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원래 조총을 도입한 것이 동양삼국중에서 '가장 늦은 나라'였습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강했던 것이, 조총이란 물건 자체가 '서구권'에서 들여온 물건이었는데(물론 우리의 중국 분들은 '원래 우리나라에도 원형이 있었던거 임'이라 주장), 그 접점이 '전무' 했던 조선으로서야 어쩔 수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서구와 접한 중국, 일본에서 먼저 활용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전장에서 조총을 먼저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서구와 접촉을 가장 먼저한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었고, 그 일본의 해적집단 '왜구'가 조총을 쓰며 중국 남부지방을 휩쓸자, 우리의 영웅 '척사마'께서 '와 저 x끼들 조총 우리도 써야 겠다'해서 이때 부터 명나라 조정에서 조총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뭐 나중에 척계광이 계진총병으로 부임하면서 조총을 대 북방민족 전술에 더 효과적으로 운용했다고 하는데, 아무튼.
조선이 조총을 '소유' 한 것은 임진왜란 직전 대마도주 종의지가 바쳐서였기는 한데, '접한 것'은 명종시절부터 입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명나라에서 왕직이라는 '명나라 왜구'가 한창 남해안 약탈에 열올리고 있던 시절에,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던 왜구의 대선단이 전라남도 일대를 침범하고(식량과 식수를 해결하고, 중국으로 가려 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 왜구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왜구들이 '화포'를 쏘았다는 기록이 보입니다(물론 이 화포가 대포인지, 아니면 조총인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습니다만).
또한 명종조 시절 활약하던 변협같은 인물도 '옛날에는 저 x끼들이 칼만 썼는데, 이제는 조총쓰니까 잡기 힘듦'이라고 임진왜란 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보아, 조총을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그 조총이란 물건을 대량으로 노획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당시 명나라 같은나라에 비해서 왜구들의 조총활용 빈도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조선은 당시 조총에 대해 별달리 주목하지 않습니다(다만 판옥선을 도입하는 등의 군사개혁을 이루고, 이 개혁은 훗날 임진왜란에 영향을 주죠).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일본이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약 40년동안 발전시킨 조총의 전술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였고(물론 다들 아시겠지만 조총 하나 때문에 패한 것이 아니라 단병접전능력과 조총을 접목시킨 일본의 전술에 패배한 것이죠), 의주로 간 선조는 명나라 군대를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 왔던 조승훈이 처참하게 패배하고 '야 이거 포수 없으면 안되겠다' 하면서 돌아갑니다.
여타매체에서 조승훈이 패배하고 명나라가 손을 놓은 것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조선왕조실록 기록만 봐도 남방에서부터 계~~속 줄기차게 포수들이 북방으로 충원되고 있었습니다.
조승훈도 보고를 했겠지만, 조선에서도 계속 '포수 좀 보내주세요'라고 줄기차게 청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뭐 명나라도 척계광이 왜구 토벌할때 포수로 재미를 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포수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구요.
그리고 평양성 전투 결과야 워낙 유명하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명나라 기병보다는 포수를 요청하자'라는 기록이 줄기차게 보이는 것만 봐도, 명나라 포수들의 활약을 꽤나 높이 평가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포수들을 조선에서 자체 육성을 하려 시도하는데,
조선에서 조총을 시연하는 모습이 평양성 수복 한 뒤인 1593년 2월에 시작되고 있습니다만, 명군이 압록강 근처에서 대기 하고 있던 1592년 9월에 "낙상지의 포수로 우리나라 애들 좀 가르치게 하는게 어떨까?"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조선조정도 몸이 달기는 달았었나 봅니다.
항왜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 때문에 처음부터 항왜들을 통해서 조총술을 익혔다고 여기는데, 아마도 맨 처음에는 명나라 사람들에게 배우다가 나중에서야 항왜들을 활용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그리고 조선조정에서 이즈음 부터 '진살정책'을 그만둡니다).
기본적인 군사훈련의 틀은 기효신서등을 통해서 명나라의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명나라사람을 통해서 배우려 했겠지만, 그 안에 있는 '왜검술'과 '조총술'을 훈련하는 '교보재'와 '훈련조교'로서 바로 가장 쓸만한게 항왜들이었으니,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항왜들을 활용한 것이겠죠.
그리고 그 결과
5년뒤인 1598년에는 명나라 제독 마귀가 "니네 포수가 우리보다 낫다"라는 평가까지 하게됩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항왜들을 활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총의 성능자체 부터가 명나라보다 일본의 조총이 훨씬 좋았었고(사거리 등에서), 일본에 비해서 명나라군에서는 조총이 '보조적' 역할에 그쳤기 때문에(평양성 전투도, 울산성 전투도에서 조총을 든 명나라 군인이 보이지 않는게 대표적. 실제 전투보고서에서도 명나라 조총의 활약은 전해지지 않음), 항왜들을 활용하여 조총을 제조하고 조총술을 익힌 것이 저러한 효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난 뒤에도 포수에 대한 지원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는데, 그 누르하치를 토벌하고자 하는 명나라의 요청으로 우리가 아끼고 아껴서 키워왔던 포수들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아예 명나라에서 조정에서 "너네 나라 포수 보내 셈" 이라고 명기하고 있어서 포수를 안보내는 꼼수도 쓰지 못했죠
그리고 청나라가 들어선 뒤에도,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포수들의 위력을 실감하였는지(청태종의 매부 였던 백양고라(양굴리)가 광교산전투에서 총 맞고 전사하죠), 순치황제시절(조선은 효종) 러시아가 아무르강 일대로 진출하자 조선의 포수를 차출하라 지시하고, 2번에 걸쳐 조총부대를 파견하니 이것이 그 '나선정벌' 입니다.
조선이 키운 포수들이 훗날 정묘/병자호란때 국난극복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남의 나라 전쟁에서나 활용된 것이 안쓰럽습니다만, 도입 5년만에 중국과 일본정도 수준에 오르고, 각 나라에서 높이 평가하게된 그 조상들의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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