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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_린데만ll조회 3384l 1
이 글은 3년 전 (2020/6/01) 게시물이에요

게이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

퇴근길 늘상 습관처럼 차 안에서 틀어놓은 라디오

오늘은 또 어떤 소소한 일상들의 이야기가 오갈까

DJ들의 입담에 여러 번 웃다가 신청곡으로 흘러나오는 노래

흥얼흥얼 따라 부르다가 문득 형이 생각났습니다


벌써 10년하고도 9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정도라면 시간이라기보다 세월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겠네요


19년전 그렇게 그때 형과 나는 만났습니다

지금 형이 정확히 저보다 몇살위였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때 제가 스무 살 그리고 형은 20대후반으로 기억이 됩니다


지금이야 온라인으로 인하여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여러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쉽게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온라인은 커녕 외곽진 화장실의 수많은 낙서 속에서

간간히 이런저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알아낸 곳이 수유리에 있는 극장이었습니다

얼마전 그 곳을 지나다 보니 그 곳은 이미 없어졌더군요

당시 3류극장임에도 3층까지 있는 대형극장이었지요


대학에 입학하고 호기심에 찾아 본 그곳에서 형을 만났습니다

첫 만남 이후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형과의 첫만남을 잊고

학교생활에 충실했고 그렇게 첫 번째 여름방학을 맞아

그곳에를 갔었습니다

2층의 하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처음 왔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몇 분의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고

커피를 뽑기 위해 다시 극장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형과 마주쳤었습니다

먼저 알아본 것은 형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반갑게 내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환한 얼굴로 반겨주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형이 집 근처로 가자고 했고

당시 이런저런 걸 잴 줄도 모르고 또 조금은 소심했던 지라

그냥 앞서가는 형을 따라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내린 곳은 종로3가역

형은 큰길을 지나 나를 잠시 길에 세워두고 잠시만 여기있어

집에갔다올게 하더니 막 달려갔습니다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기를 5분이나 지났을까요

형은 갈 때와 마찬가지로 큰 뜀박질로 다시 돌아왔고

오래 기다렸지? 배고프지? 밥 먹자

내가 아니 별로 안 기다렸어요 네 배고파요 하는 대답의 틈도 없이

먼저 또 앞장서 갔습니다

아마도 형은 집에 가서 돈을 들고 온 모양입니다


그날 우리가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그리고 그날 형과 여관에 있었던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종로길거리에서 나는 형에게 물었지요

형 형 혼자산다며 집 여기라면서 그럼 형네집 가르쳐줘요 했고 형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지금이야 휴대폰이 있는 시절이라 언제 어디서건 연락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집전화 아니면 집을 아는게 유일한 연락수단이었지요


길에서 형은 얼굴빛이 변해서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어떻게 형네집에를 갔는지 지금 기억은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많이 졸랐나 봅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종로3가역 일명 포차거리의 뒤편으로 있는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경사진 계단과 손바닥으로도 가려질 만큼

작은 창문 그리고 한 사람이 누우면 방의 반을 채우는 그런 일명 쪽방이었습니다

형은 한동안 방안에서 말이 없었습니다

그 기분 지금도 이해하지만 그 당시에도 저는 그걸 아마도 이해했나 봅니다


어? 형 커피믹스 있네 커피포트도 있고 형 우리 커피 마시자

아마도 내가 직접 커피를 탔던거 갔습니다


당시 나는 종로파고다학원으로 영어회화수강을 오전반에 다니고 있었고

다음날부터 습관처럼 학원을 마치면 형네 집을 찾았습니다

그 좁은 계단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올라가면 첫 번째 작은 방

처음엔 똑똑 문을 두드리다가 언제부터인가는 그냥 휙 열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몇신데 아직도 자 일어나 배고파 밥해먹자 형


나가서 먹자


나가긴 뭘 나가 나 밥 잘하니까 내가 해줄게 기대해봐 하하


늘상 조미김과 참치캔에 김치넣어 끓인 김치찌개가 전부이긴 했지만

그렇게 밥도 함께 먹고 커피도 끓여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언젠가는 가는 길에 분식집에 들러 김밥이랑 만두랑 사갔었지요

막 방에서 만찬을 풀어놓은 듯 맛있게 먹으려는데 형의 친구분이 형 방을 찾았습니다

그때 형의 모습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야 이거 내 착한 동생이 먹으라고 사왔어 나 먹으라고


형의 그 표정이 나를 좀 얼떨떨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수롭지도 않은 김밥에 만두인데 형은 친구분에게

어찌나 자랑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이던지 제가 다 화끈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형방에 누우면 머릿맡에는 당시 마이마이라 불리던 소형카세트가 있었고

외부스피커가 없는 카세트라 볼륨을 최대한 크게 하고 헤드폰을 머리맡에 두면

작게나마 들을 수 있었고 늘 올드팝송을 들었습니다


발 쪽에는 작은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어느 날 쇼 프로그램을 보다가

전유나가 부르는 너를 사랑하고도를 같이 작게 따라부른적이 있습니다

형 저 노래 참 좋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학원을 마치면 늘 형네집에 들러 청소도 하고 사실 청소할 것도 없긴 했지만

