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설계회사에 입사했다. 업계 1등이라는 회사였다.
교량설계 분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대학원 선배도 알았고, 교수님도 알았고, 같은 전공 친구들도 모두 알았다.
회사 이름을 말하면 "거기 들어갔어?" "좋은 데 갔네." "거기 업계 1등이잖아." 다들 그렇게 말했다. 나도 자랑스러웠다.
처음 만난 다른 전공 친구에게 회사 이름을 말했다.
친구가 물었다.
"거기가 뭐 하는 회사야?"
토목설계회사라고 설명했다.
친구는 다시 물었다.
"대기업이야?"
"아니, 중견기업."
"아…… 그렇구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토목업계에서는 1등이었고, 다른 분야 사람들에게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중견기업이었다.
취업사이트에서 회사 이름을 검색하면 직원 수와 매출액이 나왔다.
뉴스에서 회사 이름을 검색하면 수주 기사 몇 개가 나왔다.
사람들에게 회사 이름을 말하면 다시 설명해야 했다.
"교량이나 도로 설계하는 회사야."
"건설회사 같은 건가?"
"건설은 아니고 설계."
"건축설계?" "아니, 토목."
"아…… 그렇구나."
업계 1등이라는 말은 업계 밖으로 나가는 순간 설명부터 필요한 칭호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토목을 전공했고, 내가 아는 분야에서는 좋은 회사였다.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그래도 업계에서 제일 좋은 회사라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좋은 회사에 들어갔으니 좋은 선배들에게 기술을 배우고, 경력을 쌓아 전문가가 되는 줄 알았다.
근데 그때는 몰랐다. 업계 1등이라는 말이 연봉과 복지와 퇴근시간까지 1등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입사 첫날. 근로계약서를 받았다. 월급에는 고정연장근로수당이 포함돼 있었다. 포괄임금제였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야근을 조금 하더라도 월급에 미리 포함해 주는 제도인 줄 알았다.
입사하고 나서 알았다. 월급에 야근수당이 포함된 것이 아니라 내 저녁시간이 월급에 포함돼 있었다.
한 시간 야근해도 같은 월급. 세 시간 야근해도 같은 월급. 밤 10시에 퇴근해도, 자정에 택시를 타도 같은 월급.
야근이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야근수당도 특별히 계산하지 않았다. 포괄임금제는 토목설계회사를 위해 만들어진 법 같았다.
발주처가 금요일 저녁에 의견을 보내도, 시공사가 퇴근 직전에 긴급검토를 요청해도,
월요일 아침 회의자료를 일요일에 만들어도 회사는 추가로 계산할 것이 없었다. 직원의 시간은 이미 월급 안에 들어가 있었다.
회사에서는 말했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야근이 더 많았다고 했다. 밤을 새우는 것이 일상이었고, 합사에서는 의자를 붙여놓고 자기도 했다고 했다.
며칠씩 집에 못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과로로 쓰러지거나 몸을 망친 사람도 많았다고 들었다.
누군가는 실제로 과로사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선배들은 그 시절을 말하며 웃었다.
"옛날에는 진짜 심했지."
"요즘은 그래도 사람답게 일하는 거야." >
나는 밤 11시 사무실에서 그 말을 들었다. 좋아진 게 이거라니.
지금은 밤을 새우지 않으니 좋아진 것이고, 일요일마다 출근하지 않으니 좋아진 것이고, 자정 전에 퇴근하면 좋아진 것이었다.
이 업계에서 근무환경이 좋아졌다는 말은 정시에 퇴근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예전처럼 사람이 쓰러질 정도로 일시키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 프로젝트 합사에 투입됐다.
합사. 처음 들었을 때는 여러 회사의 전문가들이 모여 힘을 합쳐 일하는 곳인 줄 알았다.
실제로 그랬다. 도로팀 대리, 구조팀 과장, 지반팀 차장, 수자원팀 부장, 전체 일정을 관리하는 주관사 PM.
대부분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박사학위를 가진 부장도 있었고, 내가 학교에서 사례로만 배웠던 교량을 직접 설계한 차장도 있었다.
