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낯설지 않아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좋아
내게서 너를 본떴거나
네게서 나를 훔쳐 왔다거나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닮아 있어서,
너무 기쁜데,
이국적인 기분이 드는데,
너를 또는 나를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는 게
이렇게 어둡고 숨 막히는 반짝임이었나,
우리는 골몰해 볼 필요가 있어

입술이 겹쳐질 때마다 느껴,
이 관계가 나팔꽃처럼 시시해지지는 않을까
빗소리가 뜨겁게 바닥을 달굴 때
물고기의 호흡법으로 간신히 생을 견디는 너와
부피도 없이 밀도만으로 살아남은 나를,
굳이 둘로 쪼개지 않아도 됨을 깨닫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너를 내 풍경에 구겨 넣고,
나날이 낯빛이 흐려가는 카나리아처럼
우리는 우울한 식사를 하지
“공기가 시들고 있어.”
“뭐가?”

“우리가 불가능하다는 신호야.”
함께일수록 서로를 칭할 말을 모르게 돼,
둘이어서 안되는 것이 불어날수록
깨끗한 환청이 매일 찾아와,
내 마음을 오려 교회에 숨겼지만
복사된 마음이 더욱 멀쩡히 살아 있고,
나부끼는 밤마다 너를 안았지만
차가운 네 빰이 말하고 있어
너의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 나의 끝,
나의 종말.
/김하늘, 데칼코마니

네가 아니면 나는 어쩌지
내가 아니면 너는 어쩌지
삶은 이렇게 간절한데
어떤 이름에 기대어야 하지
마음은 이토록 한순간에 무너지는데
영원같은 시간 동안 누구를 기다려야 하지
내가 아니면 너 홀로 어떻게 살지
네가 아니면 나 홀로 어떻게 죽지
나는 꽃처럼 흔들리고 안개처럼 흐린데
너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지
/황경신, 네가 아니면 나는 어쩌지
너는 일생을 사랑하는 걸 취미로 삼는 사람이었다
본 영화도 읽은 책도 들은 음악도 많진 않았지만,
사랑만은 지치지 않고 꾸준히 했다
어느 날 고통에 못 이긴 듯 네가 중얼거렸다

더 이상은 사랑하고 싶지 않아 병이야
그러나 내가 너의 병이 된 적은 없었다
너의 병이 나만은 비껴갔다
나는 이것을 두고두고 서운했다
/이희주, 환상통

너의 예언으로
이 세계를 잃어버리고 싶어
벽들이 둘러진 이 미로에 마주서서
이름을 잃을 손목들이 짠 카펫을 펼치면 될까
벽이 가려지면 남겨진 정원이 열리고
네가 불러낸 예언들이 거기서 숲과 열매가 되어
서서 잠들어야 했던 시간을 향기롭게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잃어버린 세계로
너를 안아 가릴 수 있을까
밖이 어딘지 아는 예언이 숨은
숨쉬고 숨쉬어 엮는
한번은 손안에 있던 세계
펼치면 바람에 펄럭이는 잎들의 정원.
/김학중, 예언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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