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시초에 대해 알아보자
당시 놀런 부슈널은 아타리 2600 개발을 명령하였고(당시 프로토 타입의 이름은 스텔라였다)
개발팀은 아티리 2600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이크로프로페서가 필요하다는걸 깨달았어
하지만 당시 마이크로프로페서의 가격은 엄청 비쌌고 어찌저찌 찾아낸끝에 MOS 테크놀로지의 6507 프로페서 개당 8달러 가격에 구매하고 계약을 맺음
그후 어찌저찌 아티리 2600은 제대로 만들어져 가고 있어서 하지만 여기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말아
바로 여태까지 모아둔 자금이 다 떨어졌어
결국 돈이 떨어지자 놀런 부슈널은 아타리를 매각하기로 결심하고 1976년 2800만 달러에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하기로 결정함(워너 커뮤니케이션즈의 현재 이름은 워너 미디어 워너브라더스의 모회사임)
그후 워너는 아타리에 1억 달러를 투자했고 덕분에 아타리 2600 개발에 속도가 붙을 수 있게 되었어
1977년 아타리 2600을 발매하는데 성공함
하지만 당장 나온 아타리 2600의 판매량은 부진했고 놀런 부슈널은 아타리 2600의 판매량이 부진한건 아타리 2600의 기술이 뒤쳐졌다고 판단하고 빨리 후속게임기를 만들것을 워너한테 주장함
하지만 워너는 아타리 2600 흥행부진의 원인을 마케팅에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워너는 마케팅 부문 부사장으로
당시 양말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레이 카사르를 고용할것을 추천하였고 놀런 부슈널은 카사르를 그대로 고용했어
카사르는 500만 달러를 투자해 1978년 연말 시즌을 노려 그 해 4분기 내내 "Don't Watch It, Play It"이라는 구호로 전례없는 TV 광고 공세를 한 결과, 아타리의 부진을 만회할수 있었어
부슈널은 결국 자신이 틀렸다는걸 인정하고 아타리를 떠났어
레이 카사르가 후임으로 아타리의 사장이 되었지
카사르는 사장이 되자마자 바로 회사의 회사의 체계를 잡아나갔고 당시 돈이 많이 나가는 개발 프로젝트도 취소했어
그리고 이렇게 회사를 어느정도 재정비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 결과 1979년 크리스마스에 100만대를 팔아치우고
1980년 전세계적으로 상당히 대히트작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아타리 2600에 이식시키고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대 흥행으로 아타리는 재고까지 전부 팔아치우고 2억달러의 흥행을 맞이해.
당시 이렇다할 히트작이 없었던 아타리에게 첫 히트작이 나오고 아타리 신화가 탄생하게 되었던거지
하지만 이런 성공과는 별개로 아타리 아니 북미 게임시장은 붕괴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어.
액티비전의 초기명작 피트폴
이런 아타리가 성공하니 너도나도 할거 없이 많은 회사가 게임계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회사들이 아타리와 비슷한 게임기를 출시하였지만 아타리 한테는 별 타격은 없었다고 함
단 게이머들에게 무슨 게임기를 골라야할지 큰 영향을 주었다고해
그리고 아타리는 성공과 돈에 눈이 멀어 개발자들을 천시하고 마구 굴리는등 막나갔어.
당시 사장이었던 레이 카사르는 개발자들을 수건 디자이너나 다를바 없다고 모욕했고
개발자 같은건 개나소나 할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개발자들을 천시함
얼마나 개발자들을 심각하게 대우해주었냐면 당시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것 조차 금지했어
이런 개발자들은 이런 처우에 분노하여 아타리를 나가서 만든게
콜 오브 듀티로 유명한 액티비전이었어(지금은 액티비전도 아타리 따라하고 있다는게 문제지만)
어찌 되었건 수많은 회사들이 게임에 진출하였고 개밥 만드는 회사,포르노 회사등 별에 별 회사들이 게임계에 진출했어(위의 커스터 장군의 복수도 그런 예 이다)
게다가 이런 회사들의 마인드는 한탕 벌어보자는 마인드였기에 그냥 게임성보다는 양산형 게임들을 마구 뽑아내는데 혈안이 되었어
당연히 게임시장에는 저질 게임들만 난무하였고 아타리도 개발자들을 마구 갈아넣고 저질 게임들을 뽑아냈어
하지만 이런 저질 게임들이 난무해도 게임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당시 아타리 경영진들중에는 쓰레기를 집어넣은 카트리지도 백만장은 팔릴거라며 말했어
점차 게임시장에 안좋은 조짐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1차적으로 정점을 찍은 사건이 있는데
바로 가정용 팩맨 사건이었지
당시 큰 인기를 일으킨 이 팩맨을 본 아타리는 곧바로 남코와 계약을 맺고 가정용 팩맨을 만들기로 결심함
그리고 아타리는 이 팩맨이 제대로 흥행할거라 예상하고 무려 1200만장을 생산함(요새 1000만장 넘는 게임이 대박인걸 생각하면 엄청 많이 생산하거다)
1982년 3월 아타리는 이 팩맨을 출시하였고 무려 700만장이나 판매되었어
하지만 500만장의 재고품이 쌓였고 게다가 반품러시 까지 받으며 상황을 악화시켰지만
그 누구도 아타리의 성장을 의심하지 않았어
그리고 아타리를 종말시킬 결정타가 등장하는데
게임역사상 전무후무한 쓰레기 게임이라 불리는 ET의 등장이었지
당시 아타리는 ET 라이센스를 계약하고자 노력하였고 7월경에 계약을 맺는데 성공함
여기까지는 뭐 그럭저럭 잘 진행되었지 하지만 여기서 워너의 회장 스티븐 로스는 무리한 명령을 내림
ET를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내놓으라고 명령을 내린것
당시 사장이었던 레이 카사르 또한 미친짓이라며 반대했었지만 스티븐 로스의 고집은 어마어마해서 결국 진행했고
여기에 아타리 최고 개발자인 하워드 '스캇' 워셔가 자기가 할수 있다며 나서면서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갔어
그 후 5주간 24시간 풀로 개발자들을 갈아 넣은끝에 게임을 만들었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보면서 만족한다고 말하고 바로 베타테스터를 생략하고 크리스마스 당일날 게임을 출시했어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게임은 쓰레기 였고 게이머들에게 온갖 욕을 처먹으며 환불러시를 받고 50만장밖에 팔지 못했어
재고는 무려 350만장이나 쌓이면서 이 재고 게임들을 뉴멕시코 사막에 전부 묻어버렸어
그 결과 레이 카사르를 비롯한 경영진들은 물갈이 되었고
ET의 개발자 워셔는 게임 역사상 최악의 개발자라는 오명을 쓰며 부동산업자등 다른 일을 하다가 현재는 실리콘 밸리에서 심리 치료사로 일하고 있어
그 후 워너의 주가도 이 아타리 쇼크로 폭락 했고 워너는 아타리를 곧바로 매각했어
아타리는 이런 손해를 메꾸고자 계속 저질 게임들을 양산하는 미친짓을 반복하고
속을대로 속은 소비자들은 아타리의 게임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불매운동을 했어
당시 게임시장의 경제 규모는 30억 달러였는데 아타리 쇼크로 1억 달러 수준으로 팍 줄었다고함
한 마디로 당시 북미 게임시장은 쫄딱 망해버린거라 볼수 있지
한동안 북미는 게임시장 주도권을 20년간 일본한테 내주어야 했어
그리고 이 아타리의 폭망을 지켜본 한 일본의 회사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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