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할일 없어진 주말,
마냥 반갑지만은 않지만 찾아오는 봄의 온기를 맞아
이미 떠나간 계절의 철 지난 옷들을 꺼내 정리합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맞춰 입었던 빨간 니트,
밖에 나갈 때 꼭 챙기라 말하던 검정 목도리,
내 것 하나, 그대 것 하나
똑 닮은 걸로 나란히 흰 눈을 어깨 위로 쌓던 점퍼
그리고 그대가 마지막으로 선물해준 가디건은
아직은 밤바람이 차다는 핑계로 의자에 걸쳐둔 채
철 지난 옷들을
계절의 향처럼 배인 지난 추억들을
그대가 머무는 온도에
더 이상 어울릴 수 없는 마음을
단정히 개어 서랍장 깊숙이 넣어봅니다
더 넣을 곳 없이 빼곡히 쌓인 옷들을 보니
새삼 우리가 보낸 시간이 많고
두터웠구나 생각이 들지만
아마 이마저도 때를 놓친 마음이겠죠
아무리 정리를 잘해도
잘 닫히지 않는 장롱문을 보니
이유 없이 와르르 무너져 그대가 쏟아지는 날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대가 좋아하던 남방,
첫 여행 때 입었던 자켓
사계절을 두 바퀴나 같이 돈 덕분에
새로 맞이하는 계절에도 그대가 있더군요
겨울 다음, 봄
만남 다음, 이별
예견된 순서가 있다 해도
지난 계절을 기억하고 다시금 반겨주는
장롱에 담긴 무언의 순환처럼
언젠가 그대도 다시 돌고 돌아와
깊숙한 곳, 가지런히 갇혀있는 나를
그리움이 뿌옇게 쌓인 나를 툴툴 털고
오랜만 임에도 전혀 낯설지 않은
그대만의 온기로 꼬옥 안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대가 다시 나의 계절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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