해외 프로젝트를 몇 개씩 끝낸 과장도 있었고, 설계기준의 문구를 페이지까지 기억하는 부장도 있었다.
입사 첫날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을 보고 생각했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과 일하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겠구나.
맞긴 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다만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왜 매일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못하는지는 나중에 배웠다.
합사 첫 출근. 오전 8시 30분까지 오라고 했다. 공식 출근시간은 9시였다. 나는 8시 20분에 도착했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무실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대리도, 과장도, 차장도 와 있었다. 부장은 이미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주관사 PM은 내가 출근하기 전부터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도대체 몇 시에 온 걸까.
다음 날은 8시에 왔다. 그날도 모두 앉아 있었다. 그다음 날은 7시 30분에 왔다. 그래도 차장과 부장은 먼저 와 있었다.
궁금해서 옆자리 대리에게 물었다. "부장님은 몇 시쯤 오십니까?" 대리가 말했다. "보통 7시 전에 오세요."
퇴근은 밤 10시가 넘는데 출근은 아침 7시였다. 저렇게 나이가 많은 분들이, 저렇게 많이 배운 분들이,
저렇게 오랫동안 일한 분들이 왜 아무 말 없이 매일 이 생활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침 7시에 나온 차장과 부장은 바로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다.
커피를 한 잔 타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 뉴스를 봤다. 부동산 카페를 보고, 주식창을 열어보고,
자동차 신차 소식을 보고, 낚시용품을 검색하고, 야구 결과를 확인했다.
누군가는 여행 영상을 봤고, 누군가는 골프장 예약창을 열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밤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이 왜 굳이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서 인터넷을 보고 있는 걸까.
그 한 시간이면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는데.
나중에야 알았다.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그 한 시간이 그 사람들의 하루에서 유일하게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이었다.
발주처도 전화하지 않고, 시공사도 자료를 요청하지 않고, PM도 수정사항을 전달하지 않고, 팀원도 결재를 요청하지 않는 시간.
집에서는 남편이고 아버지여야 하고, 회사에서는 차장이고 부장이어야 하는 사람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회사에 있지만 아직 회사원이 아니어도 되는 시간.
뉴스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인터넷 쇼핑을 하는 그 한 시간이 그들의 취미였고, 휴식이었고, 어쩌면 유일한 개인시간이었다.
나는 몰랐다. 아침 일찍 회사에 나오는 것이 성실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집에서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회사에서도 온전히 쉬지 못하는 사람이 두 공간 사이에서 겨우 만들어낸 자기만의 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오전 8시가 넘자 사람들이 하나둘 출근했다. 조용했던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과장님, 어제 요청한 자료 어디까지 됐습니까?"
"차장님, 발주처 의견 내려왔습니다."
"부장님, 현장에서 긴급검토 요청이 왔습니다."
"PM님, 오늘 보고 일정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침 7시에 여행 영상을 보던 부장은 8시가 되자 다시 부장이 됐다.
커피잔을 옆으로 밀고, 여행 사이트를 닫고, 팀원들이 올린 검토자료를 열었다.
오전 9시. 합사 전체회의가 시작됐다. 주관사 PM이 말했다.
"일정이 많이 타이트합니다."
매주 하는 말이었다.
도로팀은 선형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반팀은 시추조사 결과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수리팀은 계획홍수위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시공팀은 공법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했다.
구조팀 차장이 말했다.
"조건이 바뀌면 구조계산도 다시 해야 합니다."
PM이 대답했다.
"일단 기존 일정대로 진행해 주세요."
조건은 바뀌었지만 납기일은 바뀌지 않았다. 토목설계의 첫 번째 원칙이었다. 입력값은 변해도 제출일은 보존된다.
회의가 끝나자 과장이 나를 불렀다.
"어제 검토한 교각 있죠?"
"네."
"도로선형이 바뀌었대요."
"그러면 좌표부터 다시 받아야 하는데요."
"그렇죠."
"해석모델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죠."
