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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경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던 홍진경 글 | 인스티즈



예전 싸이미니홈피가 흥하던 시절
홍진경이 썼던 글이 인상 깊었거든
담담한 문체에 공감가고 따뜻해지는 글들이 참 좋았는데

요즘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홍진경이 활약하고
있는걸 보니 그때 읽었던 글들이 생각 났어

예전에 쩌리에 유아인이 썼던 글도 올라온적도 있고
예능에서 밝고 어리버리한 모습이 있었는데
또 다른 면모가 있는것 같아서 글 올려...

사실 이 글들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서
여시들하고 읽고 싶어서 찾아봤어
네이버에 쳐 보니까 홈피는 없던데 글들은 남아 있더라고

홍진경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던 홍진경 글 | 인스티즈


1) 내가 시집갈 날을 받아놓고
얼마 안 있어
어느 날엔가 나는 괜시리 서글픈 마음이 들어
지난 나의 사람들을 찾아보려 했을 때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믿을 수 없이 텅 비어진 사진첩을 마주해야 했다.
김서방이 보면 불쾌해할까 다 버렸다는
어머니를 그대로 서서 바라보다가
비에 젖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뒤지고 사라진 너의 얼굴을 찾아
울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었다고
마음대로 이래도 될 거라는 내 어머니의 당당함도
나의 얼음같은 분노에 숨 죽였다.
그렇게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상황이 그러하니 살다가 문득이라도 너와 나의 기억
하나 떠오를 때면
나는 사진도 한 장 없는 딱한 것이니
기어이 그 하나 가는 기억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사진 한 번 꺼내어 보고 웃고 말 일을
이렇게 하루가 다 가도록 우울히
만들었다.


2)벌써 6월이네요.
일년의 절반을 잘들 보내고 계신가요.
올해도 뭐그리 달라진거는 없지요.
특별히 큰 혜성이 지구와 부딪히는 일도

주변사람이 복권에 당첨되는 일도
없었지요.

예전처럼 저녁 아홉시에는 뉴스를 하고
동네 개들은 멸종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없는 세상입니다.

십년전에는 오늘이 마치 대단한 미래사회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때는, 십년이나 지난 오늘에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물냉면을 좋아하구 늦게자는 습관도 그대로예요.

그렇지만 달라진것도 분명히 있지요.

그렇게도 친하던 몇몇사람들과 소원해졌고 내 살갖과 표정도 조금은 나이를 먹었네요.

그래요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예요. 그때와는 조금은 같아도 또
조금은 다른 나예요.



3)두부와 콩나물을 사고 부츠도 한켤레 사고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고
무한도전을 봅니다.

또 어떤날엔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가라오케에도 갑니다.
빅뱅의 거짓말을 부르려다 실패하고 결국 사랑은 창밖에 빗물같아요를 부릅니다.

오늘은 오다기리조의 도쿄타워를 보고 고등어 자반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와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저녁밥을 먹습니다.

자반은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두고 왠지 귀찮아 어제 먹다만 갈치를 다시 데워먹고 침대에 눕습니다.

독한술을 한 두잔하고 신문도 좀 보다가 잠에 듭니다.

저는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뭐 늘 그렇죠.
그러다가도 잘 지내다가도 당신이 그리워 또 참을수가 없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가요 당신이 계신곳. 그곳에도 바람이 부나요. 그곳에도 달이 뜨나요.

날아다니는 천사를 혹시 보았나요. 그렇게 그리워하던 어머니도 만났나요.

당신이 없는 저는 그래도 그런대로 씩씩하려고 노력해요.
저도 이제 어른이고 다 컸으니까요.

아버지. 그래도 가끔은 아이처럼 궁금해요.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계신지.
어쩔때는 그런게 막 궁금해서 하늘을 보며 아버지의 얼굴을 찾아 봅니다.
그곳에서는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부른가요.
꽃밭도 과일나무도 시냇가도 있나요.
우리가 보이나요.
엄마하고 나하고 경한이가. 아버지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우리들이
보이나요.


4)하얀 쌀밥에 가재미얹어 한술뜨고 보니 낮부터 잠이 온다.
이 잠을 몇번 더 자야지만 나는 노인이 되는걸까.
나는 잠이들며 생각한다.

다시 눈을뜨면 다 키워논 새끼들이랑 손주들도 있었으면 좋겠다.
수고스러운 젊음일랑 끝이나고 정갈하게 늙는일만 남았으면 좋겠다.

그날의 계절은 겨울이였으면 좋겠다.
하얀눈이 펑펑 내려 온통을 가리우면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새벽 미사에 갈 것이다.

젊은날 뛰어다니던 그 성당 문턱을 지나 여느날과 같은 용서를 빌고
늙은 아침을 향해 걸어 나올 때 그날의 계절은 마침 여름이였으면 좋겠다.

청명한 푸르름에 서러운 세월을 숨기우고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바삭한 발걸음을 뗄 것이다.



5)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성의없는 시대는

도무지 수고할 필요가 없는

이상한 시간속에 정체되어 있는 듯 하다




배고픈 낭만 시인

땀 흘리는 거장

고집스러운 장인은 어디에 있는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뭐든 쉽게 알아버리고

가지고

편안하고

당연하고

이렇게도 쉽다




우리는 모나리자를 원판 뺨치게 칼라복사 하고

사카모토의 RAIN도 공짜로 다운받고

몇시간이면 유럽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로빈슨크루소가 표류되었던 고독한 섬

야자나무 아래에서 살을 태운다




얻기 위해서

만나기 위해서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

빨간 우체통 앞에 서야했던 시절은

이제 가고 없다




에집트로 가는 배삯을 마련하기 위해

일년이고 이년이고

유리그릇을 팔아본 적 없다




우리의 사랑은

더이상 위대한 개츠비 같지도 않다


6)정신에게

취향과 감흥이 다른 여러사람 알면 뭐해.
그것은 자랑거리도 못되고 그저 불려다녀야만하니 몸만 피곤한것.
나는 성격이 좀 모가나도 삐짝해도 너의 파리한 손끝과 예민한 핏대에
순종하여 함께있는 시간이 달다.
그리하여 이제껏 본적없는 내가 된다.
이런것은 참 좋은것.
뭐라해도 달콤한 것.
네가 참 못됐어도 내가 취향과 감흥이 다른 여러 착한 사람을 알면 무엇해.
그것은 역시 자랑거리도 못되고 많은 이들 가운데에 외롭기만 그지 없다.





홍진경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던 홍진경 글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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