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1번_제보
언제 한 번 아버지와 단 둘이 술을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생활은 잘 하고 있느냐, 연애는 언제 하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 병을 거의 다 비울 때쯤 대뜸 저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셨습니다.
“상상해 봐. 너가 정말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개인 사무실이 최근에 생겼다고. 어느 날 사무실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사무실 전화로 클라이언트에게 연락이 온거야. 그와 동시에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가 잠깐 쉬러 왔는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고, 핸드폰으로는 아내에게 전화가 온거지. 참 골치 아프지? 너 같으면 어떤 순서로 일을 해결할 것 같니?
잠깐 생각하다가, 생각해보니 당연한 답이라는 듯이 저는 클라이언트의 전화를 받고, 동료와 담소를 나눈 후 아내에게 전화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아버지께서 물으시자,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저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면 조금 연락이 늦어도 이해해 줄 거라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아니랍니다. 자기도 그렇게 알고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직장동료와 이야기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알고 보니 정답이었다는 겁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그 누구보다 최우선으로 두어야 하는 것, 그래야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길고 긴 인생에서 얻은, 당연하지만 또 그렇게 당연하지만은 않았던 깨달음이었던 겁니다.
머리가 꽤나 띵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인생은 아버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았지만 제 인간관계에서 남은 사람이 몇 되지 않더군요. 고등학교 때부터 3년 가량을 함께했던, 어쩌면 제 학창시절의 전부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던 것도 이 때문이었고 제가 정말 아꼈던 대학교 동기들도 하나 둘씩 제 곁을 떠난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제가 사람들을 대했던 가치관에 대해 돌아볼 수 있어 정말 고마운 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야 답을 알게 된 것 같아 씁쓸하고도 자책감이 드는 밤입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