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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시작하지ll조회 3919l 2
이 글은 5개월 전 (2023/11/15) 게시물이에요

쪽팔려서 자개에는 못쓰고 야마에 싸놓겠다..

7년 전 나는 갑자기 임신을 했다. 예기치 못한 임신이라니 참 웃기다. 콘돔에 문제가 있었는데 에이 이정도로 별일 나겠어? 했는데 별일이 났다. 암튼 그렇게 나도 남들 비웃고 다녔었다. 혼전임신 했던 사람들을 수없이 마음으로 비웃었던 나. 그런 내가 이렇게 속도위반이라니. 중절을 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임신 자체가 너무나도 치욕스러워서 멘탈이 터져 있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소문이 나버렸다. 아무도 몰래 중절하려던 나와 내 남친 계획은 물거품. 일단 수술하고 약혼식 먼저 한 다음 결혼시키자던 양가 부모님들 계획도 물거품.
소문은 제발 제발 비밀 지켜달라고 유일하게 말했던 고향친구들 단톡방에서 터져나가 버렸다. 엄마가 마트만 가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 임신 안부를 물었었으니까 말 다 했다. 연락 끊겼던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야 너 진짜 임신했어?' 하고 선톡 와 있었다. 정말게 워낙 좁은 지방. 제대로 됐다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죽음을 결심했다. 카톡 하나 전화 한 통마다 심장이 내려앉아서 모든 연락 다 씹고 잠수타기에 돌입했다. 남친한테만 제발 나 찾지 말아달라고 하고는 폰을 껐다.
당시 내 사고(22살이었음을 감안해주셈): '내가 임신했다는게 알려진거면 내가 결혼도 안 하고 남친이랑 섹스 했다는 게 알려졌다는거네 이건 정말 불명예스럽다. 죽는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하찮고 어이없는 이유지만, 시골 목사딸인 나로서는 지역에서 거의 낙인이 찍히는 것이었기에 내 인생이 이미 끝난듯한 좌절을 느꼈다. 나뿐인가? 부모님 얼굴에 똥칠, 우리 교회 내동생 다 나때문에 어떡하나? 됐다. 임신해서 자살했다는 소문 도는것도 쪽팔려서 사고사로 위장될만한 자살방법만 궁리했다. 대신 피 안 나고 너무 안 아픈 방법으로 고르고 골랐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죽음에 골몰해있었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그러다가 실족사로 하는게 제일 낫겠다 싶었다. 강에서 죽자. 근데 우리집 근처면 너무 엄마아빠가 슬프니까 다른 지역에 가서 죽자.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죽으면 슬프지 지역이 뭔 상관이야 같음. 이렇게 우울한 사람은 정상적 사고가 안 된다.)
그래서 경춘선 타고 강이 보이는 어떤 역에서 내렸다. 막차여서 어떤 남자랑 나만 내렸다. 나 죽으면 쟤가 마지막 목격자네 했던게 생각난다. 죽음이 코 앞이었다. 뚝방에서 술 먹은 것처럼 꾸며놓고 강으로 걸어들어갔다. 떨어질 다리도 없어서 걸어서 들어갔다. 정말 자살하기엔 악조건이었지만 열심히 자살을 꾀했다. 11월 밤 1시였다. 슬렁 슬렁 정말 차가웠다. 감정잡고 강에 들어갔는데 눈물도 안 나고 와 이제 드디어 죽는구나 싶었다. 광기 그 자체였다. 슬펐던 건 강이 너무 얕았다. 정확하게 그 당시 기분으론 슬픈게 아니었고너무 아쉬웠다. 이 자살 실패다 아 어떻게 죽지. 이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애써 몸 구겨서 잠수해보았는데 몸의 생존본능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자꾸 살려고 나오는 몸, 이 달가닥 달가닥 덜덜 떨며 하는 수 없이 강둑에 누웠다. 이제 동사로 간다. 젖은 옷 째로 이끼 그득한 돌위에 누워서 하늘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죽으려고해도 동사가 쉽나. 덜덜 떨면서 얼마쯤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국도길 따라서 그냥 걸었다. 죽음만 생각하는 사람은 이렇게 하고 바보같다.

지리산 자살등반글 보고 생각난 내 경험담 | 인스티즈

(지금 사진 찾았는데 딱봐도 얕다 그땐 다행히 밤이라 얕은지도 몰랐고, 다른 강 보이는 역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는데 여긴 사람이 없어서 여길 택했다. 돌아보니 다행스럽게 실패했음 )

