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구룡채성(九龍寨城)
(Kowloon walled city)
구룡채성은 구룡성채로 불려오다가,
철거 전 현판이 발견되면서 본 이름이 구룡채성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양쪽의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 구룡채성은 왜 '암흑의 무법지대', '마굴' 등으로 회자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구룡채성 역사의 나쁜점인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 빽빽한 건물들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1800년대 구룡채성의 모습입니다.
홍콩에 지어진 이 구룡채성은 현재의 악명과는 달리
본디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면서 영국군을 감시하던 청나라의 건축물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나라 멸망 후 중국은 구룡성채의 관리를 거부했고, 홍콩마저 구룡채성을 방치하게 됩니다.
따라서 당시 '영국령'이었던 '홍콩'에 지어진 '중국' 건축물 구룡채성은 철저히 방치되어
영국, 홍콩, 중국 누구의 주권도 미치지 못하는 유령의 (?) 영역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구룡채성에 누구의 주권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다시 말해
'여기에는 법이 없다'
라는 말이 됩니다.
(구룡채성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그 후 구룡채성은 떠돌이 부랑민들에 의해 점령당하게 됩니다.
당시 홍콩에는 카이탁 항공의 비행기 진로로 인해 14층 이상으로 건축물을 지을 수 없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룡채성은 모다..? ,,,
무법지대다...
부랑민들의 비행기의 진로도 무시한 괴랄하고 계획없는 설계로
구룡채성은 점점 면적을 불려나갔고, 높이를 높여갔습니다.
걍 짓고 싶은 데에 판자 덧붙여서 쌓아 올리는 그런 건축물 말이죠
분명 한 건물인데 높이가 다른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한 건물이 아닌 별개의 건물이 덕지덕지 뭉쳐져 한 건물처럼 보이게 된 거니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구룡채성은 '땅'이나 '국토'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3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에 무려 50만명이나 살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서울로 환산하면 서울시에 무려 11억 5000만명이 살고 있는 인구밀도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이 구룡채성은 거대한 판자촌 혹은 슬럼 시티 그 이상의 요새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주권도 미치지 않고, 법도 뭣도 없는 붕 떠버린 땅이니
당연히 치안은 부재했겠지요.
구룡채성은 소위 '개판'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무면허 돌팔이 의사, 도박, 매춘사업, 불법 거래, 마약...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것들이 일상이 되어 버린
마굴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들을 제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계획없는 설계와 미궁같은 구조,
빈약한 물 공급, 전기는 물론이고
코에 찌르는 악취와 온갖 범죄,
구룡채성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일화로
실제로 1970년대에는 무려 삼합회가 구룡채성을 통치하여
홍콩 경찰이 3000여명의 인력을 투입, 그들을 제압한 사례는 유명합니다.
정도가 어찌나 심했던지
구룡채성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려 자경단까지 만드는 사태까지 이르게 됩니다.
1990년, 구룡채성의 내부 모습 (6:00부터 시작)
어딘가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 괴랄하고 미궁같은 구조와
놀라운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구룡채성에 흥미를 느낀 일본 연구자가
철거 전에 도면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구룡채성이 허물어진 자리에 생긴 공원)
현재까지도 영화,만화,소설의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동양 최악의 마굴, 구룡채성은
홍콩이 반환된 후 홍콩이 구룡채성의 행정권을 갖자
1987년에 철거 판결이 났고, 보상금으로 대치하는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93년에 철거되어 비로소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끝으로 글솜씨가 부족해서 글을 제대로 쓰지는 못했는데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고 구룡채성에 관련되어 잘 정리된 내용,
구룡채성 탐방 수기, 다큐 등등이 있으니까
흥미있는 게녀들은 찾아봐으면 좋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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