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다가
일본의 무차별적인 한국어선 나포...
결국 두손들고 항복한건 일본이 아니라 한국.
김영삼의 버르장머리 발언으로 우리가 개피본건 저거 말고 또 있죠.
아래 퍼온 글 한번 읽어보시죠,
며칠 전 金泳三 전 대통령은 자신을 찾아온 문희상 열린당 대표에게 자신이 재임시절 했던 발언 -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를 자랑했다. 그가 정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쳤던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중앙청을 부순 것을 가지고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쳤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金泳三 전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친 부분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일본이 金泳三 전 대통령의 그 발언을 가슴에 조용히 묻어두고 있다가 1997년 외환위기 때 복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일본은행은 한국외채를 회수하기 시작하여 외화가 바닥나고 있었다. 金泳三정부가 일본에 다급히 도움을 요청하자 일본 정부는 매정하게 이를 거절하여 한국이 IMF 관리로 넘어가게 만든 것이다. 1998년 4월호에 필자가 쓴 'IMF 내막' 실록의 일부를 소개한다.
--------------------------
우리나라 역사는 위선적인 명분론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대외(對外)굴종을 결과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친명(親明)사대의 명분론으로써 광해군의 자주외교 노선을 무너뜨렸던 인조 반정파는 대책 없는 대청(對淸) 강경론으로 두 번의 전란을 불러 결국 청에 굴복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위선적 명분론도 같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IMF 사태를 당하고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일본은행들의 결정적 역할이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9월 현재 우리나라의 공식 외채 약 1천2백억 달러 중 약 23%는 일본은행들로부터 빌린 돈이었다. 이 일본 비중은 미국(9.63%), 프랑스(9.74%), 독일(10.44%)보다도 엄청 높다. 일본은행들이 한국금융기관에 빌려준 외채에 대하여 상환기한을 연장해주지 않고 회수해간 것이 외환위기의 시작이었다.
재경원은 차관보를 일본에 보내 협조를 요청했으나 일본측은 "우리는 IMF를 통해서만 지원하겠다"고 잘랐고 이것이 우리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한국은행은 일본은행들을 비롯한 외국은행들이 회수해 가는 달러를 메우기 위하여, 또 올라가는 환율을 낮추기 위하여 11월1일부터 34일간 1백65억 달러를 쓰다가 손을 들어버렸던 것이다. 일본은행이 외채 회수에 들어간 것은 인도네시아와 타일랜드에 빌어준 돈을 많이 물려버린 데다가 일본 안에서도 금융기관이 잇따라 도산하여 일단 유동성을 확보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환위기, 예측 가능했는가」란 논문을 쓴 이영섭(숙명여대 경제학과) 이종욱(서울여자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경제여건이 아무리 좋더라도 일본의 내부적 문제 때문에 외채상환 연장 거부라는 사건이 발생하면 한국에 외환위기가 초래될 수 있고 이럴 경우에는 기업의 흑자 도산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두 교수는 1997년 11월의 외환위기는 예측이 불가능한 날벼락과 같은 천재(天災)였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두 교수가 지적한 것은 한국에 대한 최대 채권자인 일본은행들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나라를 부도위기로 몰고 갈 수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일본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말만 앞서는 강경론과 명분론으로 상대하였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그의 발언으로 하여 「버르장머리」라는 순 한글 단어는 많은 일본 지도층 인사들이 기억하는 말이 되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문화재인 중앙청을 일제가 만들었다고 하여 철거하고 일제가 박았다고 전해오지만 확증은 없는 쇠말뚝을 뽑고 산신제 지내는 데 국가기관을 동원한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박정희(朴正熙),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시절에 이런 위기가 발생하였더라면 긴밀한 한일 친선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일본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이 일본의 안보까지 담당해주고 있다」는 논리를 개발하여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지원을 받아 일본으로부터 약 40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고자세로 뽑아낸 적이 있었다. 전두환식의 실리외교에 비교해서 김영삼의 대일(對日)외교는 감정의 낭비가 초래한 굴욕적인 것이었다.
일본은행이 우리를 부도 직전으로 밀어붙여 놓으니 김영삼 정부가 드디어 일본에 도움을 요청했고 일본정부는 이를 냉정하게 거절해 버렸다. 「김영삼의 버르장머리를 고친 것은 우리다」고 그들은 기본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허세는 국력의 뒷받침이 없는 것이었다. 외교는 군사력과 경제력만큼만 나갈 수 있는 것임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일본의 한국어선 나포에 항의해도 결국은 우리 해공군이 자위대에 눌리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 어선단을 보호할 힘이 부치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원한과 오기, 그 감정은 일본을 따라잡는 데 소중히 써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가슴 깊이 묻어두었을 때 거대한 민족적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는 그 감정을 실익이 없는 구호나 저주로 낭비해 버리도록 부추긴 것이 김영삼 정부였다.

인스티즈앱
취향 탄다는 원룸 통창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