이야기도 나누고 보기엔 초라하지만 무엇보다 맛있었던 밥도 같이 먹고

그랬습니다


개강을 하고 학교가는길에는 늘 들러서 불 꺼진 방 앞에 이것저것 집에서 싸온 먹을 거리를

두고 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찾아갔을 때 형이 나가자며 일어섰습니다

밖에 추워 어디 가게? 했더니 멀지않아 따라와 해서 형을 따라 나서니

종로 맞은편에 있는 서울극장이었습니다


이 영화 너하고 보고 싶어서...하며 매표소로 형은 갔고 와 나도 이것 보고 싶었는데 하며

정말 재미있게 영화를 봤습니다

그때 본 영화가 사랑과 영혼이었습니다

영화 정말 재미있다 하며 나오는데 그때 종로에는 눈이 펑펑내리고 있었습니다

와 형 눈온다 신난다 하며 눈내리는 종로 거리를 신나게 걷기도 했습니다


어느날인가는 형네집에서 나와 집에 가는길에 코너에 부딪쳐서 허벅지쪽 바지가 찢어졌습니다

이대론 못 가겠다 싶어 형네집에가자 형 나 바지 찢어졌어 이거봐

그러면서 찢어진 쪽 다리를 쑥 내밀었더니 형은 바로

벗어 꿰매줄게 하며 바지를 조심조심 꿰메주었지요


너한테 줄게 있어

뭐?

형은 나에게 집에가서 봐 그러면서 내 주머니에 뭔가를 쑤욱 밀어넣었습니다

집에까지 가서 볼 정도의 여유는 아니었던듯 합니다

형네집 근처 불 밝은 곳에서 꺼내보니 형의 노트를 몇 장찢어 쓴 편지였습니다

그 내용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첫머리는 정확히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000에게...

.

.

.

.



20살의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꼭 치루어야 할 국방의 의무에 대한

시기를 조절하던 중 지금쯤 가는게 좋겠다 싶었고

그런 결정을 하고나니 이런저런 싱숭생숭한 마음도 들고

이런저런 이유로 형네집에를 한동안 못갔습니다

입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는것이 도리다 싶어

형집을 찾았고 그 비좁은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밑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불러세웠습니다


많이 기다리는거 같던데...지금 없어요

네? 어디갔어요?

아니요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집으로 들어간다고 오면 꼭 전해달라고

집 전화번호 남겨두었어요 하며 메모를 건네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내 전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20년이 가깝게 흘러간 지금

내가 형을 연모했는지 아니면 그것이 연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형 잘 살고 있으시죠? 그때보다는 더 행복하시길 바랄뿐입니다

저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전유나의 너를 사랑하고도...

형방에서 같이 들었던 그때 기억이 문득 떠올라 잠시 추억해 보았습니다


내일은 쉬는날이니 오늘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노래나 들으며

새벽을 맞이해볼까 합니다


형 행복 하셔야해요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이...


-


5줄 요약


글쓴이가 10살 정도 차이나는 전에 한 번 본 적있는 남자를 만남 - 사랑에 빠짐

그 사람의 집을 갔는데 엄청 못 살았지만 맨날 그 사람 집에 가서 요리해먹고 데이트 함(그 형이 정말 좋았던 거라고 추측)

어느날 그 형의 편지를 받고 더 이상 안가게 됨, 몇개월 후 군입대 할때 생각나서 가보니 그 형은 어머니가 아파서 본가에 내려감(30년 전쯤일이라 폰도 없었음)

본가에 내려갈때 그 형 자취방 주인에게 본인 본가 연락쳐를 줬지만 글쓰니는 연락을 하지 않음

10년 후즈음 갑자기 그 사람이 생각나서 게이커뮤에 글을 씀



개인적인 생각인데 음.. 글쓴이가 이기적인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가기도 하고

그 형의 상황이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아쉽기도 하고 그러넹..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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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에 올라온 글인가요? 구글에 검색해봐도 요 인티글만 뜨네요 ㅠㅠ
3년 전
다니엘_린데만  글쓴이
20년 전에 올라온 글이라 .. 복사해서 보관했었어용
3년 전
아아 이 글이 20년전에 올라온 글인가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많은 생각이 드네요 요새였다면 다시 연락하진 않아도 sns에서 흔적이라도 찾아볼 수 있었을텐데
3년 전
글에 나온 노래가 95년에 나온 노래네요 여운이 남는 글이에요
3년 전
다니엘_린데만  글쓴이
저도 처음에 읽고 여운이 많이 남고 생각이 많아지더라구요..
먼가 10년전이였어도 저랬을까
근데 둘의 사랑이 너무 순수해보이기도 하구요 ㅎㅎ
편지 내용도 정말 궁금하기도 하고.. 추측은 가능하지만요 ㅎㅎ

3년 전
다니엘_린데만에게
그 때만 가능했던 감성이 담긴 글 같아요 저 두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3년 전
디자인  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긴 글을 복사해서 보관해두셨다니..
쓰니분 가슴에 남는 글이었나보네요
그런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잘 읽었습니다

3년 전
몽글몽글하네유..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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