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바로 와키자카 야스하루.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에게 대패했던 일본장수임.
이 사람.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이 사람의 회고록에 이순신 장군 얘기가 구구절절 나옴.
조선에 처음 왔을 때 모든 전투를 너무 쉽게 이겨서
처음 이순신이라는 장군이 있다고 들었을때는 드디어 자기급에 맞는 무장이 나타났다는 생각에 기뻐했다고 함.
"이순신이라는 전라좌수영 수사(水師)가 남해안 보급로를 교란하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또 그를 제거할 임무가 수군인 내게 지워졌을 때 나 와키자카는 한 치 앞을 모른 채 기뻐 날뛰었다. 제법 오래 버텨줄 적장을 만났으니 그보다 즐거운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날이 바로 한산도 대첩이 있었던 날ㅋㅋㅋㅋㅋㅋ
"어디선가 첫 북소리가 울리고 좌우의 섬 사이로 적선이 출현했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조선군 전함들은 부채꼴로 학익진을 펼친 채 미동 없이 제자리를 지킬 뿐 우리 쪽으로 접근해오지 않았다. 피아의 전함끼리 뒤섞인 접전을 예상했던 나 와키자카는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후미로 따라붙고 있던 구키의 선단에 퇴각 신호를 보냈다. 어리석은 구키는 신호를 나의 장난쯤으로 여겨 무조건 직선으로 밀고 들어왔고 한산도를 마주 본 상태로 급히 정지해 있던 나의 선단과 충돌했다. 아군 선단은 미처 조선군과 붙어보기도 전에 서로 뒤엉켜 전열이 무너졌다."
한마디로 와키자카의 군대는 개박살이 남..
그 뒤로 전투가 있을때마다 이순신부터 찾음ㅋㅋㅋㅋ
"섬에 올라 몸을 누이고서야 멀리 적장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이순신. 그는 아군을 전멸시키고 난 뒤 자신의 선단을 재정렬하는 의식을 치렀다. 삼엄하고도 침착한 검열이 끝나자 그가 만족한 듯 장군기를 흔들었다. 바람소리만 가득하던 바다에 짧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는 주변 섬에 피신해 있던 우리 수군들을 잠시 응시했다. 마음만 먹으면 모조리 주륙할 수 있었지만 이순신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주도면밀한 방어진을 유지하며 당포 방향으로 조용히 물러갔다."
팬레터 쓰는줄ㅋㅋㅋㅋㅋ
"필살의 의지로 이순신을 추적하던 나는 그의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출생과 성장, 혼인과 등과 과정을 모두 세밀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의 식성과 걸음걸이의 특징, 심지어 필적까지 수집하고 있었다"
"정쟁에 휘말려 파직된 이순신이 백의종군하게 됐을 때 비로소 그의 진짜 초상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건 그를 그림자처럼 호위하던 승병 하나가 자기 주군의 운명이 다할 것으로 여겨 비장하게 그린 최후의 초상이었다. 조선 사찰에서 수행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자 아군 첩자로 활동하던 일본 승려를 통해 그 그림을 건네받는 순간, 나는 그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 이순신 초상임을 곧바로 알아챘다. 한참을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진까지 모았다니 이건 뭐 거의 덕질 수준 아닙니까...
이순신 장군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본에서 묵념하며 추모했다고 함.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서재 은밀한 상자 속에서 초상화 한 점을 꺼내놓고 마치 비밀스러운 제사를 지내는 자처럼 예를 갖춘다. 임진년 전쟁 7년 동안 그토록 암살해보려 노력했던 자, 하지만 와키자카라는 졸장부에게 살해당하기엔 너무나 아까웠던 자. 그림 속 이순신은 때론 슬퍼 보이기도, 또 때론 지쳐 보이기도 한다. 전쟁의 신은 본디 외로운 법."
저 와중에 글에 일본 감성이 베어있음...
아무튼
자신에게 처음으로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준 원수이자 동시에 닮고 싶은 사람이라
이순신에 대한 감정이 복잡했던 것 같음.
"나만큼 (이순신을) 미워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나만큼 누군가를 미워하며 동시에 좋아할 수 있을까? 증오로 치를 떨다가도 말할 수 없는 흠모의 기분에 빠져 차 마시는 기쁨조차 잊을 수 있을까? 일흔두 살이 된 나,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덧없는 업보의 바다에서 만난 적장 이순신(李舜臣)을 회고할 때마다 늘 그런 상태가 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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