지리산 자살등반글 보고 생각난 내 경험담 | 인스티즈

이 시커먼 국도길 걸으면서 아 개춥다 이제 이거말고 어떻게 죽지 다르게 죽어야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냥 남친한테 전화해서 아무렇지 않게 데리라 와라 할려고 했는데 배터리가 없었다. 너무 너무 춥고 사람도 없고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새벽 2시인가. 딱 지나가는 살인마 하나가 나타나서 나 좀 죽여줬으면. 보험금이라도 타게. 그러다가 무슨 스키인가 스포츠 용품점에 반갑게 불이 켜져 있어서 냅다 올라갔다. 저기요 죄송한데 저 전화 한 통만 쓰게 해주세요..정말 멀쩡한 척 미소지으면서 물었다.
아줌마 아저씨 직원 두 분이 즐겁게 뭘 먹으면서 예능인지 티비인지를 보고 있었다가 나를 보고 다 사색이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긴머리 다 젖고 코트 등판은 이끼에 흙투성이에 운동화에서 걸을때마다 물 첨벙 거렸으니 물귀신의 환생이 따로없음. 기절 안 한게 다행) 무슨 나쁜일 당했냐 신고해줄까요 왜그랬어요 난로쬐어라 이거 덮어라 밥 줄까요 두 분이서 난리 법석이었는데 난 짜증났다.아 전화나 빌려주지 왜 개오바인가 생각해서 아니요ㅜ아 전화만 빌려주세요 아니요 아니요 거렸다. 전화한 남친은 정말 화를 냈다. 춘천으로 택시타고 오면 돈 내준대서 알겠다고 했다. 이새낀 왜 춘천에 있지? 생각 하면서 전화빌려주셔서 감사하다 하고 콜택시만 부르겠다고 했다. 콜택시를 부르고 나서도 직원 두분은 둘이 먹던 치킨을 권하질 않나 재밌는거 뭐 보고싶냐며 리모컨을 줬는데 개 불편했다. 빨리 춘천가서 다시 잘 죽어봐야겠단 마음 뿐이었다. 택시가 와서 또 최대한 멀쩡하게 감사했다고 저땜에 놀라셨죵~ 하면서 인사드렸는데 오만원을 주셨다. 택시비 필요없다는데도 창문사이로 던저넣으셨다. (지금 생각나면 사무치게 감사해서 눈물나는데 쪽팔려서 다시 인사드리러 못 감)
택시 타고 남친을 만났다. 알고보니 나를 실종신고 하고 경찰불러서 헤어졌던 동네 다 뒤지고 아주 을 하다가 경춘선 막차를 탄 동선따라 춘천을 뒤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 엄마아빠한테 얘 죽으러 간 것 같은데 연락이 안 된다고 죄송하다며 연락을 해뒀다는 것이었다. 아니 난 사고사 할건데 얘랑 있으면 계획이 죽도 밥도 안 된다는게 너무 빡쳤었다. 아 엄마아빠한테 말하면 어떡하냐고 정말 화를 냈다. 으씨 얘랑 붙어있다가 죽으면 흔적이 너무 남는다. 얘를 잘 따돌리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좀 씻겠다고 모텔로 들어갔다. 씻고 일단 배고파서 컵라면 먹었다. 남친은 내가 씻고 먹으니까 마음을 놓는듯 했지만 지 까짓게 뭘 알어 참내 난 씻고 먹고나서 다시 죽을건데 속으로 비웃었다. 남친은 엄마아빠 걱정 많이 하실테니까 빨리 전화드리자고 했다. 분노와 자살실패 좌절감으로 끓던 속이 갑자기 확 식었다.
아 일단 나 잘 있고 얘가 오해한거라고 말해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남친이 무작정 전화를 걸어서 나한테 폰을 바꿔주었다. 아씨 말 할거리 정리도 안 했는데 갑자기 왜 걸어 야리면서 폰을 귀에 댔다. 엄마 아빠가 둘이서 마이크 하나에 대고 앞다퉈 @@야 @@야! 하며 내 이름을 번갈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알던 목소리들이 아니었다. 바람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너무 울고 소리치느라 목소리가 없어져있었다. 그 쉬어서 쇠 긁는 목소리들에 하루종일 죽음 편에 이미 건너가있던 내가 삶과 사랑의 편으로 순식간에 끌려와 무너져내렸다. 바람소리로 어딨었어 엄마아빠는 아무렇지도 않단다 어딨어 어딨어 하던 그 목소리.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집에서 방문 잠그고 폰여시 하고있으면 엄마가 짜증나게 잠긴 방문 주방칼로 막 따고 들어왔던 이유가 내가 잠긴 방문안에서 죽어있을까봐 그랬던 거구나. 싫다고 싫다잖아 짜증냈어도 아빠가 계속 뭐 먹고싶냐 치킨먹을거냐 물으러 방에 들어왔던것도 나 죽지 말라고 그랬던 거구나. 그걸 바보같이 그 목소리를 듣고나서야 알아챘다. 죽지말고 잘 버티라는 여시들 댓글도 다 이런거였구나. 아무리 봐도 이해되지 않던 그런 것들. 바보같이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때의 나같은 여시들이 지금 있다면 한 명이라도 지나가다가 발길을 잠시만 멈춰줬으면 좋겠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겠지만 그ㄹ래도 혹시나 해서 쓴다. 난 지금 정말 잘 살지만 앞으로 미래에 잘 살게 되는게, 자살을 취소할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걸 정말 알아. 근데 잠깐 부디 잠시만 그 생각을 멈춰주길 빌면서 글을 쓴다. 이 글은 첫 줄부터 여시에게 바람소리로 쓴 글이야.

+잊을만하면 드문드문 와서 댓글 남겨주는 여시들
덕분에 나도 정말 큰 위로를 받아..
모두들 그 힘든 삶을 끌고 오늘까지 와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눈물겹게 행복하지 않더라도 별 생각없이 편안히 내일을 맞는 밤이 되길. 늘 같은 제자리 걸음에 또 언제는 도리어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았어도 그런 날이 꼼꼼히 쌓여 뒤돌아보면 딴딴한 박음질처럼 이만큼 앞으로 나와있네. 고된 하루씩 꿰메어가는 바느질
내일 딱 한 땀만 더 같이 꼬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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