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 "오다 노부나가"
[2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 "오다 노부나가"
[3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 "오다 노부나가"
본문은 국방tv 토크멘터리전쟁사의 내용을 요약정리한것임을 밝힙니다.
※실제 역사와 다른 각색이 있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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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나카지마 전투의 결과로
북 시나노를 점령한 다케다 신겐
교토의 정세가 어땠길래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을 싸우게 만든것일까 ?
전국시대의 혼란기가 도래하자,
다이묘들과, 영주, 심지어는 천황과 쇼군에게 마저도 세금수입이 끊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상황은 꽤 심각하여 쇼군마저도 굶주리고
천을 기워 옷을 입는다는 소문이 퍼질정도였다.
그러니 쇼군은 누군가 와서 교토를 정리해주고 혼란을 수습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무질서한 교토일대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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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가 되던 시절의 다이묘인 슈고 다이묘는 거의 남지않았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센고쿠 다이묘들은 기존의 관습을 무시하며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잡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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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 다이묘가 교토의 부름을 받아 일대의 통제권을 쥔다면,
전국의 다이묘들 중에서 가장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셈이었다.
쇼군이 힘이 없자, 강한 지방 다이묘의 손을 빌리는 상황.
그래서 쇼군의 부름을 받은 다이묘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 것이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교토로 간다면 쇼군의 자리를 찬탈하러 가는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바로 그 기회가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에게 왔으니
교토로 가기 위해 큰 싸움을 벌일 명분이 생겼던 셈이다.
한편, 교토 주변의 다이묘들도 결코 바보는 아니었다.
이런 서신들이 오고가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지방의 강력한 다이묘가 올 것을 대비한 준비를 교토 주변에 있는 다이묘들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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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유력세력들의 시선이 교토로 쏠려있었다.
도쿄 주변에 있던 다이묘는 지방의 다이묘가 오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먼저 선수를 치자는 생각으로 급하게 움직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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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상황이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을 조급하게 만들어
가와나카지마 전투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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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를 치고싶었던 교토 근방의 다이묘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당시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오다 노부나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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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다 노부나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
첫번째로 오다 노부나가의 집안은
소위 말하는 콩가루 집안이었다.
무한 경쟁의 시대인 전국시대는 당연히 아래에서 부터 경쟁을 이기고 올라온 사람이 강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오다는 그 경쟁을 뚫고 다이묘가 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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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집안은 본래 슈고 다이묘의 가신집안이었으나 결국 다이묘 자리를 차지 했고
가문은 그 사이에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형제들과 싸움을 벌였고 옆 동네와 싸웠으며
오다 노부나가 또한 형제들과 싸움을 벌여 살아남았다.
그런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성장해온 오다 노부나가는
전통과 관습에 얽메이지 않는 성격을 가지게 된다.
그는 형식적인 것으로 절대 판단하지 않았고
이 성격이 전국시대를 헤쳐나가는데 장점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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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취미는 말 타기 였는데
바보 행세를 하여 경쟁자들의 눈 밖에 벗어나 영지를 돌아다니며 영지의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했고
그러면서 예민하게 시대의 흐름을 예측하고 다녔다.
브랜드를 믿지 않는 그의 스타일은
지역,사람을 보는 눈을 뛰어나게 만들었다.
전국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본위를 행할 수 있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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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일이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교토에 입성했을때, 오다 노부나가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전국의 패자가 된 뒤, 오다는 교토에 입성하여 쇼군 가의 사람을 모두 숙청하였다.
그 와중에 당시 쇼군은 천황가의 요리사를 데려다 쓰고 있었는데
부하 한명이 원래 쇼군 밑의 인물도 아닌데다가 최고의 요리사라 죽이기 아쉽다고 보고를 올린다.
오다는 이 부하에게 뭐라고 했을까 ?
브랜드에 얽메이지 않는 오다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그의 대답은
" 그에게 요리를 하나 만들어오도록 시키고 먹어보고 결정하자"
그리고는 맛을 보고는 맛이 없다며 죽이라고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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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들은 요리사는 그럴리 없다고 한번의 기회를 더 요청했고
황실요리 특유의 양념을 거의 하지 않는 관습을 버리고 간을 한 요리를 올린 다음에야 인정받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천황가의 요리사가 대접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뿌듯하고
천황가의 요리라고 하면 맛이 없어도 천황가의 요리는 역시 다르다며 엄지를 추켜세우는게 보통인데
브랜드에 얽메이지 않는 오다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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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냈던 오다 노부나가의 진가를 알아본 인물은
바로 그의 장인 사이토 도산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의 본거지 오와리의 바로 옆 미노라는 작은 지방의 다이묘였다.
