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부산외쿡인ll조회 5680l 6
이 글은 1년 전 (2023/3/24) 게시물이에요

씨네21 김소희 영화평론가


(중략)

그러나 오싹한 이유-
왜 여성의 무능에 대해서는 그렇게 잔인한가

에 대한 경탄은 여기까지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그 훈훈한 이야기의 한켠으로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듯한 찬 기운도 아울러 흐르는 것을 느낀다.

우선 익숙한 이야기부터. 리타 해리라는 여성 변호사가 맡고 있는 진부한 역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리타는 미셸 파이퍼의 이미지에 기댄 전형적인 스타 캐스팅인데, 조지오 알마니 옷을 떨쳐 입은 일중독자로서 한번도 좌절해본 적이 없는 출세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아들의 사랑도 제대로 받을 줄 모르는 주제에 잘난 척하고 성질이 급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체면을 중시 여기며 권력 지향적이다. 그는 샘 앞에 눈물로 참회하고 아들과 함께 운동회에 나타남으로써 드디어 구원받는다.

지능이 부족한 샘이 스타벅스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딸을 키우려 노력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영화가, 왜 육아의 어려움 속에서 일하는 여성의 ‘무능’에 대해서는 이토록 잔인할까. 교외에 사는 백인 중산층 가정에 대한 미국인들의 향수는 아직도 끈질기다. 여성이 하얀 레이스가 달린 에이프런을 두르고 남편과 아이를 시중드는 소시민 가정의 중요성을 옹호하기 위해, 일하는 여성을 무언가 결핍된 존재로 가정한 채 공격하는 것은 미국의 대중영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안에서도 쉼없이 저질러지는 상투적인 편견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감행하는 무서운 이데올로기 공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샘과 그의 친구들, 마지막에는 유능한 리타 해리스 변호사까지 가세하여 공격하는 대상이 무엇인가 바로 사회보장제도다.

아동보호소나 법원이 정하는 양부모 제도 같은 것들은 정상적인 가족 구성이 불가능한 수많은 무너진 가정들을 사회적으로 보완하려는 오랜 노력의 산물이다. 역사적으로 좌파의 입지가 극히 적은 미국사회에서 이것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인 정책가들과 소수의 인권운동가들이 험난한 정치적 역정을 통해서 달성한 것이고, 이는 미국이 그토록 자랑해 마지않는 인권 국가로서의 지표다.

그런데 에서 샘의 가족을 고난에 빠뜨리는 어리석고 냉혹한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면, 이러한 제도에 대해 신념을 가진 백인 활동가이거나 경찰서와 아동양육시설에서 일하는 흑인 여성이다. 미국 내에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가장 강력하게 요청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그룹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샘이 가족을 유지하는 것과 사회가 제도로서 지원하는 것은 왜 공존할 수 없는가. 문제가 있다면 제도의 융통성을 촉구해야지 왜 그런 신념 자체를 공격하는가. 영화는 심지어 그 활동가를 대머리라고 인신공격하고, 관객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 샘과 루시를 강제로 떼어놓는 실루엣 속에 그들을 배치함으로써 적대감마저 부추긴다.

미국은 지금 사회 전반에 걸쳐 진보와 보수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제도적인 측면을 예로 들자면, 소수 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를 적극적인 형태로 입법화한 차별철폐조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백인 중산층이 역차별이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이같은 공세를 법률로 합리화하는 조치(California 209)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럴 때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가 가하는 문화적 교육은 다른 무엇보다 위력적인 정치 공세이자 이데올로기 공세가 된다. 이것이 바로 디즈니 비판자들이 줄기차게 지적하며 염려하는 지점이다(은 브에나비스타라는 디즈니 계열사가 배급하는 영화다).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흘러가고 보니 가슴 한구석에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우리의 샘과 루시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자책 섞인 질문이다.


'좋은' 영화 아이 엠 샘이 오싹한 이유 | 인스티즈

추천  6

이런 글은 어떠세요?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이슈·소식 "욱일기, 공공장소 제한 말아야"…국힘 서울시의원 발의에 19명 찬성367 뇌잘린05.09 13:3056501
팁·추천 어떤 사무실을 선택하실 건가요?216 사정있는남자05.09 13:3756441 3
이슈·소식 일본이 네이버 라인을 뺏으려는 이유324 톨봄이이05.09 11:2967820
이슈·소식尹대통령 "저출생, 국가비상사태…박정희 경제기획원 모델로 대응할 것”173 밍싱밍05.09 11:4560749 5
이슈·소식 [단독] 교도소에서 검정고시 만점자 나왔다…"교육을 계기로 과거 반성”179 망고씨05.09 14:4369285 1
사람들이 제일 많이 틀리는 맞춤법중 하나: 어떡해 (feat. 어떻게 어떡해 어떡게..2 NUEST-W 1:15 278 0
[네이트판] 출산휴가/육아휴직 하면 이기적인건가요?? 한 편의 너 1:13 269 0
길가다가 동창만난 안재현 배진영(a.k.a발 1:09 692 0
천사같던 윗집 할아버지 잘 계시나요?1 중 천러 1:08 1031 2
??? : 오빠 좋아한다고 말해 참섭 1:07 509 0
이거뭐임..? 오랜만에 본가 왔는데 당황스럽네...1 하품하는햄스 1:06 1530 0
스타쉽 소속 아티스트 신변 보호 관련 안내 +ordin 1:06 299 0
태국 코코넛풀빵 카놈크록 하품하는햄스 0:53 2100 0
주말에 또 비야? 11~12일 전국에 비…다음 주는 '맑음' 옹뇸뇸뇸 0:47 2503 0
인간극장에 나온 짱귀탱 멍뭉이 복실이 편의점 붕어 0:47 1288 0
뚱뚱한 고양이의 다이어트 프로젝트1 311354_return 0:45 1985 0
이번 네이버 라인 강탈 주역 = 이토 히로부미 고손자2 톨봄이이 0:27 1754 3
CBS뉴스-단월드, 사이비 종교 아니라더니… "이승헌을 영혼의 아버지로 숭배”7 켄씨 0:17 5094 4
차은우 콘서트에 가면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jpg remind me 0:17 2170 1
이젠 없어선 안될 대한민국 고속도로 2가지10 장미장미 0:12 5742 1
요즘 떡상중인 떡..15 짱진스 0:12 9448 12
세계 최고의 전망 좋은 레스토랑 35곳 308679_return 0:10 1349 0
의도치 않게 닉값 해버린 아이돌.jpg 라임항 0:08 1395 0
전염되는 웃음 .mp4 류준열 강다니 0:07 219 0
은근 이쁜데 설명할 방법이 없는 안유진 근황.jpg15 션국이네 메르 0:07 8784 1
전체 인기글 l 안내
5/10 1:22 ~ 5/10 1:24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