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봐.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모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우리 부모님 기억해? 언제나 다투던 두 사람은 내가 스무 살 때 결국 이혼하셨어
엄마는 한국에 남았고 나는 아빠와 같이 일본에 왔어. 일본에 온 뒤로 아빠는 나를 고모한테 맡겼어. 가끔 아빠랑 통화를 하곤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어. 조금 전에 돌아가셨거든.
이상하지.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아빠 덕분에 이렇게 너한테 편지를 쓰고 있다니.
우리 고모 알지? 내가 자주 말하곤 했던 마사코 고모.
나는 고모와 함께 오타루에 살고 있어. 고모는 나와 닮은 것 같아.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것과 북적거리는 곳을 싫어하는것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을 좋아하는 것까지. 고모는 겨울의 오타루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겨울의 오타루엔 눈과 달, 밤과 고요 뿐이거든.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이곳은 너한테도 잘 어울리는 장소라고. 너도 마사코 고모와 나처럼 분명 이곳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오랫동안 네 꿈을 꾸지 않았는데 이상하지? 어제 네 꿈을 꿨어. 나는 가끔 네 꿈을 꾸는 날이면 너에게 편지를 썼어. 하지만 이미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너에게 그편지들을 부칠 순 없었어. 그러다보니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쌓이게 되고 매번 이렇게 처음 쓰는 편지인 것처럼 편지를 쓰게 돼.
망설이다 보니 시간이 흘러버렸어.
나는 비겁했어. 너한테서 도망쳤고 여전히 도망치고 있는 거야. 머지않아 나는 또 처음인 것처럼 이 편지를 다시 쓰게 되겠지. 바보 같은 걸까.
나는 아직도 미숙한 인간인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런 거 아무래도 좋아. 나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내가 부끄럽지 않아.
윤희,
너는 나한테 있어 동경의 대상이었어. 너를 만나고 나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
가끔 한국이 그리울 때가 있어. 우리가 살았던 동네에도 가보고 싶고 같이 다녔던 학교에도 가보고 싶어.
한국에 있는 엄마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지 또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다들 감기 조심하고 포근하게 잘 자 .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