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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1476 출처
이 글은 6년 전 (2019/12/17) 게시물이에요

한국 전쟁 당시에

국군 출신 인민군 포로가 무려 13200명이나 되었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당시 12만명의 북한측 공산주의자들과 4만명의 중공군 포로가

있었다.

그 중  12만명 북한측 공산군 포로중에 11% 가량이 국군 출신

인민군 포로들이다.

국군 출신 인민군 포로라는 말이 상당히 낯설것이다.


국군이  인민군 포로가 되었을때에   북한측은

상당수의 사람들을  인민군에  반강제로 입대시켰다.


북한에서는 이들을 해방전사로 부르는데,

일부는  후방에 보냈지만 상당수는

최전방으로 보냈다.


국군 출신 인민군들이 전선에 나가서

자기들의 옛 동료인 국군과 전투를 벌이게 된 것이다.


최전방에서 국군과 전투를 벌였으니 필연적으로 

이 과정에서 이들중 상당수는  다시 국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래서 국군출신의 인민군 포로가 발생한 것이다.


이때, 자발적으로 탈영하여

국군에 투항하는 사례가  소수였고 대부분은

전투 중에 붙잡힌 경우가 대다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측에서는

포로중에 국군 출신이 엄청 많아서

상당히 놀랬다는 후문이 있다.


국군 출신 인민군 포로들은  대부분이 반공포로가 되어

용공포로들과 수용소 안에서 싸웠으면

전쟁이 끝날 무렵엔  남한을 선택하여 결국

이 땅에 남았다.

소수만 북한행을 결정했고 대부분은 남한에 남았다고 한다.


그럼 왜  인민군들은 국군 포로들을 자신의 병력으로  입대시켜서

써먹을까?


인민군들은   전쟁이 장기화에 따라서  전쟁 내내 

심각한 병력 난에 시달렸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했던 불가피한 일이라고 본다.. 



이미  한국 전쟁 초기때인

1950년 7월 말부터 인민군들은 병력 소모가 심해서  병력을 보충하고자,    국군포로들중 일부를

강제로 인민군에 입대시켰다고 한다. 

그외에도 인민군들은 남한의  민간인들도 의용군 이라는 이름으로  10만명씩이나 징발했다고 한다.


남한인구가 북한 인구의 2배라서 북한군은 전쟁초기 남한 점령했을때에는

어떻게든 사람들을 징발하여 병력 소모를 최소화 했지만, 인천 상륙작전 이후부터  남한쪽으로

병력을 징발할 수 없어서 전쟁 내내 병력 부족에 시달렸다. 


특히 인천상륙작전때문에  남한에 들어왔던  인민군들중

상당수는 남한에 버려졌다고 한다.

일부는  깊은 산속에 들어간 빨치산되었지만, 상당수는  죽거나

국군의 포로가 되었다.

인천 상륙작전 이후에 , 남한을 빠져나간 북한군은  10에 3,4명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북한군은  인천 상륙작전으로 단기간에  병력 소모가 심해졌다.


그후,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으로 북한땅 상당수가 점령당했고,  중공군이 개입한  후엔

점령한 북한 땅을 토해 내면서 국군과 유엔군이 철수했을때 , 그 과정에서  100~150만명의 북한인들이  남쪽으로 대거 

내려왔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인천상륙작전1950.9.15~1951.1.4 후퇴까지)에서 기존의 인민군 병력 소모도 더 심해졌고,

인민군의 인적 자원이 될 상당수의 사람들이 남한으로 내려가서  병력 보충하는 것도 더 힘들어졌다.


1.4후퇴 이후에 중공군  도움으로 북한은  영토를  간신히 회복했지만, 국군과 유엔군에 맞서 싸울 인민군들은

전쟁 이전의 20만명 수준으로  전쟁 내내 회복하지 못했다.


실제로  북한측은 전쟁 내내   북한본토로 부터의 병력 징발이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서

 하는 수없이 중국 연변의 조선족들로부터 모병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이미 5~6만명의 팔로군 출신 조선족들이  전쟁 이전에 북한군에 흡수된 상태였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공군에 들어간 조선족들도 많아서

생각처럼 쉽게 모병이 안되었다.


본토와 연변에서 병력모집이 쉽지 않았던 인민군으로써,  결국 국군포로까지 손을 뻗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잡은 국군포로에서 병력을 보충해서라도 어려움을 해결해야 했다.

그 결과,  최소 2만~최대 4~5만명의 국군 포로들이

인민군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13200명이라는 국군 출신 인민군포로가 발생한 것이다.


중공군의 개입 이후엔  

 보통, 전체   북한 주둔 중공군과 인민군의 병력 비율을 보면  7:1 이었지만,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력 비율로 보면 무려 10:1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즉 북한군 병력은  1951년 여름부터 병력10만 정도로 쯤 되었는데, 

1953년 7월 27일 휴전날 까지  그 병력 숫자를  유지했다고 한다.

전쟁 내내  편제상 20만명이지만,  실 제 병력은 10만이 조금 안되었다고 한다.

휴전 직전에 북한군 각 부대들은 최소   30%가 남한 출신이었고,

최대 절반이 남한 출신으로 이루어진 부대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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