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20년지기 친구랑 남편의 육촌 누나가 10년차 부부고 원래도 셋이서 자주 만났는데 남편이 결혼하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저까지 껴서 부부동반 모임으로 이어졌어요.
육촌 누나는 남편이랑 11살 차이가 나는데 지난 주말에 만났을 때 얘기하다 보니까 임신 12주라고 하시더라구요.
언젠가 한 번 나이 때문에 임신이 잘 안 되는 것 같다는 말을 하셨던 적이 있어서 정말 제 일처럼 기뻐가지고 축하 드리고 그날 저녁도 저희 부부가 샀어요.
근데 평소에도 남편이 버릇처럼 언니한테 나이 들었다고 놀리는데 기분 나빠도 동생이니까 봐주는 느낌으로 적당히 받아주시거든요
그 날 임신 소식을 듣고도 언니가 관절이 쑤신다거나 아니면 체력이 달린다는 얘기를 하거나 배가 아프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남편이 원래 하던 것처럼 "나이 들어서 그래"라며 놀리더라구요.
언니 성격이 워낙 좋으셔서 그냥 웃으면서 야이씨 하고 마는데 옆에서 듣는 제가 다 피가 말랐어요ㅠㅠ
임신했을 때 보통 애기 크기 맞춰서 몸이 커지느라 관절도 쑤시고 배도 땡기고 아프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 날 모임 끝나고 남편이랑 대화를 했는데 대강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저 : 언니한테 나이 많다는 얘기 좀 안 하면 안 될까?
남편 : 내가 언제?
저 : (당황해서 말문 막힘)
남편 : 다 농담이지~ 누나도 기분 나쁘면 말했겠지~
저 : 기분이 나빠도 분위기 싸하게 만들기 싫어서 말 안 하시는 거일 수도 있잖아.. 아까 병원 가서 노산이라는 소리 들었다고 너무 걱정된다고 하신 거 기억 안 나? 안 그래도 본인이 제일 신경쓰일 텐데..
남편 : 나이 많은 사람한테 나이 많다고도 말 못해?
저 : 굳이 나이 얘기 꺼내서 긁어 부스럼 만들어야 하냐는 거지. 옆에서 듣는 내가 다 불편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
남편 :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 이해가 안 되네. 누나 성격 좋아서 이런 걸로 화 안 내.
저 : 임신 안 했을 땐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언니 속이 어떨지 모르는 거 아니야?
남편 : 그래, 누나 속이 어떨지는 누나만 아는 건데 그걸 왜 자기가 걱정해. 싫으면 싫다고 하겠지. 누나 바보 아니야.
저 : 바보라서가 아니라 기분 좋게 저녁 먹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화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너 말처럼 속이 어떨지는 본인만 아는 거지만 혹시라도 스트레스 받으실지도 모르니까 조심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남편 : 알았어. 이제 안 할게. 미안해.
저 : 나한테 미안할 건 없고, 그냥... 언니한테 그런 얘기 안 해도 우리 할 말 많으니까. 그치?
남편 : 맞아. 할 말 진짜 많지. 우리 그저께 ~했던 얘기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바껴서 일단 "나이 먹었다는 말 안 하겠다"로 결론이 난 줄 알았어요.
근데 한 일주일 후에 다시 모여서 저녁 먹는데 남편이 또 나이 많아서 그렇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왜 그래, 하지 마."라고 하면서 눈치를 줬는데 그 날 내내 계속 나이 많아서 그래라는 말을 했어요.
딱 봐도 남편 친구랑 육촌 누나가 그냥 참아주고 있는 게 보이는데 계속 그러니까 진짜 너무 조마조마하고 식은땀이 줄줄 났어요...
다행히(?) 별 일 없이 넘어가긴 했는데 너무 긴장한 채로 있어서 그랬는지 체해가지고 집 가는 10분 동안 멀미가 나서 계속 헛구역질이 났어요ㅠㅠ
남편이 운전하는데 제가 옆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왜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냐고 전혀 이해를 못하더라구요..
또 체하기 싫어서 같이 밥 먹자는 거 세 번 연속으로 거절하고 지금 한달 넘게 안 보는 중인데 넷이 있는 단톡방에서도 남편이 자꾸 나이 얘기를 해대서 꼴보기 싫어서 단톡방도 나왔어요..
언니가 그거 보고 걱정이 됐는지 전화해서 괜찮냐고 혹시 싸웠냐고 물어보길래 안 보는 톡방 정리하다가 실수로 나간 것 같다고 얼버무리고 대충 넘어갔어요.
어제는 남편한테 내가 마흔살 돼도 언니한테 하는 것처럼 나이 먹었다는 말 달고 살 거냐고 물으니까 그땐 자기도 마흔이니까 쉰살 된 누나한테 하지 저한테는 안 그럴 거래요.
그래서 만약에 내가 마흔이고 니가 서른이었으면 어땠을 것 같냐니까 너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는데 왜 걱정해?라고 하더라구요.
거기서 갑자기 대화가 안 통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 며칠째 남편이랑 얘기도 별로 안 하고 있어요..
연애 3년 결혼 3년 동안 이렇게 막막했던 적이 없는데..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ㅠㅠ
추가))
남편은 낯도 심하게 가리고 한국에 친구도 별로 없어서 그동안 이런 모임 할 기회가 없었어요..
왜 몰랐냐 하시는데 제가 아는 남편은 언제나 타인한테는 예의 바르고 깍듯하고 저한테는 자상한 사람이었거든요.
남편 말로는 친한 친구들한테는 막 한다 어쩐다 해도 막상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았구요.
남편이랑 남편 친구네는 원래 미국에 살았었는데 남편이 군대를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한국에 왔다가 저랑 만나고 결혼까지 한 거고
남편 친구네는 지난 12월까지도 미국에 있다가 애기 낳고 키우려면 한국이 낫겠다 싶어서 귀국한 거라 저랑은 안 지가 얼마 안 됐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 어색한 느낌이고 그래도 남편 친구고 가족이라 계속 봐야 할 테니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더 불편한 것도 있어요.
언니도 처음엔 별로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웃어넘겼는데 마지막으로 만났을 땐 좀 발끈하면서 그런 얘기 좀 그만 하라는 식으로 말했었구요.
남편이랑 얘기는 다시 해보겠지만 뭔가 답답한 느낌이 안 가셔서 누구한테라도 털어놓고 싶은데 친구한테 할 순 없으니까 판에라도 글 써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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