평민 승려 출신으로 장사꾼을 거쳐 하극상으로 다이묘의 자리에 오른 사이토 도산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고 지원해주었고
장인 사이토 도산의 지원을 받은 오다 노부나가는 집안에서의 전쟁을 하나,둘 평정해가며 다이묘에 오르게 된다.
훗날, 사이토 도산은 그의 아들손에 살해 당할 때까지도
오다와의 관계 만큼은 끈끈했다고 한다.
오다 노부나가가 본격적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전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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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년 오다노부나가의 본거지를 침공한 이마가와 요시모토와의 오케하자마 전투이다.
당대 3만의 이마가와 침공군은 거의 최초,최대 규모의 군대였다.
반면, 당시 오다 노부나가의 군대는 2천~3천뿐이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왜 오다 노부나가를 침공했던 것일까 ?
우리는 시간을 오닌의 난 후의 과거로 되돌려 상황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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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리 옆 미카와(現아이치 현)를 지배하던 마쓰다이라 가문을
서쪽에 오다 가문, 동쪽에 이마가와 가문이 호시탐탐 노리던 와중
1548년, 오다 가문이 마쓰다이라 가문의 미카와를 침공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자 동쪽의 이마가와 가문에 원병을 청하는 마쓰다이라 가문.
이마가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6살 난 마쓰다이라 가문의 아들 마쓰다이라 다케치요을 인질로 데려간다.
(이때 인질로 잡혀간 마쓰다이라 다케치요가 훗날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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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와 가문 입장에서는 마쓰다이라의 미카와를 먹고, 오다 가문만 치면 바로 교토로 입성할 수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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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이라 가문은 항상 이렇게 양 옆의 강한 가문에 치여
끌려다니는 신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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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마가와 가문에 인질로 잡혀가던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를
중간에 오다 군이 가로채 납치해간 뒤 마쓰다이라 가문에게 아들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으니 항복하고 미카와를 내놓으라 한다.
그러자 마쓰다이라 가문에서는
아주 유명한 대답을 내놓는다.
" 죽여라 오다 가문 너희들이 내 아들을 죽인다면
우리는 이마가와 가문과 훨씬 더 강력한 결속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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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답을 들은 오다 가문은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죽일리 없었고
이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오다 노부나가와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는 친해지게 된다.
오다 가문과 이마가와 가문의 팽팽한 대립.
노부나가의 아버지가 이 와중에 죽고,
오다 가문에서의 내분으로 오다 가의 가신들이 이마가와 가문으로 넘어가 힘의 균형이 깨지자
이마가와는 협상을 걸어 휴전조건으로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를
다시 내놓으라고 오다 가문에 요구한다.
그렇게 이마가와 가문으로 간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무려 10년간
인질 생활을 하며 이마가와 가문의 조카 사위가 되었고
풀려나 미카와의 다이묘가 된다.
주군인 마쓰다이라 다케치요가 이곳 저곳으로 볼모생활을 다니는 동안 미카와를 지킨것은,
이리저리 치이는 와중에서도 똘똘뭉쳐
전국에 신뢰와 의리 단결의 상징으로 이름을 떨치게 될 미카와 가신단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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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와 가문은 이미 마쓰다이라 가문도 우리 것이나 다름없으니( 혼인관계 )
마쓰다이라 가문과 연합하여 오다 가문을 칠 계획을 세웠고
무려 3만의 군세를 이끌고 오다 가문을 침공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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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오다 노부나가의 오와리를 이마가와 가문이 침공했던 이유였다.
그렇게 이마가와 + 마쓰다이라 연합이 오다 노부나가의 오와리를 침공했고
이마가와는 선봉에 18살의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를 세웠다.
이마가와는 관동의 강력한 다이묘들과
외교를 통해 관계를 잘 다져놓았기에 온전히 이쪽에 집중할수도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기요쓰 성만 점령한다면
오다와의 전쟁을 사실상 끝낼 수 있는 상황
병력이 적군의 1/10 밖에 되지 않는 오다 가문의 가신들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우선 도망을 가자고 간언한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는 오래살고 싶지 않다며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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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마가와의 진격로는 산을 피해 해안선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이마가와와 오다 가문은 선대부터 여러번 싸웠기에
이 해안선들을 따라 요새들이 설치되어 요새선이 형성이 되어있었는데,
이마가와 측에서 선봉에 나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훌륭히 지휘를 해 3개 정도의 중요 요새를 점령한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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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군대도 쓰지않고 요새를 점령해 나가며
계획대로 일이 너무 술술 풀리자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그만 마음을 놓아버린다.