"어제 한 건 어떻게 합니까?"
과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경험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어제 열두 시간 일했다. 그 열두 시간이 오늘 아침 한마디로 경험이 됐다.
설계사에서는 일을 많이 했다는 사실보다 최종 조건으로 했느냐가 중요했다.
아무리 정확하게 계산해도 조건이 바뀌면 틀린 계산이었다.
오전 10시. 구조해석 프로그램을 켰다. 모델을 실행했다.
에러가 떴다. SINGULARITY. UNSTABLE. NOT EXECUTED.
프로그램은 영어로 말했지만 뜻은 분명했다. 네 모델이 잘못됐다.
절점을 확인하고, 경계조건을 확인하고, 강성연결을 확인하고, 하중을 확인했다.
한 시간 만에 원인을 찾았다. 절점 하나가 연결되지 않았다. 절점 하나 때문에 교량 전체가 흔들렸다.
회사에서도 비슷했다. 담당자 한 명이 자료를 보내지 않으면 전체 일정이 흔들렸다.
다만 프로그램은 문제가 있는 절점 번호라도 알려줬다. 회사에서는 누가 문제인지 모두 알고 있어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오전 11시. 시공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 단면 시공 가능한 거 맞습니까?"
나는 계산상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공사 직원이 말했다.
"계산 말고 현장에서 되냐고요."
나는 아직 현장을 많이 가보지 못했다. 설계사는 시공성을 검토해야 했고, 시공사는 구조적으로 가능한지 물었다.
서로 상대방이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둘 다 나한테 물었다.
"철근 간격이 너무 좁습니다."
"강재 용접 공간이 안 나옵니다."
"장비가 못 들어갑니다."
"도면대로 하면 거푸집을 못 뺍니다."
도면에서는 선 하나였지만 현장에서는 사람이 들어가야 했고, 철근을 묶어야 했고, 콘크리트를 부어야 했다.
그날 알았다. 도면의 10mm는 현장에서 누군가의 욕이 될 수 있었다.
점심시간. 12시부터 1시까지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부장 휴대전화가 울렸다. 부장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밥을 먹었다. 두 숟가락쯤 먹자 또 전화가 왔다.
"네, 오늘 중으로 보내겠습니다."
밥을 먹는 동안 전화가 네 번 왔다. 부장의 식사는 식었고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궁금했다. 저렇게 매일 전화받고,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자료를 보면서 가정은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아이들은 아빠 얼굴을 언제 볼까. 배우자는 이 생활을 어떻게 견딜까.
한 번은 오후 9시에 부장이 가족에게 전화하는 것을 들었다.
"아빠 오늘도 조금 늦어."
전화기 너머로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부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먼저 자. 주말에 맛있는 거 먹자."
전화를 끊은 부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보고서를 열었다.
그 주 토요일에도 우리는 출근했다. 부장도, 차장도, 과장도, 대리도 나왔다.
주말에 먹자던 맛있는 음식은 다음 주로 미뤄졌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분들이 군말 없이 일하는 것은 일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회사에 충성해서도 아니었다.
이미 올라간 생활비가 있었고, 아이들 교육비가 있었고, 갚아야 할 대출이 있었고,
당장 다른 길로 옮기기에는 너무 오래 쌓은 경력과 직급이 있었다.
젊을 때는 힘들면 그만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만두는 결정에는 나 혼자만 들어 있지 않았다.
배우자와 아이, 부모님과 대출, 지금까지 쌓은 경력과 직급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분들은 군말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PM이 없는 자리에서는 욕도 했고, 발주처와 통화를 끝낸 뒤 긴 한숨도 쉬었다.
퇴근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다만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모니터를 봤다.
오후 1시. 발주처 검토의견이 내려왔다.
"구조적 안전성 추가 검토 바람."
한 줄이었다. 무엇을 추가로 검토하라는지는 없었다. 내진인지, 피로인지, 좌굴인지, 시공단계인지, 사용성인지.
과장이 말했다.
"일단 다 검토해 봐."
