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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321
이 글은 8년 전 (2018/6/02) 게시물이에요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의 보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는 전라병사 최원이 이끄는 4,000명의 병력이 전투 한 번 제대로 치루지 못하고 거의 해체되는 과정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1592년 10월 4일, 선조는 비변사 당상들과 대책 회의 도중 최원의 군대가 강화도에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주둔 중인 것을 확인합니다.

당시 조선군은 각 관찰사나 병사, 수령 등이 지휘하며 전투 중이었고, 최원의 군대는 전라도에서 국왕 호위를 위하여 북상하고 있다가 군수물자가 고갈되어 강화도에 고착된 상태였습니다.


당시 각 도의 조선군에 대한 군수물자 지원은 각 도가 스스로 해야 했으나, 유일하게 제대로 군수물자를 보급해줄 수 있는 전라도는 국왕이 있는 행재소와 평양성 인근의 순안 일대에 배치된 이빈과 이일 휘하의 군대를 지원하기에도 바쁜 상태였습니다.


최원의 군대는 겨울이 다가왔음에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고 짚과 풀로 만든 옷을 입은 채로 버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의 부대는 전투 없이 기아와 추위로 인하여 전투력을 거의 상실했고 권율이 최원의 부대를 해산해버립니다.


그리고 더 비참했던 것은 이듬 해 봄에 최원의 병력 4,000명 중 대다수가 기아와 추위로 사망했다는 기사라 올라온 것으로 보아 다른 곳의 상황도 이와 비슷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의주에 버티고 있던 국왕과 그 휘하 근왕병들의 상태도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항상 의주의 방어 병력은 태부족이었으며 이 때문에 국왕 호위가 매우 허술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선조는 감히 병력을 증원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써먹을 병력은 있기는 한데 호조에서 이들을 모두 먹여살릴 만한 재원이 없다고 보고했고, 오히려 있던 근왕병의 수를 절반으로 줄여서 긴축 재정을 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1593년에 들어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1592년에 집결한 대규모 병력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빈의 군대는 2,000명 이하로 가용 병력이 떨어졌고, 서울에도 1만의 병력 중 3,000명 만이 제대로 남은 상태였다고 이항복이 보고할 지경이었습니다.


도원수 김명원은 조선군이 5일이나 굶는 통에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보고했고, 이는 해가 갈 수록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77,000명에 달하던 조선군은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했고 일선에서는 병력이 부족하다며 비명을 지를 지경이었습니다.


병력 보충을 담당하던 병조는 급하게 보충병력을 징집해서 내려보냈으나 군수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라 탈영병이 심각하게 늘어날 뿐이었죠. 그나마 남은 병력은 병들고 10리만 행군해도 픽픽 쓰러지는 이들이 7~8할 가량이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경상도 좌병영 소속 병력 사이에서는 전이 돌면서 비전투 손실이 크게 늘어만 갔고 병조는 다시 백성들을 징집하여 병력을 보강했으나 또다시 이들이 탈영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지속됩니다.


조선군의 문제는 군수물자의 부족에서 기인했고, 이러한 것은 농업생산력이 낮은 것에서 나왔습니다. 농업생산력이 부족한 것은 전쟁 중 인력이 소모되고 농토가 황폐화되면서였으며 이는 모두가 해답을 알았지만 해결을 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였습니다.


정유재란 시의 조선군은 그런대로 상비군을 꾸리고 각 지역의 지방관들도 병력을 징집하여 전투 태세를 갖춥니다. 초기와 다르게 조선군은 만만치 않게 싸울 준비를 했으나 군수물자의 수송과 조덜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명 연합군 13만이 남하하면서 명은 수십 만 석의 군수품을 선박으로 수송해왔으나 조선의 연계 수송 능력이 결여되어 제대로 따라오지를 못하는 상황이었죠. 조선은 여러 곳에 보급창을 지정하고 경기/충청도의 물자를 전라/경상으로 보냈으며 평안/황해의 물자는 명군의 물자를 받아 보충하는 방식을 도입했었습니다.


그러나 명군이 하필이면 겨울에 대거 내려오기 시작했고, 강과 바다가 얼어붙으면서 수운에 큰 차질이 생기면서 제대로 보급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나마 울산까지 어찌어찌 군수품을 수송했으나 울산성 전투에서 조명 연합군이 일본군의 대규모 지원으로 인하여 퇴각하는 과정에서 물자들을 그대로 놓고 와버립니다.


4만에 달하는 병력이 급하게 철수한 데다가 서울에도 수만 명의 명군 후발대가 진출하면서 보급이 완전히 꼬여버렸고, 국왕까지 나서서 내탕고 있는 쌀을 꺼내다가 썼으나 그걸로는 턱도 없었죠. 결국 금군의 수를 원래의 20% 수준으로 줄이면서까지 군수물자 확보에 혈안이 되었고 이러한 문제는 1598년 8월까지 이어집니다.


권형이 명나라에서 지원한 긴급 물자들을 경강으로 가져오면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보급이 들어와도 수가 많은 명군에 우선적으로 지원하면서 조선군의 보급은 거의 박살이 난 상태였고 나중에는 거의 명군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나마 북쪽으로 밀려있던 상황에서는 의주에 지원을 온 명군의 군수물자 덕에 조선군이 그런대로 활력을 찾고 반격을 했었는데, 역으로 병참선이 질질 끌리자 조선군도 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병참선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문제는 비단 조선이나 명, 일본 뿐만 아니라 당대 대부분의 국가들의 문제였다고는 하지만 농업 생산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조선에게는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조선군의 군수체계에 대하여-6) 조선군의 보급 상황과 기아|작성자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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