그날 밤 오케하자마 협곡에 진을 친 이마가와 요시모토.
오다 노부나가는 고작 2천명의 병사 중에서 500명을 다시 빼내어 산위에 요새를 만들게 하고는
나머지 병력을 어릴때 영지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비밀통로로 이동시켜 이마가와 진지의 코 앞까지 이동시켰다.
게다가 그 날은 비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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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유리한 상황에 비까지 오자 마음을 놓고는
그날 밤 자신의 진지에서 본대 5천명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여기서 파티를 벌이고 있는 이마가와 본대 5천을 기습한
2천여명의 오다 노부나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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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란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호위병 300을 이끌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결국 결사적으로 싸우다가 이마가와가 살해된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곧바로
이마가와를 배신하고, 오다 노부나가에게 붙으며
오케하자마 전투는 이렇게 극적으로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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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견제할 이마가와 가문을 처리하자,
오다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미카와 가신단을 행동대장으로 삼았고
이들은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게 된다.
이 뒤로 오다 노부나가가 죽을때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를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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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정찰과 경계라는 기본업무를 소홀히 하였고,
야전지와 떨어진 산속 깊은 곳의 협곡에서 방심하며 연회를 즐기었기 때문에 패배하였다.
전장에서 지휘관이 뒤에 있으면 안된다는 말이 꼭 최전선에서 지휘하라는 뜻이 아니라
병사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마가와는 남의 군대(도쿠가와)로 이득을 취한다는데에 사로잡혀 마음을 놓았던 것이
1/10의 병력에게 패배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3만의 병력중에는 관동에서 온 지원군도 있었고
심지어는 이마가와 본대 5천 조차 여러 가신단의 연합체였기에 저항의지 없이 흩어졌다.
군대라는 것은 옆의 사람, 옆의 부대를 믿고 싸우는 법
옆의 부대를 믿을 수 없으면 싸움을 할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검증된 동료가 있어야 등을 맡기고 싸움을 할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쟁에서의 '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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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오다 노부나가"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21/12/28/e/6/d/e6d8d91bf8cf29306762e793bcc7ca16.jpg)
당시 한창 치열하게 싸우던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은
이 전투의 결과를 듣고 깜짝 놀랐다.
오다 노부나가는 세력확장을 이루게 되었지만
아직은 교토로 갈 명분이 없었다.
![[4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오다 노부나가"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21/12/28/2/9/4/294d5aaad6365844d2c009f63aa6011e.jpg)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에게 하늘의 기회가 찾아온다.
![[4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오다 노부나가"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21/12/28/3/0/2/302d89a25363b827195b28a0ccdc5acf.jpg)
쇼군의 동생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현재의 쇼군이자 자신의 형인 요시테루가
미요시 가문과 마쓰나구 가문에 암살당하자 쇼군의 정통성을 찾기위해 노부나가를 찾아온 것이다.
진 이미지의 오다 노부나가가 순식간에 이마가와를 해치우고
명분까지 얻어 교토에 가서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옹립하자 전국의 다이묘들이 넋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4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오다 노부나가"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21/12/28/2/d/b/2dbac4a510a05b737ba9a031018c45bb.jpg)
요시아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엄청난 감사를 표하며 보상으로 어떤 것을 원하는 지 물어보게 되는데
오다 노부나가의 대답은 쇼군의 예상을 깬 의외의 대답이었는데......
- 다음편에 계속
댓글은 글 작성에 매우 큰 힘이 됩니다.
)
오류 정정
1. "교토 주변에 있던 다이묘는 지방의 다이묘가 오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먼저 선수를 치자는 생각으로 급하게 움직였고 바로 이런 상황이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을 조급하게 만들어 가와나카지마 전투로 이어진 것이다."
=> 가와나카지마 전투는 교토로 올라가기 위한 신겐과 겐신의 조급함에 의해 일어난 전투가 아닙니다. 당시 다케다 가문은 산지로 둘러싸인 가이국만을 지배하고 있었고 대대로 내부 분열과 이마가와, 호죠라는 강대한 가문들 틈에 껴서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겐의 아버지인) 다케다 노부토라는 다이묘가 되자 내부를 정리하는 한편 이마가와와 혼인 동맹 등을 통해 내외부의 혼란을 차단합니다. 이후 넓은 농토가 있는 시나노 침공을 개시하나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합니다. 이후 노부토라를 축출하고 다이묘에 오른 신겐은 아버지가 완수하지 못한 시나노 공략에 착수하게 됩니다.
