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omen21.or.kr/policy/3743
30대 이상의 여자는 아마 공감할지도 모를 글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의 이름은 어떠한가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유, 내 이름은 좀 그런데.... 그냥 우리 애들 이름으로 해 줘요.”
이번에 내가 새로 낸 책 <아줌마 밥먹구 가>를 들고 사인을 받으러 온 어떤 아줌마는 끝내 결국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이 아줌마만이 아니다. 다른 아줌마들도 자기 이름을 말하기를 꺼려하거나 무척 쑥스러워하면서 겨우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의 이름에 만족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이름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들이 지어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성장하여 철이 들면서 그 이름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자들의 경우에는 그 불만이 더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이름이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흔한 것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자기 소개를 하게 하면 남학생들의 소개는 장황하고 자랑에 차 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제 이름을 짓기 위해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한참 고심을 하신 끝에......”
“근동의 유명한 작명가들에게 이름을 짓게 하여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아버지께서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들과 모여 항렬에 맞으면서 출세하고 장수하는 이름을 찾고 또 찾아 드디어 오늘날의 제 이름이.........”
여자들의 이름에는 자랑스러운 내력보다 숨기고 싶은 사연이 더 많이 있다.
“끝남이에요. 제 위로 언니가 셋 있거든요. 딸 그만 낳고 아들 낳으라고.....”
말자(끝 말 자 마지막 딸이라는 뜻),
필녀(마칠 필 자를 써서 딸 낳기는 그만 마치라는 뜻),
종숙(끝 종 자로 딸은 끝이라는 뜻),
기남(아들 낳기를 기원한다는 뜻) 등
다 그런 류의 이름이며 주민등록상의 이름은 아니더라도 어려서 집에서는 ‘꼭지’(사내꼭지)라고 불렸던 기억을 가진 아줌마들도 적지 않았다.
딸을 존중하여 이름짓기보다 아들을 낳기 위한 수단으로 이름을 붙인 것은 성장할 수록 여자들에게 상처가 된다.
세대가 바뀌면서 아들낳기용 이름은 많이 줄었으나 그렇다고 여자들의 이름에 개성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40대 초반인 내 또래 친구들의 이름만 보아도 그렇다.
맑을 숙(淑) 자, 꽃 부리 영(英) 자, 아름다울 미(美) 자, 경사 경(慶) 자, 구슬 옥(玉) 자, 계집 희(姬) 자, 곧을 정(貞) 자, 은혜 혜(惠) 자 등을 조합하면 내 이름과 내 친구들 이름을 거의 다 만들어 낼 수 있다.
미희, 경희, 옥희, 숙희, 미숙이, 미옥이, 영미, 미영이, 숙영이, 영숙이, 미경이, 경미, 영옥이, 옥경이, 정숙, 정자, 정미, 미정이, 경숙이, 정옥이, 희옥, 희숙, 희경, 희정, 혜정이, 혜경이, 경혜, 혜옥이... 미경이란 친구는 심지어 일곱 명이다. 영미, 미숙이도 두세 명 식이다.
딸이니까 예쁘고 아름다워야 하며 여자로서의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보는 부모들의 고정관념적인 가치관이 이렇게 비슷비슷한 이름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름에는 그에 대한 어떠한 기대와 희망이 들어있다. 부모가 나에게 어떠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이다.
수많은 보통 여자애들 중의 하나로 평범한 이름을 지었다면 양육과 교육의 방식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이의 개성과 적성을 발견하고 북돋기보다 여자라는 고정관념에 맞춰 길렀을 가능성이 높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학교수라든지, 고위 전문직 종사자들,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여자들 중에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이들이 왕왕 있다. 남자 같은 이름도 있고 남녀 구분이 확실치 않은 이름도 있다. 나는 이런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 부모들이 딸에게 남다른 기대를 가졌거나 나름의 존재 의미를 확실히 하고 계셨을 거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과 그에 따른 양육방식이 딸의 삶을 현재의 방향으로 이끌었을 것이라는 것도 믿게 된다.
언제까지 딸의 이름은 예쁘고 곱기만 해야 할 것인가. 여성다움이라는 것이 깨끗하고 예쁘고 아름답고 정숙한 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N세대라고 하는 요즘의 딸들은 분명히 자신에 대해 독특한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고 고정관념적인 틀에서 벗어나길 희망한다. 그리고 그래야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진보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의 이름을 가진 사오십대 아줌마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학교 다닐 때는 남자이름 같아서 창피하고 부모가 원망스러웠는데 이제는 내 이름이 멋있고 자랑스럽다. 21세기에 맞는 이름이잖아요.”
여성이기 전에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자신은 어떤 이름을 가졌는가 생각해보자. 이것은 곧 자신의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기를 바라는가와 연관된다. 이름은 곧 실존의 문제이며 그건 가능성이며 기도이다.
나도 최근에 내 이름을 새로 하나 지었다. 한 봉지. 별명삼아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러달라고 했다. 어머니의 성을 따서 성은 한(韓)으로 하고 이름은 봉지인데 작지만 요긴한 존재로 살고 싶다, 뭐든지 담아서 전달하고 보관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지었다. 한자어로 표현하자면 봉황새를 뜻하는 봉자에다 지혜로울 지를 쓰면 어떨까 싶다. 내가 정해놓고는 아주 자랑스럽고 멋지다는 느낌을 가져 대단히 흡족했다. 당분간 이 이름으로 불려지고 싶다.
우리 아줌마들이 자신의 이름과 딸의 이름을 음미해보면서 새로운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자신의 존재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딸과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딸과 함께 새 이름 짓기, 아줌마 운동으로 해 볼 만한 일 아닌가.

인스티즈앱
[포토] 에스파 윈터 '열심히 가린 타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