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비행기를 타야 할 분들이나 사고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은 열람 주의 해주시고 특히 밑에 동영상은 시청 안하길 권장합니다.
미국 국립안전위원회에 따르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98분의 1이었고,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7,178분의 1이었습니다.
1985년 8월 12일 18시 57분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오사카로 향하던 JAL소속 보잉 747 여객기가 도쿄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군마 현 부근의 다카마가하라 산 능선에 추락하여 탑승 인원 524명 중 520명이 사망한 참사.
일본 국내선의 막대한 수요를 만족시키고자 일본 항공이 보잉에 발주하여 제작된 사양으로, 3시간 미만의 단거리 비행에 알맞게 연료 탑재량을 줄여서 이륙 최대 중량을 줄이고 수송량을 늘렸다. 잦은 이착륙 환경에 맞게 일부 구조와 랜딩 기어를 보강한 기종이다. 사고기의 경우 정원이 총 528명이었는데, 원판인 보잉 747-100 의 일반적인 3 클래스 좌석 배열 정원이 366명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탑승했는지 알 수 있다.
사고기는 1974년 1월에 생산되었으며, 1978년 일본항공 115편 불시착 사고 때 테일 스트라이크(항공기의 꼬리날개가 활주로에 긁히거나 충돌하는 것) 로 기체 후미가 손상되었다. 그러나 이 사고 후 수리가 부실하게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결국 참사의 원인이 되었다.

사고 당시의 123편 비행기 표, 생존자 카와카미 케이코 의 티켓.
사고 날짜는 일본의 추석에 해당하고 일본 내 2대 명절의 전날.
사고 당일 삿포로 1회 왕복, 후쿠오카 1회 왕복 비행을 한 후 오사카까지 왕복하여 도쿄로 돌아온 다음 비행을 마칠 예정이었다.
이런 까닭에 항공기관사는 오랜 시간 동안 조종실에 탑승하고 있었다. 부기장은 다른 비행기에서 기장 승격 시험을 마친 다음 123편을 타게 됐고, 기장은 그 날 첫 비행이었다.
당일 123편은 하네다 공항을 출발. 예정 대로의 비행을 하고 있었으나 이륙한지 12분이 지난 18시 24분에 고도 24000피트 상공에 도달한 직후 큰 폭발음이 들리고 항공기관사(FE)의 계기판엔 R5(오른쪽 5번째)도어의 경고등이 점등된다.
FE는 이 도어가 떨어져 나갔다고 판단하고 조종사에게 알린 것이며 경고 50초 후에 조종사는 긴급 사태(EMERGENCY)인 '스쿼크 77'을 발신.
사고 직후 비행기가 상하로 요동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기장은 긴급 강하를 시도하면서 하네다 공항으로 회항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때 벌크헤드(항공기 뒤에서 감압을 버텨내는 역할)가 날아가고 수직 꼬리날개(비행기에 안정성을 주기 위해 붙음)가 찢겨 날아가면서, 조종타면을 움직이는 유압액이 새어나가(엘리베이터에 줄이 없어진 상태와 비슷) 조종 불능에 빠진다.
물론 항공기의 유압계통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보통 다중 계통으로 구성하며 747의 유압계통 역시 4개의 채널로 구성하지만 123편은 불행하게도 4 계통 모두가 찢겨나가고 말았다.
조종 불능에 빠진 직후 위와 같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은 플랩과 4개의 엔진의 출력을 조정하여 어떻게든 기체를 제어하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그러나 한 번 선회를 시도하여 9000피트를 내려와 13500피트(약 4km)로 강하한 직후 기체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며 조종사는 결국 관제소에 조종 불능을 보고한다.
이후 기체는 약 30분 동안 불안정한 상태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데 이는 조종이 불가능한 기체의 기수가 위로 들리게 되면 고도는 상승하고 속력은 감소 / 어느 정도 속력이 감소하면 기수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고도는 다시 하강, 속력은 상승, 속력이 붙은 기체의 기수는 다시 위로 향하는 현상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몇몇 승객들이 남긴 유서의 필체가 상당히 휘갈겨진 상태로 적혀있다.
더불어 엔진 출력차와 플랩을 이용한 조향마저 말을 듣지 않으면서 기체는 항로를 완전히 이탈하고 만다.
실속만 간신히 막으며 계속해서 기수가 오르내리는 가운데 방향 조절은 완전히 불가능해지고, 비행기는 항로를 이탈해 하네다와 요코타의 정반대인 후지산으로 날아간다.
최초 이상 발생 약 30분 뒤 가능한 한 최대의 수단들을 이용한 승무원들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체는 양력을 완전히 잃고 급강하하며 18시 56분경, 오른쪽 주 날개가 지면과 충돌하고 동시에 기체의 공중 분해가 시작되었다. 그 다음 기체 후부가 분리. 기체는 기수를 내리면서 우측으로 회전했다. 마지막으로 123편은 타카마가하라산의 경사면에 반전하는 형태로 최종 추락, 충돌했다.
추락 직전 상승하기 위해 엔진 출력을 엄청나게 올린 상태로 지면에 곤두박질쳤기 때문에 추락시 속도는 약 350kt (시속 650 ~ 700km/h)였으며 그 충격은 수백 G(중력 가속도)에 이를 정도였다. 여기서 떨어져나간 후부는 꼬리를 따라 떨어져 충격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기적적으로 생존자를 만들 수 있었다. 본체에서는 생존자가 없었다.
사고가 난 후 충돌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으며, 일례로 기장의 시신은 거의 완전히 불타버려 확인가능한 치열 5개만 남은 아래 턱뼈로 신원을 겨우 확인했다.
타카하마 마사미 기장의 장녀 요코는 보이스 레코더가 공개되기 전까지의 15년간을 '519명을 죽여놓고는 뻔뻔히도 잘도 살아있구나'라는 전화를 정말 수없이 받았다고 한다. 2000년에 보이스 레코더가 공개되고 나서야 마지막까지 기장이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 인정받았다..
참고로 요코는 아버지가 못 지킨 항공 안전에 헌신하겠다는 목표로 아버지가 근무하던 일본항공에 현재도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이번 사고에 큰 문제점 2개가 테일 스트라이크 이후 정비를 제대로 안했다는 점, 그리고 구조 작업을 늦게 실시한 것.
추락 당시 비가 내리고 있어 추락한 기체가 폭발을 일으키지 않았고,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이 추락 현장에 생존해 있었다. 당시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잔해 속에서 죽어가던 희생자들의 비명 소리가 밤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퍼붓는 비, 산에 추락하여 구조하기 불리한 지형, 저녁무렵에 추락하여 시계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추락 후 곧장 구조 활동을 전개하지 않았고, 14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전 9시에야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때문에 생존자 상당수가 비가 내리는 추운 밤을 견디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참고로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자위대 헬기 조종사가 생존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보고한 것이 일본 정부가 늑장 구조 작업을 결정한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추락 직후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많았고 헬기 소리가 들렸을 때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헬기는 생존자가 없다고 판단, 돌아가 버렸다.
아래 영상이 그날 블랙박스에 녹음된 조종실 음성 녹음입니다. 10분부터 충격적이니 재난 관련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은 자제 해주세요.
음성기록에 경고음과 충돌음이 그대로 녹음 되어 있고 조종사님들 소리치는 거랑 처절한 상황이 그대로 녹아들어있어서 좀 섬뜩합니다.
CAP : 기장
COP : 부기장
F/E : 항공기관사
ACC : 항공 관제 센터
YOK : 요코다 진입관제소
APC : 도쿄 진입 관제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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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영양사들이 없애려해도 못없애는 반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