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성(性)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즘은 좀 개방적으로 되었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성에 대해서 공공적으로 말하는 것은 좀 꺼려지는 분위기이죠?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과거로 갈수록 성에 개방적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겁니다
특히 원시문명으로 갈 수록 노동력을 중시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풍만한 여성의 몸은 풍요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죠.
빌렌도로프의 비너스 조각상처럼 가슴과 엉덩이가 과장되어 표현된 유물들이 출토되는 이유기도 하구요.
이런 경향은 원시 시대가 끝나고도 어느정도는 유지되어서 삼국시대까지도 유지되었습니다.
위에 보이는 유물은 국보 제 195호 '토우 장식 목 항아리' 입니다. 신라의 유물이구요.
자세히 보시면 오른쪽 부분에 성교하는 토우 장식이 보이시나요? 한명이 엎드려있고 뒤에 팔벌린 사람이 있는 장식입니다.
성교라는 행위 자체를 생산, 풍요의 상징으로 생각한 주술적인 물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신라인들은 성이라는 개념에 굉장히 개방적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신라 왕조의 두 왕, 지증왕과 선덕여왕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는데요.
지증왕은 신라 역사를 말할때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왕 중 하나입니다.
최초로 왕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신라라는 국호를 확정했으며, 우경을 퍼뜨려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등 여러 업적을 세운 왕이지만 사실 왕이라는 자리에 오르기엔 정통성이 떨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증왕은 왕족의 방계 일족이었거든요.
전대 왕인 소지 마립간이 낳은 자식은 왕위를 잇기엔 너무 어렸습니다.
때문에 지증왕이 64세라는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방계 혈통 출신이라는 본인의 콤플렉스, 그리고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지증왕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울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게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었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지증왕의 남성의 길이는 약 1자 5치였다고 합니다.
현대식으로 계산했을 시 약 45cm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크기를 자랑하는데요.
물론 현대식 해석이라 이것보다 실제로는 작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그곳이 너무 커서 신부감을 못구했다, 그래서 신부감을 찾다 찾다 7자 5치(현대식으로 약 180cm)의 여성을 신부로 맞았다는 언급을 보아하면 진짜 크긴 컸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지증왕은 이런 이야기를 내세워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비범한 인물이 아닌것을 표출하고 왕권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를 내비친게 아니냐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왜냐면 전세계를 둘러봐도 왕의 성기 길이에 대하여 서술한 기록은 몇 없거든요.
이러한 성적 요소를 내세워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는 선덕여왕의 설화에서도 드러납니다.
신라 최초의 여자 국왕인 선덕여왕, 주변에서 어떤 시선으로 선덕여왕을 바라봤을지 대충 짐작이 가실겁니다.
그래서 선덕여왕 역시 비범한 설화를 내세워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선덕여왕 즉위 5년 겨울, 왕궁 안 옥문지에서 하얀 두꺼비가 울어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한 겨울에 두꺼비가 울어댄다니 이 무슨 징조일까요? 신하들은 불길한 징조라며 수근거렸습니다.
그리고 선덕여왕은 2명의 장수를 불러 명합니다.
'서쪽 교외로 나가 여근곡이라는 곳을 찾아라. 그곳을 수색하면 반드시 적병들이 있을것이니 추적해서 섬멸하라'
그러자 선덕여왕의 말대로 정말 백제의 군사가 있었고 신라군들은 적병을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미션을 끝낸 장수들은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두꺼비가 우는것으로 적병이 여근곡에 있다는 걸 알아냈을까?
선덕여왕은 이렇게 답합니다.
'두꺼비가 성을 내고 있으니 이는 군사를 뜻하며, 하얀 두꺼비는 여성의 기운이 왕성한 여근곡을 의미한다.
남성이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어버리니 여근곡에 들어간 병사들은 힘을 잃고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남성이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어버린다.
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거 맞습니다.
선덕여왕은 야스의 원리를 이용하여 백제 군사들을 격퇴했습니다.
여성의 몸으로도 훌륭하게 군사를 지휘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으니 아무도 선덕여왕의 왕의 자격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죠.
이런 얘기가 전해진다는 것은 신라인들이 성에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 알 수 있겠죠?
오늘은 여러 사례를 통해 신라인의 성에 대한 생각을 알아봤습니다.
사실 더 여러 사례가 있지만 다음클린이 너무 무서워서 여기까지 하려고 합니다.
재밌게 봐주셨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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