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 삭제돼서 긁어왔는데 원글 글쓴이가 불편해하면 삭제할게요)
종로구 고시원 화재 : 창문 없는 방에서 희생자가 다수 발생
세계는 끝내 평등해지지 않을 거다. 지구상의 운을 한꺼번에 걷어다가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 줄 수도 없다. 운의 영향력을 보정하고 교정하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운 덕분에 기뻐하는 사람은 있어도 운 때문에 영원히 좌절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고시원 창문을 ‘희망’의 은유라 부르겠다.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 희망. ‘창문 없는 방에서 외롭게 죽을 운명’ 같은 건 없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노력이 배려이고 도움이고 복지다. 그리고 인간다움이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811211982069252
‘창문 없는 방에서 외롭게 죽을 운명’ 은 없는 세상이어야 한다
[36.5˚] 목숨값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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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의 책중에서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기 위해서’라 답하겠다. 대부분의 삶은 실패한 채로 끝난다. 그래도 우린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만의 내면이 있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을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내면.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주제로 한 강연에서 김영하 작가의 말
타인의 사정을 모를 때, 넘겨짚지 말고 잔인하게 굴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세랑 작가인터뷰에서
http://m.ch.yes24.com/article/view/40958
[커버 스토리] 정세랑,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남은 작가 | YES24 채널예스
장르 문학과 문단 문학을 오가면서 활동하다 보니 단편집을 묶을 때, 혼재된 형태가 되기 쉬운 것 같아요.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취향이 균일하지 않으시고요. (2020. 02. 03)
ch.yes24.com
‘응보적 정의’를 넘어서는 ‘회복적 정의’를 사유하는 일각의 흐름이 무색하게도, 누군가를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까지 절멸시켜야만 종결될 것처럼 보이는 일부 나쁜 비판의 목소리들은 이미 그들 자신의 쾌락을 위한 것이지 대의나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비판은 대상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어야지 주체가 무언가를 가져가버리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잉여 쾌락이라고 할 만한 부산물을 산출해내고 그것을 주체가 향유하는 비판, 그렇기 때문에 대상은 빈곤해지고 주체만 풍요로워지는 비판은 나쁜 비판이다.
신형철 문화평론가의 칼럼
https://www.khan.co.kr/article/202007230300035
[신형철의 뉘앙스] 나쁜 비판의 잉여 쾌락
어쩌다 작품 합평을 하게 되면 학생들에게 권장한다. ‘한 가지를 비판하고 싶으면 먼저 다섯 ...
www.khan.co.kr
한 개인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거니와 어떤 사안이나 현상에 대해 일정한 지식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앎의 끝일 수 없다. 그 지식은 그의 지적 조건과 근면성과 주어진 자료에 따른 현재 상태의 지식일 뿐이니 모든 지식에 관한 담론은 그 탐구 과정의 중간보고라고 말해야 옳다.한 지식 체계의 변두리에서는 지식이 낡은 경험을 식민화하지만, 오히려 중심부에서는 지식이 늘 겸손한 태도로 세상을 본다. 제가 무지 앞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무지에 둘러싸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다.
책중에서
경청에는 정치적 차원이 있다. 경청은 타인들의 현존재에 대한, 그들의 고통에 대한 행동이자 적극적인 참여다. 경청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매개하여 비로소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
한병철의 책중에서
장애라는 정체성이 어떤 산물이라기보다는 장애라는 경험에 맞서 한 개인이 작성해나가는 ‘이야기’ 그 자체라면, 우리가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하나의 국면이 아니라 긴 삶의 시간동안 그것을 ‘써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김원영의 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