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추천 순서는 랜덤입니다.
최은영 장편소설
밝은 밤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청명한 오후였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았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자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김초엽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백은선 시집
도움받는 기분
언니, 언니가 그렇게 썼잖아 나는 그걸 읽고 언니, 그것의 제목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기억나지 않아 언니 나는 단지 언니의 아름다운 시를 읽고 얼굴이 빨개졌을 뿐인데 왜냐하면 어떤 것은 꼭 내 꿈속에서 일어난 일 같고 어떤 문장은 내가 잊기 위해 평생 애쓴 계절 같아 나는 가끔 언니가 너무 밉고 너무 좋고 언니의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나를 벗어버릴 것 같고 영원히 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언니
최진영 장편소설
내가 되는 꿈
내가 여기서 잘 버티면 너는 그곳에서 평안할까. 네가 거기 잘 있다고 상상하면 이곳의 나는 조금 용기가 난다.
이소호 에세이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역시 사람은 너무나 쉽게 변하거나, 그보다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 누구로부터도 영원히 고쳐 쓰이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변하는 것은 매일매일 내 손으로 쓰는 나 자신뿐이다.
천선란 박해울 박문영 오정연 이루카 단편소설집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낮과 밤의 시작과 끝이 포개지고 접히면서 서로의 뒤를 좇았다. 매일의 기도는 항상 같았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죽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이혜미 시집
빛의 자격을 얻어
우리는 같은 비밀을 향해 취한 눈을 부비며 나아갈 수 있을 테지요. 두 눈이 마주치면 생겨나는 무한의 통로 속으로. 이미 깊숙해져 있는 생각의 소용돌이를 찾아. 떠올린다는 말에 들어 있는 일렁임을 다해서.
한강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루리 동화
긴긴밤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조예은 장편소설
스노볼 드라이브
매일같이 망치에 부딪히더라도 꿋꿋이 그 자리에 서서 물건을 다듬는 모루처럼 살아가라고, 어차피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니 그럴 바엔 흠집을 무늬로 만들어 버리라고, 단단히 존재하라고.
강화길 장편소설
대불호텔의 유령
왜 이토록 어려울까요. 불안함으로만 가득할까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우리에게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울까요. 우리에게 사랑이란 덧없는 기억이고, 불행은 오래 남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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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 나온 일곱 권의 소설 두 권의 시
동화 하나 에세이 하나를 모았어
모두 여성작가의 작품으로
편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거야
이 글 속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여시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기를 바라
마침내 책으로도 만나게 되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