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기 있어? 물으면 거기 없는
여름
우리는 아름답게 눈이 멀고
그제야 숲은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서
눈부신 정원을 꺼내주었던 것입니다
-돌의 정원, 안희연
우리가 만나는 건 순간일 뿐
가져갈 수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스쳐가고 오는 동안
처음이고 나중인 풍경
너, 아니었는지
-풍경, 이규리
강수량도 되지 못하는 비
반성도 아닌 반성문
한낮의 발랄했던 외출이 주검처럼 다 젖어
그렇다고 비 때문이라 말할 수 있을까
헛된 기대는 또 다시 너여서
쨍한 날에도 너 닿은 한쪽은 금세 울고 만다
-국지성 호우, 이규리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 주는 가여운 안식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 주는 가여운 평화
-사랑하는 손, 최승자
내가 그린 것은 한그루의 나무인데
불가피한 오후가 시작되고 있다
나는 일곱마리의 물고기를 기릅니다
하루에 한마리씩 죽고 그것을 일주일이라고 배웁니다
비어가는 어항을 보다가 까닭 모를 울음을 터뜨릴 때
나를 접어 날려 보내던 손
그 손을 잡고 있던 여름
나는 스케치북을 덮고 일어선다
-한그루의 나무를 그리는 법, 안희연
얼굴을 내밀어보렴
수면 위로
수면 위로
네가
떠오른다면
나는 가끔 눕고 싶은 등대가 된다
-서랍, 박연준
어떤 이는 손바닥 하나를 뒤집어 새를 날리고 장미를 꺼내지만
손바닥을 뒤집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복숭이 간신히 내놓은 까슬한 뺨을
꾹꾹 눌러 확인하지 마라
여기까지 먼길,
파란 열매는 얼마나 가혹한 자책이겠느냐
-그늘의 맛, 이규리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날을 마련하려다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죄송해요
꼭 그날이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전화를 하면 그날인 것을요
꽃은 순간 절정도 순간 우리 목숨 그런 것인데
차일피일, 내 생이 이모양으로 흘러온 것 아니겠어요
그날이란 사실 있지도 않은 날이라는 듯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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