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보면 방구석에서 악플을 다는 안티들의 뼈를 때리는 말로 속시원하고 멋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왜 이걸로 릅신이 욕을 먹는걸까?
그것은 르브론이 이발언을 하기 약 1년전부터 쌓아놓은 업보와 그에 따른 반감이 터져버렸기 때문인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르브론의 스토리를 알아야한다
1. 차세대 농구황제의 등장
르브론 제임스의 프로 데뷔 이전의 이야기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생했지만 은사를 만나면서 농구를 시작하게 되고 친구와 함께 농구를 하기 위해 명문고 진학을 포기하고 무명고로 들어갔지만 그 팀을 전국 최강으로 만들었다" 진부한 만화에서나 봤을법한 스토리로 정리할 수 있다.
마이클 조던이라는 불세출의 스타를 배출했던 nba는 그 다음 스타를 원했다.
그런 상황에서 본인만의 스토리와 최고의 실력을 두루갖춘 르브론 제임스는 언론과 농구 유명인사들의 주목을 받았고 고등학교 경기가 미전역에 중계될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고등학교 신분으로 얻을수 있는 상과 인기를 모두 가졌던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2003년 드래프트에 참가했고 전체 1픽으로 고향팀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입단한다
한국과는 전혀 관련없던 소식이 kbs 9시 뉴스에도 나올정도였으니 얼마나 화제였던지는 짐작이 갈것이다
- 2003년 데뷔전에서 고졸 신인 역대 최다 득점인 25득점을 하였다
- 데뷔 시즌에 오스카 로버트슨, 마이클 조던에 이어 3번째로 20득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 최연소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현재 마켈 펄츠)
- 2번째 시즌, 20살때 56득점을 기록했다
- 20세 시즌에 All-nba 세컨팀에 선정된다
- 21세 시즌에 올스타 MVP에 선정된다
- 생애 첫 플레이오프에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 2007년 디트로이트와의 컨퍼런스 결승 5차전에서 팀의 마지막 30득점 중 29점을 혼자 넣었다. 이는 디트로이트 침공이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 클리블랜드의 첫 파이널 진출을 견인한다
- 프랜차이즈 신기록 (66승 16패)와 함께 정규시즌 mvp를 따낸다
- 뉴욕 닉스의 홈구장이자 (타구단)스타 탄생의 장인 매디슨스퀘어가든(MSG)에서 52득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기록한다. 조던에 이어 두번째로 MSG에서 50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된다
대학도 진학하지 않은 고졸 신인 애송이가 고향팀에서 리그 최고 슈퍼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봐왔던 클리블랜드의 팬들와 nba의 팬들은 르브론 제임스를 사랑했다.
결국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클리블랜드라는 스몰마켓에선 분명히 한계가 있었기에 언젠가는 우승을 차지할거라는 기대와 함께 그것 또한 이해했다.
일명 '릅탄'이라 불리우는 승부처에서의 우유부단함 등으로 그 당시에도 안티는 존재했지만 그것은 슈퍼스타의 세금같은 것으로 nba에서 가장 사랑받던 선수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2010년 르브론은 비제한적 자유계약 선수가 된다.
3. 디시전쇼
커리어내내 르브론은 시카고의 망령을 쫓았다.
본인은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극성인 언론과 팬들은 언제나 조던과 그를 비교했고 결국 우승을 하지못한 그는 초조했음이 분명하다.
앞서 밝혔듯 클리블랜드는 시카고, 뉴욕, LA와 같은 대도시들과의 경쟁에선 이길수 없었고 이는 르브론의 조력자를 구하기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다.
클리블랜드 또한 샤킬 오닐, 래리 휴즈, 앤트완 재미슨 등을 영입했지만 전성기가 지났거나 플레이오프라는 큰 무대에서 활약할 기량을 가지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우승을 위해 분투하면서 어쩌면 지쳤을 그에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것이었다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이자 누구보다도 우승을 갈망하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뉴저지 네츠, 뉴욕 닉스, 시카고 불스, LA 클리퍼스, 마이 히트가 클리블랜드에서 르브론과 프레젠테이션을 가지기로 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시카고 불스를 갈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는데 르브론을 데려올 캡스페이스가 충분했고 마이클 조던이라는 존재감, 조아킴 노아, 데릭 로즈 등의 우승권의 팀 전력, 불스의 팬으로 유명한 오바마의 지지 등이 그 이유였다. (사족: 오바마는 퇴임 당시 불스의 구단주로 갈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을 정도로 유명한 불스의 팬이다)
그리고 며칠 후 크리스 보쉬라는 스타 선수가 마이 히트로 향하면서 마이는 르브론 쟁탈전에서 한발 뺄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마이는 르브론 영입설이 줄기는 커녕 되려 향후 행선지로 유력하게 떠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전설로 남은 The Decision.