발주처의 의견은 한 줄이었고 설계사의 답변은 열 페이지가 됐다.
"기검토 완료"라고 쓰면 "검토근거 제시"가 돌아왔다.
검토근거를 붙이면 "요약 제시"가 돌아왔다. 요약해서 보내면 "상세검토 필요"가 돌아왔다.
상세하게 쓰면 길다고 했고, 짧게 쓰면 불충분하다고 했다.
오후 3시. 타 분야 간섭검토를 시작했다.
도로팀이 보낸 종단을 열었다. 교량 받침 위치와 맞지 않았다.
배수팀 관로는 교각 기초를 통과했다. 전기팀 배관은 점검구와 겹쳤다.
각 팀에 연락했다. 도로팀은 말했다.
"구조팀에서 맞춰주시면 안 됩니까?"
배수팀은 말했다.
"관로는 이미 확정됐습니다."
전기팀은 말했다.
"저희 도면은 최신본입니다."
모든 팀의 도면은 최신본이었고 서로 맞는 도면은 없었다. 합사는 여러 분야가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정확히는 여러 분야의 최신 오류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곳이었다.
오후 6시. 공식 퇴근시간이 됐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원은 수정할 도면이 남아 있었다. 대리는 작성할 계산서가 남아 있었다.
과장은 검토할 자료가 남아 있었다. 차장은 조율할 사항이 남아 있었다. 부장은 발주처에 보고할 내용이 남아 있었다.
PM은 모든 팀의 자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급이 올라가면 야근이 줄어드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사원은 일을 몰라서, 대리는 실무가 많아서, 과장은 검토할 것이 많아서, 차장은 조율할 것이 많아서,
부장은 책임질 것이 많아서 늦게 갔다. PM은 모두의 결과물이 모여야 자기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직급마다 야근의 이유만 달랐다.
오후 7시. 저녁을 먹었다.
과장이 말했다.
"오늘은 크게 늦지는 않겠네요."
나는 그 말의 뜻을 알고 있었다. 자정은 넘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오후 8시. 보고자료 초안을 보냈다.
5분 뒤 수정의견이 왔다. "조금 더 간결하게 정리 바랍니다." 내용을 줄였다.
다시 의견이 왔다. "설명이 다소 부족합니다." 설명을 추가했다.
다시 의견이 왔다. "페이지가 너무 많습니다." 페이지를 줄였다.
다시 의견이 왔다. "그림이 작아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림을 키웠다.
표가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표를 줄이자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글자를 키우자 페이지가 다시 늘었다.
두 시간 동안 설계내용은 거의 바뀌지 않았고 도형 위치만 바뀌었다.
오후 10시. 시공사에서 긴급검토 요청이 왔다.
내일 아침 작업 예정이라 오늘 중 회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첨부된 자료는 어두운 현장 사진 한 장과 줄자로 잰 치수 두 개였다. 추가 자료를 요청했다.
시공사에서 답이 왔다. "현장 여건상 추가 확인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작업 가능 여부는 지금 판단해달라고 했다. 정보는 부족했고 책임은 충분했다.
검토의견을 작성했다. "제시된 자료 범위 내에서 검토한 결과, 구조적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됨."
과장이 문구를 봤다. "문제가 없다고 단정하면 안 돼."
문장을 고쳤다. "구조적 안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됨."
과장이 다시 말했다. "큰 문제라는 표현도 애매한데?"
다시 고쳤다. "추가적인 현장확인 후 최종 판단이 필요함."
시공사에서 바로 전화가 왔다. "그래서 작업해도 된다는 겁니까, 안 된다는 겁니까?"
현장은 예와 아니오를 원했고 설계사는 예와 아니오 사이에서 책임지지 않는 문장을 찾아야 했다.
오후 11시. 옆자리 차장이 하품을 했다.
아침 7시부터 있던 사람이었다. 차장의 휴대전화 화면에 아이 사진이 잠깐 보였다. 가족사진이었다.
