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68] "단발한 여자는 후년(後年)에 대머리가 된다"
조선일보 입력 : 2011.10.12 03:12
1921년 기생 강향란이 처음 단발한 이래 단발 여성은 손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세상이 귀찮아 중이나 되겠다고' 단발했든(1924년 7월 21일자), 부부싸움 끝에 남편이 강제로 삭발을 시켰든(1923년 12월 13일자), 여성의 단발은 빠짐없이 기사로 소개됐다.
1925년 당대의 여류 명사이자 '주의자(主義者)'인 주세죽(朱世竹) 허정숙(許貞淑) 김조이(金祚伊) 3명이 한꺼번에 단발을 감행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종래 제도의 구속을 타파하고, 부자연한 인습을 개혁'한다는 이유에서다.(1925년 8월 22일자)
왼쪽부터 허정숙 , 주세죽 , 고명자
1928년 잡지 별건곤 7월 1일자가 실시한 '내가 단발랑(斷髮娘)과 결혼한다면'이란 설문 결과도 비슷했다. "동부인 산보는 다녀도 머리를 기를 동안은 나란히 다니지 말 일"
단발 여자는 아내로서도 부적격이었다.
"아직 조선 사람은 단발 녀자를 보면 이상하게도 서툴리 보기 때문에" 백화점원으론 뽑지 않을 정도로 부정적이었다.(1936년 2월 16일자)
특히 여성의 단발은 사회적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신여성 가운데 단발한 최초의 여성은 기생 출신으로 이후 사회주의자로 변신한 김향란이었다. 그 후 배우 이월화, 소설가이자 배우인 김명순 등이 그 뒤를 따랐다.
단발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지만 「미스코리아 단발하시오」 란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단발은 곧 여성해방으로 간주되었다.
단발은 당시 여성들에게는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 대한 도전이요 반항이었다. 즉, 단발은 여성해방의 표상이었다.
참고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