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 5.16 군사쿠데타의 실질적 설계자로 박정희 정권을 탄생시키고, 중앙정보부(KCIA)의 초대 부장이 되다.

62’ / 오히라 일본 외무상과의 메모 협상을 통해 한일 국교정상화를 실질적으로 타결하다.
(하지만 2년 뒤 공개된 메모를 통해 굴욕외교라는 반발이 크게 일어 모든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길에 떠나게 된다)

63’ / 박정희를 비롯 5.16 군사쿠데타 주역들이 대거 참여한 공화당을 창당하다.
(그러나 창당 자금 마련 과정에서 주가조작 의혹에 휩싸이는 등 논란이 일어 당장에 당직을 맡지 못하고, 오히려 모든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길에 떠나게 된다)

71’ / 40대의 나이에 국무총리가 되다.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난색을 표하는 등 공화당 주류와의 갈등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외유길에 떠난지 3년 만에 다시 공직을 맡았다)

80’ /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지목된 뒤 재산이 강제몰수되고 정치활동을 금지당하다.
(10.26 직후 여당인 공화당의 총재가 되지만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으로 결국 집권하지 못하고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출국해 은둔하게 된다)

87’ / 이전의 공화당을 신민주공화당으로 재건하여 13대 대선에 출마하지만 4위로 낙선하다.
(이후 88년 총선에서 신민주공화당은 30여석을 획득하여 원내 4당이 됐다)

90’ / 노태우가 여소야대 정국 타개책으로 추진한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에 참여하다.
(김종필은 이 때 내각제 개헌을 합당 조건으로 하고 ‘합의 각서’를 문서화하는데 성공하지만 이후 당권을 쥐게 된 김영삼이 내각제에 반대하여 탈당을 공언하고 낙향해버리는 등의 파동 끝에 결국 무산된다)

95’ /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인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다.
(당시 총재였던 김영삼 대통령 등 민자당 주류와의 갈등 끝에 김종필이 창당한 자민련은 이듬해 총선에서 50석을 획득하는 돌풍을 일으켜 원내 3당이 된다)

97’ / 15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후보를 김대중으로 단일화하는 속칭 ‘DJP 연합’을 체결하다.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의 연정 조건은 집권 시 국무총리는 김종필이 맡고 내각 일부를 자민련 몫으로 하며 내각제 개헌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각제 개헌은 이뤄지지 않았고, 대북정책에 대한 이견이 커 결국 01년 무렵에 결별한다.)

04’ / 자민련 비례대표 1번으로 10선 국회의원을 노렸으나 실패하고 정계를 은퇴하다.
(자민련은 이미 지난 총선에서 17석으로 줄어 원내교섭단체도 못 꾸리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는 바람에 더 세가 어려워져 결국 정당득표가 3%에 못 미치고 비례대표 의석을 단 1석도 배출하지 못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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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 mt 보고 느낀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