하지만 하루 동안 차장이 가장 오래 본 것은 아이 얼굴이 아니라 모니터 속 응력등고선이었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데 그 일 때문에 가족을 보지 못했다. 가정을 유지하려고 야근하는데 야근 때문에 가정에서 멀어졌다.
이 이상한 모순을 차장도, 부장도, PM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가족에게 늦는다고 전화하고, 다음 날 아침 또 가장 먼저 회사에 나왔다.
그리고 업무가 시작되기 전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을 봤다.
그 한 시간이 밤새 미뤄둔 자기 인생의 일부인 것처럼.
새벽 1시. 합사 건물을 나왔다.
부장도 함께 나왔다. 아침 7시에 봤던 사람을 새벽 1시에 다시 함께 보고 있었다.
부장이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일찍 가네."
나는 웃어야 하는지 몰랐다.
이 정도면 좋아진 근무환경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새벽 1시에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새벽 1시에도 퇴근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을 위로라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다. 씻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으려는데 단체 메신저가 울렸다.
주관사 직원이 새벽 2시 17분에 파일을 올렸다.
"수정사항 표시했으니 오전 회의 전 반영 부탁드립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언제 자는 걸까.
잠시 뒤 깨달았다. 상대도 나를 보며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오전 7시 20분. 회사에 도착했다.
부장은 또 먼저 와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행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제주도 바다가 떠 있었다.
내가 물었다.
"부장님, 여행 가십니까?"
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보는 거야." >
그 대답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갈 수 없어서 보는 건지, 언젠가 가려고 보는 건지, 다녀온 기분이라도 내려고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8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부장은 제주도 창을 닫았다. 차장은 주식창을 닫았다. 과장은 야구 기사를 닫았다.
그리고 모두가 다시 교량도면과 계산서를 열었다.
토목설계회사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대부분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수십 년간 설계한 차장과 부장이 있었고, 여러 분야를 조율하는 PM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해도 금요일 저녁에 내려온 발주처 의견을 월요일 아침까지 검토해야 하는 것은 같았다.
아무리 직급이 높아도 가족에게 오늘도 늦는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같았다.
납기일 앞에서는 사원도, 대리도, 과장도, 차장도, 부장도, PM도 모두 야근자였다.
입사 전에는 몰랐다. 경력이 쌓이고 직급이 높아지면 조금씩 편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능력이 생기면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어려운 일이 배정됐다.
책임이 커졌고, 전화가 많아졌고, 퇴근하지 못할 이유가 늘어났다.
회사에서는 계속 말했다.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예전에는 과로로 쓰러졌고, 지금은 쓰러지기 직전에 퇴근했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밤을 새웠고, 지금은 집에 가서 세 시간은 잘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일요일도 당연히 출근했고, 지금은 급할 때만 출근했다. 좋아지기는 했다.
다만 좋아진 결과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는 삶이었다.
토목설계회사의 하루는 끝나는 게 아니었다.
오늘 수정이 내일 재수정이 되고, 이번 회의 의견이 다음 회의 안건이 되고, 최종보고서가 보완보고서가 됐다.
제출은 끝났지만 과업은 끝나지 않았다.
업계 1등 회사라고 했다.
맞긴 했다. 수주실적도 1등이었고, 기술력도 1등이었고, 프로젝트 규모도 1등이었다.
그리고 업계 밖에서는 아무도 회사 이름을 몰랐다.
포괄임금제 덕분에 월급은 안정적으로 들어왔고, 야근은 안정적으로 공짜가 됐다.
출근은 안정적으로 빨랐고, 퇴근은 안정적으로 늦었다.
수정사항은 안정적으로 내려왔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안정적으로 반복됐다.
불안정한 것은 설계조건과, 내 퇴근시간과,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뿐이었다.
친구가 물었다.
"업계 1등 회사 다니니까 좋지?"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응. 업계에서는 정말 좋은 회사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 업계에서는 좋은 회사였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업계에서 가장 좋은 회사의 삶이 이렇다면, 다른 회사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새벽까지 수정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몇 시간 뒤 다시 출근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으로 여행지를 검색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선배들과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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