stan
난 계절 중에 겨울을 가장 좋아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고
찬 바람을 맞으며 올해엔 이런 일이 있었지 추억하며
새로운 해를 기다리는 그런 설렘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을 지우개로 지우듯 내가 사는 세상을 덮어버리는
새하얀 눈이 가장 좋았다.
-
나는 더 새하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모두가 밖에 나가기를 꺼리는 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안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따뜻한 공기가 가득했다 .
덕분에 기차의 창문엔 서리가 잔뜩 껴
밖이 보이지 않았다.
지워도 지워도 계속 생기는 서리를
손바닥으로 지우고 지우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떤 한 역에 기차가 멈춰섰다.
작디 작은 간이역이었다.
잠깐 멈춰 선 사이 한 남자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이 간이역에서 올라탄 모양이다.
밖이 꽤 추웠는지 그의 코끝은 빨겠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서
우리는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남자와 나는 같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초콜릿 한 조각을 주면서
우리는 말문을 텄다.
그는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과묵한 편도 아니었다.
적어도 나와의 대화를 지겹다고 느끼진 않아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와 나의 목적지는 같았으며
그는 나보다 하루 더 머문다고 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여행을 하기로 했단다.
혼자 하는 여행.
뭔가 그와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새하얀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원래 자기 것이었다는 듯
천천히 내리는 눈은 온 몸으로 모든 것을 덮고 있었다.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왼쪽으로, 그는 오른쪽으로 걸음을 달리했다.
쌓인 눈을 대충 치운 구불구불한 길을
얼마 걷지 않았을 때
나와 다른 방향으로 향했던 그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 당신만 괜찮다면 동행 하고 싶은데. "
거절해도 상관없다는 그의 표정이었지만
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
이곳은 관광객이 많은 관광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화려한 볼거리가 있지는 않았다.
그저 넓은 들판에 쌓인 눈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난 다른 어느 관광지보다 이곳이 좋았다.
그도 그런 듯 보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을 걸었다.
내 뒤엔 그가 내 발자국을 따라오고 있었다.
뽀드득 밟히는 눈 소리조차 좋았다.
그리고 내 뒤를 따라오는 그의 발소리도 좋았다.

잘못해서 넘어질 뻔하면
그가 뒤에서 잡아주었다.
고맙다고 말하면 그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하얀 눈밭을 걸으며
기차 안에서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도 계절 중에서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하얀 입김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
내 일정은 모두 그와 함께했다.
대부분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위주였다.
짧은 여행의 마지막 날.
떠나기 전 그와 작은 마을의 작은 카페에 들어섰다.
따뜻한 카페에서 더는 입김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와 내 앞에 있는 커피가 뜨거운 입김을 뱉고 있었다.
" 생각은 잘 정리됐나요? "
여행의 끝이 아쉬운 마음을 담아 그에게 말을 건넸다.
조금 더 있다 그가 떠나는 날에
함께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장갑을 끼고 있었음에도
그의 손끝이 붉었다.
차가운 손을 녹이려는 듯
그는 자신의 커피잔을 어루만졌다.

" 당신에게 돌아갔을 때부터,
무슨 생각을 정리하려 했었는지 잊어버렸어요. "
-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