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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년 전 (2021/2/28) 게시물이에요
월간 윤종신 - 당신의 노래 "어떤 아름다움은 해석되기를 거부한다" | 인스티즈

스모우크핫커피리필(2012), 3호선 버터플라이


두 개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하나는 매끈하다. 흠잡을 데 없다. 커피를 든 원빈의 표정, 뮤직비디오 속 태민의 실루엣, 인스타그램 좋아요를 수천개 받은 일러스트, [슬램덩크] 애장판의 엔딩 같은 것. 다른 하나는 좀 애매모호하다. 어딘지 흠이 있(는 것 같)다. 오돌도톨한, 알 수 없는 뭔가가 의뭉스럽게 붙어 있다. 내 눈에는 아름다운데 웬일인지 당신은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내게 ‘인생의 노래’란 늘 막막하고 어렵다.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곡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열 네살에 좋아했던 곡은 있다. 열 여섯에 좋아한 곡도 있다. 열 아홉에도, 스물 일곱에도, 서른 하나에도, 서른 아홉에도, 마흔 다섯인 지금도 그렇다. 내 인생의 노래 같은 건 매년 있었을 지 모른다. 그 중 하나를 고르지 못해 잠을 설치다가 이 노래가 퍼뜩 떠올랐다. 2019년의 노래는 아니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8년 만에 발표한 4집 [Dreamtalk]의 수록곡 “스모우크핫커피리필”, 2012년의 노래다.

이 곡은 2층 구조다. 중간에 짧은 계단이 있다. 목소리로만 시작되는 이 곡은 “스모우크핫 커피리필”이라는 단어의 덩어리가 열 여섯번이나 반복된다. 사실 노랫말이 잘 들리는 건 아니다. 귀를 기울일라치면 다른 소리가 자꾸 끼어든다. 중저음의 남자 보컬과 노이즈 틈에서 맥박처럼 통통 뛰던 비트도 슬그머니 쪼개진다. 게다가 “스모우크핫”에 이어지는 “커피리필”은 엇박으로, 이렇게 생긴 긴장감은 “달이뜨지않고니가뜨는밤”에서 미끄러진다. 이렇게 똑같은 프레이즈가 16회나 반복된다.

이 중독적인 리듬을, 다시말해 무슨 뜻인지도 모를 단어들을 따르다보면 계단을 만난다. 올라가든 내려가든 어쨌든 계단이다. “스모우크핫 커피리필, 달이뜨지않고니가뜨는밤”을 뒤따르던 걸음이 계단 앞에서 뒤엉킨다. 조성과 속도가 바뀌고 흐느끼는 보컬 너머로 불협화음이 흐느적댄다. 그러다가 갑자기 노래의 하이라이트인 “붉은눈시울망초 심장을누르는돌”이 등장하는 것이다. 화려하고 직관적이다. 낮은 데 있던 목소리는 불현듯 높은 음으로 뛰어 오르고, 이펙터로 재현된 공간감은 극적으로 강조된다.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붉은눈시울망초 / 심장을누르는돌 / 붉은눈시울망초 / 뜨거운피귀뚜리피리 / 붉은눈시울망초 / 심장을누르는돌 / 붉은눈시울망초 / 지나가는흰구름이쓰는이름”이 반복된다. 여기는 모호한 단어들로 설계된 장소다.

이때 중요한 건 가사의 숨은 뜻 같은 게 아니다. 발음과 소리가 구현하는 이미지다. 이미지는 정작 무엇도 가리키지 않는다. 흐릿한 것들이 떠다니다 흩어진다. 그렇다고 노랫말이 사소한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 “스모우크핫 커피리필”이란 덩어리는 의미보다 발음을 우선한 결과다. ㅅ과 ㅇ의 부드러운 소리는 ㅋ과 ㅍ의 거친 발음과 뒤섞이고, 후렴구에서 ㄷ과 ㅁ, ㅂ과 ㄴ, ㅁ과 ㄷ, ㄸ와 ㅍ이 자연스럽게 엮인다. 무성음이 유성음과 마찰음, 파찰음과 파열음과 붙으며 자연스레 형성된 흐름이 특정한 소리의 감각, 모종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오직 그를 위해 ‘스모크’는 ‘스모우크’로 쓰인다.

말맛을 살리려는 이런 노력은 짧은 곡 구조에 일부로 자리 잡는다. 끝말잇기 하듯 이어붙인 “붉은눈시울망초”의 주변에도 이런저런 소리가 맴돈다. 듣다보면 정체불명의 무드가 스르륵 휘감는다. 지금은 탈퇴한, 당시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시인으로도 잘 알려진 성기완은 이전부터 텍스트와 사운드를 동시에 붙잡으려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곡을 듣다보면 아름다움에 대해서, 우리가 그토록 얻으려고 애쓰는 해답에 대해서, 세계의 비밀과 그 비밀을 풀 열쇠와 그 열쇠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자들의 언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요컨대 세상의 여러 아름다움 중에 어떤 것은 해석되기를 거부한다. 오직 감각되기만을 원한다. 분위기다. 느낌적인 느낌이다. 결코 알 수 없는 세계의 어떤 단면이다. 그 순간과 마주친 나로서는 그저 주머니 속에 손을 푹 찔러 넣고는 부풀어오르는 기쁨 속에서 약간의 쓸쓸함과 고독감을 만지작거릴 뿐이다.

두 개의 아름다움이 있다. 한 쪽은 매끈하고, 다른 쪽은 모호하다. 양쪽 다 매혹적이다.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내가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건 애매모호한 쪽이다.

이 음악을 사랑한다.


차우진



출처 : 월간 윤종신 (https://yoonjongshin.com/archives/4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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