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아홉은 무저갱의 아명兒名이다
생과 사라는 쌍생아가
번갈아 광대 놀음을 하는 새벽녘
얼씨구 절씨구 타령을 잇는 통곡
목을 죄었다 풀었다 하는 그 울부짖음이 익다
망나니가 도끼질한 기억이 고개 든다
이상하지
나는 분명 육지에서 나고 자랐는데 아가미가 허리에 고인다
죽여 버린 천것이 돌아와 옆구리를 헤집는다
분명 뭍짐승답게 호흡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파도치는 우울에 휩쓸리는 것에 순응한다
있지, 우리 엄마는 죽음이란 단어에 하듯 소스라쳐서
나는 숨 쉬지 않는다는 말을
썩은 꿀타래처럼 늘려 말하는 법을 배웠다
꼭 베를 짜듯이 언어를 돌리고 돌려
낭만과 문학에 내 감정을 엮는다
숨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그래도 알아 줘
난 죽고 싶은 게 아니야
다만 죽을 것 같을 뿐이지
세상의 우울줄로 엮여 나를 매다는데
어찌할 도리가 있겠어?
툭 툭
기억해
여긴 벼랑이야
0822 / 벼랑

우울은 전염성이 짙다. 나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슬픔을 나눔은 우울의 증식을 뜻하는데 게서 사랑하는 사람의 죄책감을 양분 삼겠다는 것은 본인의 이기심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내고 상담사를 찾고 돈을 내고 정신의학과를 간다. 나는 형성된 라포에 기생하는 대신 차가운 진료실에서 좌절에 청구되는 대금의 값을 지불한다. 요즘은 어때요? 즉답한다. 가끔 죽고 싶어요. 이유를 묻는 대화가 오고 가면 처방전에는 혓바닥을 리본으로 묶을 수 있는 긴 이름의 비상약이 추가된다. 일주일 뒤. 가빠진 숨의 간격만큼이나 예약이 좁혀진다. 카드를 꽂는다. 핸드폰 화면 위 떠오르는 결제액을 보며 내 감정의 금액을 가늠한다. 나의 우울이 객관적인 자료로 환산되는 순간이다. 54,300원. 내가 사랑하는 엄마는 오만 사천 삼백 원의 한탄을 들을 여력이 없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기에 돈을 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기에 병원을 간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기에 이 글을 쓴다.
우울은 벽지 너머 스민 곰팡이를 닮아서 입을 밀봉하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굳이 그것을 읊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부정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 누구도 물은 바 없으나 법정 아닌 곳에서 선서를 한 것은 추악한 발악이다. 나의 우울을 두고 가지 않겠다는 울부짖음이다. 죽고 싶은가? 글쎄, 잘 모르겠다. 나는 가끔 그 문장을 완성하기도 힘이 들어서, 그저 모음을 길게 늘여 목을 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엄마에게 나로 남아 죽고 싶다. 곰팡이를 숨긴 하얀 벽지로 남아 죽고 싶다. 엄마의 완벽한 막내딸로서 남아 죽고 싶다. 아, 엄마, 이 구차하고 처절하기 짝이 없는 애정은 마치 동충하초처럼 내 뇌에 이를 박고 움직이는 듯해. 우스우리만치도.
내가 우울을 기침할 때 다가오지 마세요.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당부는 필사적이고 절망적이다. 도망치세요.
0821 / 우울을 기침할 때 다가오지 마세요

먼지로 뒤덮인 기억 언저리에마저 죽음을 욕망하는 잔흔은 선연하다. 다만 그건 어린아이의 궁금증으로 얼버무릴 수 있는 형태로 잔재할 뿐이다. 죽음이 본격적으로 낫을 든 것은 중학생 때다. 죽고 싶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 문장을 떠올렸을 때 내재한 근본은 없었다. 나는 그게 의문이었다. 나를 죽고 싶게 한 것은 나의 우울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살린 것도 나의 우울감이었다. 형태 없이 부유하는 감정에게 말을 걸며 언어의 색과 농도를 쟀다. 나는 다행히도 살아 이 글을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억울했다. 저것의 고향이 명왕성이든 내 침대 밑이든 알아야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중학교 때는 그게 고등학교 진학인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는 그게 대학교 진학인 줄 알았다. 스물의 나는 명문대에 붙었고, 여전히 죽고 싶었다. 기쁘지 않았냐고? 기뻤다. 다만 그건 지구보다 달의 중력에 가까워서 나를 붙잡아 둘 만큼 무겁지 못했다. 나는 죽고 싶었다. 어느 날, 죽음의 구조가 이상하게 궁금해졌다. 닥치는 대로 우울의 고향에 수배지를 붙였다. 충동적으로 정신의학과를 예약한 날이었다.
우울의 고향은 시적이고 낭만적인 메타포가 아니다. 그것은 차갑고 경직된 뇌파 측정기와 오른손바닥 아래를 파고든 연필 자국을 남긴 심리 검사로부터 왔다. 애석하게도 나의 우울은 명왕성 출신이 아니기에 나는 그를 위한 티켓을 살 수 없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나와 영원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할 수 없다. 반듯한 진단명에 적힌 고향명은 선천성이라는 세 글자를 쓴다. 나는 어둑서니가 아닌 인간일진대 왜 불안과 고통과 장황한 우울을 품고 자라게 태어났을까. 그래도 나는 이제 그다지 죽고 싶지 않다. 약 봉투를 뜯으며 생각한다. 그거면 되지 않았나...
0125 / 죽음은 지구보다 달의 중력을 더 닮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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