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NO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친구라는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여사친에게 고백을 하기 직전까지는.
나와 여사친은 집이 가깝다는 명분으로 매일 등, 하교를 같이했고,
공통된 취미가 있다는 구실로 동네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녔다.
열여덟의 나는 착각했다. 어쩌면 여사친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서 고백했다. 좋아한다고. 결과는 우습게도 차였다.
“미안해. 나는 너랑 친구로 지내고 싶어.”
친구. 기대가 컸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쉽게 말해서 뇌정지가 온 것이다. 거절당하는 시나리오는 염두에 없었으니까.
아마 그때 나는 확인으로 고백한 것이 아니라 복권을 긁으려고 했던 것 같다. 바보.
“어, 어. 그래. 알았어.”
어색한 웃음을 토해내며 감정의 싹을 잘라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여사친을 왜 좋아했는지 알 수가 없다.
허여멀건 피부와 단정한 단발머리. 작은 키와 삐쩍 마른 몸은 결단코 내 이상형이 아니었다.
10년. 서로 20대의 중반에 도달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친구다.
미숙했던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사친과 나의 거리다.
더 멀어진 거 아니냐고? 아니.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교복 입을 당시에는 낯가림 심하고 말주변도 없던 여사친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차마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수위 높은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간간이 장난삼아 내뱉는 정도라면 나도 받아치겠지만, 틱장애처럼 수시로 섹드립을 토해낸다.
한 번은 밥 먹고 공원 벤치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여사친이 입에 물고 있던 비비빅을 애처럼 손으로 돌려서 먹길래 장난삼아 말했다.
“무슨 애도 아니고, 아직도 그렇게 먹냐? ㅋㅋ”
여사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홍련 빛깔 혓바닥으로 비비빅을 천천히 위아래로 쓸어 핥으면서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이렇게 먹으면 어른이야?”
진짜 미친년인가 싶었지만, 애써 침착하게 타일렀다.
“그냥 빨아 먹으면 되지. 뭘 그리 요란스럽게 먹냐. 어휴.”
여사친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더니 무언가 확신한 듯 코웃음 쳤다.
촤압. 촤아아압. 촤아압. 원인불명의 소음에 서둘러 옆을 돌아봤다.
“그럼 이렇게 먹으면 어른이야?”
여사친의 혀가 아슬하게 아랫입술을 지나쳐 나와서는
반쯤 녹은 비비빅을 목구멍 깊숙이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새삼 보통 미친년이 아니라는 확신을 또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됐다. 너하고 무슨 말을 더 하냐. 쯧.”
습관적으로 혀를 찼다. 그 와중에 여사친은 내가 먹던 캔디바에 눈독을 들였다.
“한 입만.”
“꺼져라. 진짜.”
나는 본능적으로 등을 돌리고 남은 캔디바를 입에 넣고 빨았다. 아주 열심히.
“ㅋㅋ 침 발라 놨으니까 꺼져라.”
바람대로 캔디바를 사수하지 못한 여사친이 분통을 터트리면서 발로 내 다리를 툭툭 쳤다.
“내가 빨아 줄까?”
식도로 넘어가야 할 음식물이 곧장 기도를 타고 내려갔다.
“뭐, 뭐? 뭐라고?”
산 중턱 언저리에 숨어서 나무꾼을 유혹하는 구미호처럼 여사친이 옆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뜨거운 숨소리. 내 뺨 바로 옆에 코를 주차한 여사친이 헤벌쭉 웃더니,
내 손에 들려있던 캔디바를 강태공처럼 낚아챘다. 눈뜨고 코 베였다는 말이 이런 것 아닐까.
“ㅋㅋ 뭘 기대한 거야~ 나는 아이스크림 말한 건데~ 쌉변태~”
“아, 아이스크림 내놔라. 내가 침 묻혀 놨으니까.”
지그시 눈웃음 짓던 여사친이 곧잘 캔디바를 입속에 집어넣었다.
“자, 다시 가져가.”
“돌았냐?”
“싫으면 말고.”
어떻게 하면 저년 주둥아리에 국보급 자물쇠를 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