여기서 큰 성과를 올린 신겐은 남시나노를 완전히 장악하고 북시나노로 진출, 무라카미씨와 지속적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잘 싸우던 무라카미씨는 점점 다케다군에게 밀려 시나노 북쪽 경계까지 밀려나게 되고 바로 이 지점에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세력이 우에스기 가문이었습니다. 다케다 가문에게북시나노 공략은 넓은 농토를 보유한 시나노 공략의 마지막 단계이자 지속적으로 충돌하던 무라카미 세력을 일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반해 우에스기 가문에게 북시나노는 자신들의 영지인 에치고로 들어오는 관문에 해당되었기에 다케다의 시나노 지배는 완충지의 부재를 뜻했습니다. 때문에 우에스기 겐신은 군소세력인 무라카미씨가 북시나노에 존재하면서 다케다씨로부터의 직접적 위협을 막아주길 바랐던 것입니다. 이러한 북시나노의 지정학적, 정치적 조건에 의해 발생한 것이 가와나카지마 전투이지 교토 상락을 의지로 두고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다케다, 우에스기 양 측 모두 교토 상락이 가능한 규모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2. "오다 노부나가는 고작 2천명의 병사 중에서 500명을 다시 빼내어 산위에 요새를 만들게 하고는 나머지 병력을 어릴때 영지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비밀통로로 이동시켜 이마가와 진지의 코 앞까지 이동시켰다. 게다가 그 날은 비가 오고 있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유리한 상황에 비까지 오자 마음을 놓고는 그날 밤 자신의 진지에서 본대 5천명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 지적이 필요한 부분은 '산 위'라는 부분입니다. 이는 완전히 오류가 있는 부분입니다. 현지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 오케하자마 전투 당시 이미가와 요시모토가 진을 치고 있던 곳이 산 위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1차 사료인 신장공기에서도 "적,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4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오케하자마'산'에-"라고 서술이 되어 이습니다.
그리고 이 다음 서술도 중요합니다. "오케하자마산에서 인마(人馬)에게 휴식을 주고 있었다." 즉 파티나 연회를 나타내는 구절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밀통로'라는 것 또한 제가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특별한 루트를 이용해서 오케하자마산에 도달한 것도 아닙니다. 사료에 기록된대로 노부나가의 이동 루트를 추정하면 일직선으로 이동한 것이 확인됩니다. 하나를 첨언하자면 노부나가는 전투 당일 모든 것을 운에 맡겼다고 추측이 됩니다. 사료에는 '전투 전날 가신들을 불러모아 잡담만 하고 돌려보냈다.'는 기록과 당일 "소수의 병력이라고 하면서(핑계대면서) 다수의 적을 두려워하지마라. 승패의 운은 하늘에 달렸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가 온 것은 노부나가가 오케하자마 산에 도달했을 때 '폭우'가 쏟아집니다.
이를 종합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원정을 와서 지친 4만 5천(과장이라고 생각됩니다.)을 이끌고 오케하자마 산 위에 진을 친 뒤 병력에게 휴식을 주게 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 당시 빼앗긴 성채, 현실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천운에 맡기고 오케하자마로 이동합니다. 산 근처에 도착하자 갑자기 내린 폭우는 산 밑에서 대기하던 오다군을 완벽히 숨겨주었습니다. 날이 개이자(사료에는 "하늘이 갠 것을 보고"라는 구절이 존재합니다.) 오다군은 곧바로 산 위로 올라가 전투를 개시하였고, 그동안 시야가 제한되어 앞을 볼 수 없던 이마가와군은 큰 혼란에 빠집니다. 결국 요시모토는 오다군의 급습으로 혼란에 빠진 진 중에서 살해당합니다. 이것이 오케하자마 전투의 실상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날 밤 오케하자마 협곡에 진을 친 이마가와 요시모토."
=> 이 부분의 '협곡'이 잘못된 표현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요시모토가 협곡에 진을 쳤다면 노부나가가 이들을 내려다보게 되나, 실제로는 오히려 요시모토는 '산 위'에 진을 쳤기 때문에 적군인 오다군의 움직임을 위에서 감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보충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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