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사실 문턱을 넘지 않아도, 암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같은 질문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연구가 나왔다. 조직을 떼어내는 고통스러운 검사 대신, 몸 밖으로 나온 작은 단서만으로 암의 위험을 가려내는 기술이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산부인과 오영택 교수는 최근 ‘메틸화 액체 생검을 통한 부인종양학의 정밀 진단’을 주제로 한 연구를 발표하며, 부인암 진단의 흐름을 바꿀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연구는 지난달 28일 대만 산부인과학회(TAOG 2026) 공식 초청 강연에서 소개됐고, 연구의 완성도를 인정받아 감사장도 받았다.
이번 연구의 출발점은 ‘DNA 메틸화’라는 미세한 변화다. 우리 몸의 유전자는 모두 같은 설계도를 공유하지만, 실제로 어떤 유전자가 작동할지는 ‘메틸기’라는 작은 화학 표지에 의해 결정된다. 쉽게 말해, 유전자 위에 붙는 ‘스위치’다. 이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면서 세포의 운명이 달라진다.
문제는 암이 이 스위치를 비틀어버린다는 데 있다. 정상 상태에서는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만, 암이 발생하는 과정에서는 이 유전자들에 과도한 메틸화가 일어나 기능이 꺼진다. 몸을 지키던 브레이크가 풀린 셈이다.
연구팀은 접근 방식을 바꿨다. 자궁경부 세포에서 얻을 수 있는 바이러스, 유전자, 미생물 등 다양한 정보를 한데 모아 분석했다. 그 결과, 바이러스나 미생물 정보만으로는 위험도를 구분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DNA 메틸화 패턴에서는 고위험군과 저위험군이 뚜렷하게 갈렸다.
연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보다 접근이 어려웠던 자궁내막암 진단으로까지 확장됐다. 자궁내막암은 대부분 증상이 나타난 뒤에야 발견된다. 비정상적인 질 출혈이 생긴 이후 초음파와 조직검사를 통해 진단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환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마취 후 자궁 안으로 기구를 넣어 조직을 채취해야 하는 검사 특성상 통증과 출혈이 뒤따른다.
특히 최근 젊은 여성에서 자궁내막암이 증가하고 있지만, 침습적 검사에 대한 부담으로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조직검사를 받는 환자 중 상당수는 암이 아닌 경우도 많다. 연구팀은 이 간극을 ‘질 분비물’에서 찾았다. 병원에서 채취한 질 내 분비물 속 DNA를 분석해 메틸화 패턴을 읽어내고, 이를 통해 암 여부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 검사의 방식 자체가 바뀔 수 있다. 연구팀은 향후 생리대와 같은 일상 용품을 활용해 병원을 찾지 않고도 암 위험을 확인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검사가 병원 안에서만 이뤄지던 시대에서,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전환이다.
오영택 교수는 “값비싸고 고통스러운 검사 대신, 누구나 일상에서 부담 없이 암을 확인할 수 있는 ‘스크리닝의 대중화’가 궁극적인 목표”라며 “임상 적용과 상용화를 통해 실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https://www.hani.co.kr/arti/hanihealth/medical/12525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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