"This fall, man, this is very tough, this fall, I'm going to take my talent to South Beach and join the Miami Heat."
"올 가을에는...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올 가을에는 마이 히트로 이적해 제 재능을 사우스 비치로 가져갑니다"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인 2003년 드래프트에서도 최고의 재능인 드웨인 웨이드와 크리스 보쉬에 이어 르브론 제임스까지 합류한 마이 히트는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팀이 되었으며 동시에 최악의 빌런이 됐다.
이미 2008년 올림픽 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췄고 르브론과 웨이드는 nba에서 친하기로 유명한 BANANA BOAT BROTHERS의 일원이기에 사전 담합의혹이 제기되었다.
모두 맥스 계약이 당연시 됐지만 애매한 금액만 받는 페이컷을 했고 이를 통해 벤치멤버를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르브론 제임스는 이 디시전 쇼를 기점으로 안티가 폭증하는데 그들이 비판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담합이라는 것으로 리그의 밸런스를 깼으며 비교대상이었던 조던과는 다르게 강팀으로 들어가 편하게 우승을 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는것과 더 디시전으로 클리블랜드의 팬들에게 씻을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것이다.
이 정도면 어떤 분위기였는지 이해가 될것이다.
팬들에게 비수를 꽂았던 그는 마이 히트 입단식에서 또다시 입방정을 떠는데...
"Not 1, not 2, not 3, not 4, not 5, not 6, not 7..."
8핏을 하겠다는 오만한 그의 발언은 안티들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4. 노비츠키의 정의구현
초반에 호흡이 맞지않으면서 불화설 등이 터졌지만 결국 시즌 후반에 들어서 승수를 차곡차곡 쌓으면서 플레이오프에 도착한다.
그동안 그의 앞길을 막던 보스턴 셀틱스를 무너뜨리는 등 생애 두번째 파이널에 도착한다
상대는 유럽 최고 스타인 디르크 노비츠키가 버티는 댈러스 매버릭스였다.
당시 댈러스는 강팀으로 평가받았지만 우승하기엔 모자란 팀으로 평가받았는데 포틀랜드 블레이져스, 디펜딩 챔피언인 LA 레이커스를 연달아 꺾고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까지 제압하면서 파이널에 도착했다
당시 댈러스는 2006년에서 웨이드의 마이 히트에게 패하면서 파이널 우승에 실패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이에 대한 복수를 꿈꿨지만 히트의 빅3를 넘기는 힘들거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전에 말했듯 히트는 리그 최고의 빌런이었기에 마이를 제외한 미 전역 대부분에선 댈러스를 응원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는데....
대충 이런 분위기였다
손가락 부상에 시달리고, 독감에 걸리는 등 노비츠키는 시리즈 내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했지만 투혼을 발휘하며 마이를 꺾고 만장일치 파이널 mvp와 함께 우승을 차지한다.
시리즈 도중 독감에 걸린 노비츠키를 조롱하는 일명 'Mocking Dirk'
이 사건으로 마이에 대한 여론은 바닥을 뚫어버린다
'The Decision', 'Not 1, not 2...', 'Mocking Dirk' 으로 이어지는 3연벙은 1년도 채 되지않은 시간동안 벌어졌고 르브론 제임스는 NBA 역사상, 아니 어쩌면 스포츠 역사상 가장 빠르게 안티를 모은 선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 였고 이에 분노한 르브론 제임스는 파이널 패배 이후 인터뷰를 하는데....
"나의 실패를 고대하던 놈들은 그래봤자 내일 일어나면 이것과 상관없이 뼈빠지게 일하고 현실문제에 치여 살겠지만, 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그들은 잠시동안 이것으로 위안을 삼겠지만, 히트는 그들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어느순간 리얼월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팬들이고 안티고 르브론 제임스를 비판한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고 그의 업보라는 것이 중론인데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일을 하는 스포츠 스타가 하기엔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다.
'니들이 욕해봤자 니들은 리얼월드에서 사는 평범한 인간이고 나는 슈퍼스타다'
라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발언이다.
르브론 제임스도 이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지워지지 않은 주홍글씨로 남았으며 3연벙에 이은 4연벙으로 nba에서 가장 안티가 많은 선수가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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