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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년 전 (2020/7/18) 게시물이에요

1419년(세종 1년) 5월7일 충청도 비인현(지금의 충남 서천)에 왜구가 침입을 합니다.


충청 관찰사 정진(鄭津)이 비보(飛報)하기를, "본월 초5일 새벽에 왜적의 배 50여 척이 돌연 비인현(庇仁縣) 도두음곶이[都豆音串]에 이르러, 우리 병선을 에워싸고 불살라서, 연기가 자욱하게 끼어 서로를 분별하지 못할 지경이다."


사실 왜구들이 중국 쪽으로 출병할 조짐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이미 조선 측에 전달이 되었습니다. 4개월 전인 1월에 왜구에게 포로로 잡혔다 구출된 중국인 김득관이 알려주었죠.


경상도 관찰사의 보고에, "왜적(倭賊)에게 사로잡혔다가 도망해 온 중국인 김득관(金得觀) 등 2명이 진양(晉陽)에 도착하여 하는 말이, ‘왜적이 전선을 만들고 있으니, 필경 3월 경에는 중국 연해 지방에 난리를 일으킬 모양이라 ’고 합니다." 하였으므로, 상왕은 역(驛)에 하명하여 김득관 등을 불러들이게 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들을 우선 요동으로 송환하여 방비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하기로 결정하고 이들을 요동으로 송환을 합니다.


또한 천추사(황태자의 생일에 보내는 축하사절)를 보내는데, 그 도중에 천추사 성엄이 왜구가 곧 침략할 것이라는 정보를 요동총병관 유강에게 전달합니다.


勑遼東縂兵官都督劉江曰, 今朝鮮報倭寇飢困已極欲寇邊, 宜令緣海諸衛嚴謹備之, 如有机可乘, 即盡力剿捕,無遣民患


삼가 요동총병관 유강이 말합니다, 지금 조선이 보고하기를 '왜구의 기근이 이미 극에 달하여 변경을 침구하려 하니, 마땅히 연해의 모든 위를 엄히 방비해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기회가 있어 그 기회를 탈수 있다면, 곧 (왜구를)체포하는데 진력하여, 백성을 떠나보내는 근심이 없어 질 것입니다.


1419년 4월 12일 (명실록)


그 후 1개월뒤 충청도 비인현에 왜구가 침입을 한 것이죠.


그리고 비인현에 침입한 5일뒤인 1419년 5월 11일 해주에 왜구 선박이 출현합니다. 조전절제사 이사검과 만호 이덕생이 이들과 협상(?) 하여 이들을 보내려는 시도를 합니다만 되려 노략질만 더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죠.


황해도 감사가 급보하기를,

"본월 11일에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 이사검이 만호 이덕생과 함께 병선 5척으로써 적을 해주연평곶이[延平串]에서 엿보고 있을 때, 적선 38척이 짙은 안개 속으로 갑자기 와서, 우리의 배를 에워싸고 협박하여 양식을 구하며, 사검 등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조선을 목적하고 온 것이 아니라, 본래 중국을 향하여 가려고 하였으나, 마침 양식이 떨어졌으므로 여기에 왔노라. 만일 우리에게 양식을 주면 우리는 곧 물러가겠으며, 전일에 도두음곶이에서 싸움한 것은 우리가 먼저 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대의 나라 사람들이 우리들을 하수(下手)하기에 부득이 응하였을 뿐이라.’ 하니, 사검이 이에 사람을 보내어, 쌀 5섬과 술 10병을 주었더니, 적은 아무런 고맙다는 말도 없이 도리어, 보낸 사람을 붙잡고 양식을 더 토색질하거늘, 사검이 진무(鎭撫) 2인과 선군(船軍) 1인을 보내어 쌀 40섬을 주었으나, 적은 이속(吏屬)과 진무는 보내면서, 또 선군(船軍)을 잡아두고 사검과 서로 대치하고 있거늘, 성달생경기(京畿) 병선이 역풍(逆風)으로 인하여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말하고, 이에 역마를 빨리 달려 황해도의 병선을 타고 가려 했으나, 가서 본즉, 그 배는 매우 적은 데다가 이미 사검 등이 타고 있어서, 달생은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저들이 중국으로 가는 것을 확인한 조선 조정은 보고가 들어온 다음날인 5월 14일 대마도가 비었을 것이라 판단 그 유명한 대마도 정벌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가 들어가게 됩니다.



양상(兩上)이 유정현·박은·이원·허조(許稠)들을 불러,

"허술한 틈을 타서 대마도를 치는 것이 좋을까 어떨까."

를 의논하니, 모두 아뢰기를,

"허술한 틈을 타는 것은 불가하고, 마땅히 적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서 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 유독 조말생만이,

"허술한 틈을 타서 쳐야 합니다."

