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생각이 달라졌다 웃음과 울음이 같은 음이란 걸 어둠과 빛이다른 색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내 음색이 달라졌다 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 웃음의 절정이 울음이란 걸 어둠의 맨 끝이빛이란 걸 알고 난 뒤내 독창이 달라졌다 웃음이란 이따금 울음을 지불해야 터질 수 있다는 생각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나는 골똘해졌네 어둠이 얼마나 첩첩인지 빛이 얼마나겹겹인지 웃음이 얼마나 겹겹인지 울음이얼마나 첩첩인지 모든 그림자인지 나는 그림자를 좋아한 탓에이 세상도 덩달아 좋아졌다하종오, 악수의 이면사 두 사람의 오른손이 맞잡고팔 흔들며 웃으며 말할 때두 사람의 왼손은 주먹 쥐거나손가락 꼼지락거리거나 손바닥 편다 오랜만에 만났거나볼일로 만났거나처음 만났거나 간에두 사람이 뜻하지 않아도오른손들이 저절로 앞으로 나오는 건그간 쪼였던 햇볕의 양을 보여주려 하든가그간 움켜쥐었던 돌멩이의 수를 보여주려 하든가그간 박수쳤던 힘의 크기를 보여주려 하든가그런 속내가 숨어 있다가불쑥, 모습을 드러내서다 오른손이 전면에 나서는 동안화 돋우면 주먹질할 수 있도록욕해야 한다면 손가락질할 수 있도록부끄러워지면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도록왼손은 측면이나 후면에서 기다린다나희덕, 기러기떼 양(羊)이 큰 것을 미(美)라 하지만저는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겠습니다 철원 들판을 건너는 기러기떼는끝도 없이 밀려오는 잔물결 같고그 물결 거슬러 떠가는 나룻배들 같습니다바위 끝에 하염없이 앉아 있으면삐걱삐걱, 낡은 노를 젓는 날갯소리 들립니다어찌 들어보면 퍼걱퍼걱, 무언가헛것을 퍼내는 삽질 소리 같기도 합니다그러나 아무리 퍼내도내 몸속의 찬 강물 줄어들지 않습니다흘려보내도 흘려 보내도 다시 밀려오는저 아스라한 새들은작은 밥상에 놓인 너무 많은 젓가락들 같고삐걱삐걱 노 젓는 날갯소리는한 접시 위에서 젓가락들이 맞부비는 소리 같습니다그 서러운 젓가락들이한쪽 모서리가 부서진 밥상을 끌고오늘 저녁 어느 하늘을 지나고 있는지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고 나니새들은 자꾸 날아와 저문 하늘을 가득 채워버렸습니다이제 노 젓는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박문식, 아버지의 논 얘야 여시골 논다랑이 묵히지 마라니 어미하고 긴긴 해 허기를 참아가며손바닥에 피가 나도록괭이질해서 만든 논이다 바람 불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꽃이 피고 새가 울고아픈 세월 논다랑이 집 삼아 살아왔다서로 붙들고 울기도 많이 했었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묵히지 마라둘째 다랑이 찬물받이 벼는 어떠냐다섯째 다랑이 중간쯤 큰 돌 박혔다부디 보습날 조심하거라 자주자주 논밭에 가보아라주인의 발소리 듣고 곡식들이 자라느니라거동조차 못하시어 누워 계셔도눈 감으면 환하게 떠오르는 아버지의 논김창제, 배롱나무 꽃 붉게 지더라 지는 꽃에게는 말 걸지 마라꽃슬에 부는 바람도 아프다 사랑은 봄처럼 설레게 붉다가꽃으로 배롱 배롱 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