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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262 출처
이 글은 6년 전 (2019/11/02) 게시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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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으로 간다 | 인스티즈


백무산, 숲으로 간다

 

 

 

높은 산에 올라 구름 아래 마을을 보면

사람과 마을들이 저리 하찮다

그러나 산을 처음 올라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결론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저것이 저리 하찮은 게 아니라

천지가 저리도 크다

우리가 살다 가는 곳이 티끌보다 작고 짧으나

그것도 한 세상 천지의 조각도 천지

 

마음의 넓은 자리에 올라서 보면

삶이나 역사나 인간의 능력이 저리 하찮다

그러나 처음 내려다본 사람이 아니라면

영원 조각도 영원이라는 것을 알리라

 

다만 티끌만큼 작은 세상에 사는 내가

산 위에 사는 나에게 나날이 들키며 산다

그 일도 지겨워

숲으로 나는 간다







 숲으로 간다 | 인스티즈


정호승, 물의 꽃

 

 

 

강물 위에 퍼붓는 소나기가

물의 꽃이라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물의 꽃잎이라면

엄마처럼 섬기슭을 쓰다듬는

하얀 파도의 물줄기가

물의 백합이라면

저 잔잔한 호수의 물결이

물의 장미라면

저 거리의 분수가 물의 벚꽃이라면

그래도 낙화할 때를 아는

모든 인간의 눈물이

물의 꽃이라면







 숲으로 간다 | 인스티즈


김명인, 황금 수레

 

 

 

세상 끝까지 떠돌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다

마침내 침상조차 등에 겨워졌을 때

못 가본 길들이 남은 한이 되었다

넘고 넘겨온 고비들이 열사(熱沙)였으므로

젊은 날의 소망이란 끝끝내 무거운

모래주머닐 매단 풍선이었을까

오랫동안 부풀려온 바람이라면

허공에도 질긴 뿌리가 벋는다는 것

가본 세상이거나 못 가본 어느 입구에서

머뭇거리다 내다 버린 그리움들 쌓여갔지만

가지를 벗어난 적이 없는 저 나뭇잎들

세계의 저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손짓한다는 것을

그는, 수척한 침상 너머로 비로소 바라본다

창밖에는 다음 세상으로 굴러가려고

황금수레들이 오래오래 환한 여장을 꾸리고 있었다







 숲으로 간다 | 인스티즈


최동호, 얼음 얼굴

 

 

 

거품 향기, 찬 면도날

출근길 얼굴

저미고 가는 바람

 

실핏줄 얼어, 푸른 턱

이파리 다 떨군

나뭇가지

 

낙하지점, 찾지 못해

투명한

허공 깊이 박혀

 

눈 거품 얇게

홍시 얼굴 하나







 숲으로 간다 | 인스티즈


김제현, 몸에게

 

 

 

안다

안다

다리가 저리도록 기다리게 한 일

지쳐 쓰러진 네게 쓴 알약만 먹인 일 다 안다

오로지 곧은 뼈 하나로

견디어 왔음을

 

미안하다, 어두운 빗길에 한 짐 산을 지우고

쑥국새 울음까지 지운 일 미안하다

사랑에 빠져 사상에 빠져

무릎을 꿇게 한 일 미안하다

 

힘들어하는 네 모습 더는 볼 수가 없구나

너는 본시 자유의 몸이었나니 어디로든 가거라

가다가 더 갈 데가 없거든 하늘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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