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금일의 의논이 전일에 계책한 것과 다르니, 만일 물리치지 못하고 항상 침노만 받는다면, 한(漢)나라흉노에게 욕을 당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허술한 틈을 타서 쳐부수는 것만 같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처자식을 잡아 오고, 우리 군사는 거제도에 물러 있다가 적이 돌아옴을 기다려서 요격하여, 그 배를 빼앗아 불사르고, 장사하러 온 자와 배에 머물러 있는 자는 모두 구류(拘留)하고, 만일 명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베어버리고, 구주(九州)에서 온 왜인만은 구류하여 경동(驚動)하는 일이 없게 하라. 또 우리가 약한 것을 보이는 것은 불가하니, 후일의 환이 어찌 다함이 있으랴."


결국에는 대마도 정벌이 결정되고 정벌이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은 방송에서 자세히 확인을 하실 수 있으니 패스하고,


해주에서 5월 11일에 나타났던 왜구가 1419년 6월14일 밤에 요동 금주위에 출현, 유강의 군대는 이들과 격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오해가 있을 수 도 있는데, 유강은 조선이 정보를 전달해 주기 1년전인 1418년에 이미 왜구 출몰지역을 순시하였습니다.


遼東總兵官都督劉江言, 近因巡視各島賊人出沒之處, 至金州衛金線島西北望海堝上, 其地特高可望老鸛觜、金線、馬雄諸島, 其旁可存千餘兵守備


요동총병관 도독 유강이 말하기를 '근인으로 인하여 각도에 적인이 출몰하는 곳을 순시하였습니다. 금주위 금선도 서북 망해과 위에 이르러 그 땅에서 특히 높아서 노관취 금선 마웅제도(諸島)를 볼수 있고, 그 옆은 천여명의 병사를 두어 수비시킬수 있습니다......'


1418년 8월 6일 (명실록)


물론 사전준비를 시킨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언제쯤 도착 할 것이다라는 정보를 주는 것도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계~속 기약도 없이 기다리다 보면 지치고 나태해 지는 거야 우리가 군대에서 겪은(?) 일이니 말이죠.


어쨌든 대마도를 공격하여 군사작전을 한 뒤 그 함대로 돌아오는 왜구도 소탕하려는 안이 제시되었지만, 7월 12일 명나라에서 부터 왜구들이 소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요해에서 요격하는 것으로 작전을 전환합니다.



청(聽)이 또 계하기를,

"왜적금주위(金州衛)를 범해서 도적질하니, 도독(都督) 유강(劉江)이 복병(伏兵)으로 유인하고 수륙으로 협공하여, 사로잡은 것이 1백 10여 명이요, 목벤 것이 7백 여 급(級)이매, 적선 10여 척을 빼앗아 수레 5량(輛)에는 수급(首級)을 싣고, 50량에는 포로를 실어서 다 북경에 보내었는데, 이런 광경을 이 노상에서 직접 보고 왔나이다."

하였다. 상왕이 이에 지인(知印) 이호신(李好信)을 보내어 유정현에게 선지를 내리기를,

"대마도를 다시 토벌하는 것을 중지하게 하고, 장수들로 하여금 전라, 경상도의 요해처에 보내어, 엄하게 방비하여, 적이 통과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추격하여 잡게 하라."

고 하였다.


그리고 그해 9월 우리나라 포로들을 영락제가 조선으로 송환합니다.


사은사 조흡(曹洽)과 부사 이흥발(李興發)북경에서 돌아왔는데, 황제가 도둔곶[都芚串]에서 붙들려 갔던 선군(船軍) 이원생(李元生) 등 세 사람을 함께 돌려 보내게 하였다. 원생 등이 말하기를,

"왜적중국 땅을 침노하다가 도독(都督) 유강(劉江)에게 격퇴 당하여 1천 5백 명이 목을 잘리고 생포된 자만도 1백 3명이나 되었다 배를 지키던 왜적이 우리들 붙들려 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나라에서 우리가 침략하러 간다는 것을 가만히 일러 주어서 우리들이 패전하게 되었다.’ 하고, 40여 명이나 찔러 죽이는데, 우리들 세 사람은 도망하여 중국으로 갔더니, 황제가 의복과 식량을 주시며 돌아오게 하였다."고 하였다.

전에 천추사(千秋使) 성음(成揜)경사(京師)에 갈 때에 요동에 가서 왜적의 사변이 있을 것을 일러주었으므로, 유강이 미리 대비하여 왜적이 패망하였던 것이다.

왜구도 명나라도 우리나라에서 정보를 준게 나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판단한 것 같습니다. 조선측에서야 당연히 우리가 공헌했다고 인식했고요.


어쨌든 이 망해과 전투는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기 쳐들어온 왜구제대로 토벌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전투가 대마도 정벌을 포함해서 조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역서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지지난주 토크멘터리 전쟁사에 잠깐 나왔던 망해과 전투에 대하여 그 과정을 심심해서 올려 봅니다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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